[증권 왕좌의 게임①] 대우증권 인수 고배 마신 김남구, 10년만에 1위 오르며 박현주에 설욕

IMA 1호 인가 놓고 경쟁...글로벌시장에서도 사업 확장

2025-09-24     이철호 기자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5년 10월 산업은행이 대우증권 매각을 공식 발표하면서 증권업계가 들썩였다. 그해 12월 미래에셋증권이 한국투자증권, KB금융지주와 치열한 경쟁 끝에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면서 승리를 거뒀다.

자기자본 기준으로 업계 6위였던 미래에셋은 2조4000억 원의 인수가를 써내 4위 한국투자증권을 2000억 원 차이로 따돌리고 대우증권을 인수하면서 단숨에 국내 최대 증권사로 발돋움한다.  

반면 한국투자증권은 대우증권 인수전에 이어 이듬해 펼쳐진 현대증권 인수전에서도 KB금융지주에 패배하며 미래에셋의 질주를 씁쓸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한국투자증권이 미래에셋증권을 추월하면서 김남구 회장이 박현주 회장을 밀어내고 국내 증권업계 1위에 오르는 반전 드라마를 완성한다. 

지난 6월 말 기준 한국투자증권의 자기자본(개별 재무제표)은 10조5216억 원으로 미래에셋증권을 2577억 원 차이로 앞지른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연간 순이익이 개별 재무제표 기준 미래에셋보다 4958억 원 가량 많았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그 격차를 5767억 원으로 벌리며 외형은 물론 내실면에서도 리딩컴퍼니로 질주 중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래에셋증권은 글로벌에 집중해 연결 자기자본은 우위이고 개별 자기자본은 한투증권이 우위"라며 "앞으로도 두 증권사의 경쟁은 치열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1990년대 초반 같은 증권사에 함께 다녔던 두 사람은 이후 창업과 가업승계를 통해 갈라선 뒤 증권업계에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증권업계 초유의 관심사인 종합투자계좌(IMA) 1호 인가를 놓고 자존심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글로벌 증시 개척, 신사업 진출 등을 꾀하며 또 다른 승부를 펼치는 중이다.
 
▲(왼쪽부터) 미래에셋그룹 박현주 회장, 한국투자금융그룹 김남구 회장.

◆고려대 경영학과, 한신증권 선후배 인연...박현주 창업, 김남구 가업승계로 맞수구도  

두 사람은 고려대 경영학과 동문이면서 한신증권에서 한솥밥을 먹은 흥미로운 인연을 지니고 있다. 

박현주 회장이 1986년 동양증권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가 1988년 동원그룹 계열사인 한신증권으로 이직했고, 동원그룹 김재철 명예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회장은 동원산업을 거쳐 1991년 한신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신증권 재직 당시 두 사람은 별 다른 접점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1997년 박현주 회장이 퇴사하면서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박 회장은 한신증권을 나오면서 바로 미래에셋그룹의 모태가 되는 미래에셋캐피탈을 창업했고 핵심 계열사인 미래에셋증권은 2년 뒤인 1999년에 설립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증권업 인가를 받은 이듬해 국내 최초 뮤추얼펀드를 판매하면서 최단기간 금융상품 판매잔고 1조 원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우며 증권시장에 화려하게 입성한다. 2004년 3월에는 적립식 펀드, 그 해 6월에는 부동산펀드를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신생 증권사였지만 미래에셋증권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 판매 창구로서 '펀드 붐'의 수혜를 입으며 급성장하게 된다.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선보인 ▲디스커버리 ▲인디펜던스 ▲3억 만들기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른 바 '박현주 펀드'로 불리는 상품들이었다. 

창업 초기부터 해외진출을 염두해두고 있던 박 회장은 그룹 핵심 계열사인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해외영토 확장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2003년 12월 홍콩법인, 2006년 11월에는 인도법인으로 첫 발을 내딛었고 미래에셋증권은 2007년 1월 홍콩과 12월 베트남법인을 차례대로 개설한다. 이후 2008년 8월에는 미국법인, 2010년 8월에는 브라질법인까지 보폭을 넓혔다. 

그 결과 박 회장은 미래에셋증권을 업계 6위로 성장시켰고, 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되기 직전인 2015년 3분기에는 대규모 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3조4620억 원으로 늘리며 순위를 4위로 끌어올렸다.    
 

박현주 회장이 자수성가의 성공신화를 쓰는 동안, 김남구 회장은 부친으로부터 업계 7위권의 중견사를 물려 받아 20년만에 업계 1위로 올려 놓는 '청출어람'의 스토리를 써내려간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대학교 4학년 때 알래스카 명태잡이 원양어선에서 4개월 간 고된 노동을 거쳐 1987년 동원산업에 입사한 김 회장은 2년 뒤 일본 게이오대로 유학을 다녀 와 1991년 한신증권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13년 간 실무 경험을 쌓은 뒤 2004년 동원그룹에서 계열분리를 통해 세워진 동원금융지주(現 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이사에 오르며 독립경영을 시작했다. 

김 회장은 이듬해 6월 한국투자신탁증권 인수에 성공하며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오른다. 당시 동원증권은 자기자본 5822억 원으로 업계 7위, 한국투자신탁증권 자기자본 4318억 원으로 업계 10위였다. 이 합병을 통해 한국투자증권은 미래에셋보다 2년 먼저 자기자본 1조 원을 넘어섰다. 

이후 한국투자증권은 증권업 전문성을 다지는 행보를 보인다. 2006년 2월에는 국내 최초 가치투자자문 운용사인 한국밸류자산운용을 시작으로 2010년에는 사모펀드 전문 운용사인 이큐파트너스, 2014년에는 한국투자캐피탈을 자회사로 설립하게 된다. 

한국금융지주는 동원그룹에서 계열분리되기 직전이던 2003년 공정자산이 2조1482억 원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4배 가량 증가하며 8조 원을 돌파했다.  그해 7조 원대에 그친 동원그룹을 추월하기도 했다. 
 
◆ 대우증권 인수후 미래에셋 고속성장...한국투자증권 2019년부터 추격전
 

가업을 승계해 상대적으로 출발선이 유리했던 김남구 회장의 한국투자증권은 박현주 회장의 미래에셋증권보다 자기자본 2조 원, 3조 원을 먼저 돌파하면서 우위를 지켰다.

대우증권 인수가 결정되기 전 해인 2014년 말 기준으로 한국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3조1903억 원으로 업계 4위였고 미래에셋증권은 2조3570억 원으로 6위였다. 

하지만 이듬해 12월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의 합병이 확정되고 이듬해 통합법인이 출범하면서 두 회사의 지위는 역전된다. 

통합법인 첫 해였던 2016년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의 자기자본은 6조5955억 원, 한국투자증권은 4조727억 원으로 격차는 2조5228억 원으로 벌어진다. 이후 2018년까지 격차가 점점 벌어져 2018년 말 기준에서는 3조8847억 원으로 정점을 찍는다. 
 

그 결과 두 회사의 자기자본 격차는 2019년 3조4413억 원을 시작으로 3조3801억 원(2020년)→3조2592억 원(2021년)→2조5428억 원(2022년)→1조3296억 원(2023년)→5955억 원(2024년) 순으로 급격하게 좁혀졌다. 

그리고 올해 6월 말 개별 재무제표 기준 한국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10조5216억 원으로 10조2639억 원에 그친 미래에셋증권을 2577억 원 차이로 앞서게 된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는 6월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이 12조4190억 원으로 10조3238억 원인 한국투자증권보다 약 2조 원 앞서 있다. 그러나 지난 달 한국투자증권이 9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가 결정해 연말 기준으로 최대 12조 원까지 예측되고 있어 연결 기준 자기자본 격차도 크게 좁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투자증권이 대역전에 성공한 비결로는 꾸준한 증자와 높은 수익성을 기반으로 한 자본관리가 꼽힌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019년 11월 777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시작으로 총 4차례에 걸쳐 1조7770억 원 상당의 증자를 단행하게 된다. 지난 3월에는 7000억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도 발행하며 올 들어서도 자본 확충에 적극적이다. 

지난 2023년에는 자회사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카카오뱅크 지분 매각으로 발생한 1조7000억 원을 한국투자증권에게 지급하며 지원 사격에 나선 점도 크게 반영됐다. 
 

한국투자증권은 외형에서는 지난해까지 미래에셋증권에 줄곧 열세였지만 같은 기간 수익성에서는 대부분 미래에셋증권을 앞서며 내부유보 차원에서도 자기자본을 차곡차곡 축적했다. 

미래에셋증권 통합법인 출범 첫 해였던 2016년을 기준으로 한국투자증권은 2020년과 한 해를 제외하고는 미래에셋증권보다 더 많은 순이익을 가져갔다. 올해 상반기 개별 재무제표 기준 순이익에서도 한국투자증권은 9014억 원 기록하며 3247억 원에 그친 미래에셋증권을 크게 앞섰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도 한국투자증권은 통합 미래에셋증권 출범 이후 2020년과 2022년 두 해를 제외하고는 미래에셋증권보다 더 많은 순이익을 기록했다. 

대우증권 인수로 박현주 회장의 미래에셋증권이 증권업계 왕좌에 올라 한 동안 독주를 이어갔지만, 2025년 현 시점에서는 김남구 회장이 완벽한 역전을 이뤄낸 셈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승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현재 종합투자계좌(IMA) 1호 인가를 두고 경쟁 중이며 글로벌시장에서도 공격적인 사업확장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증권업을 넘어서서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 하에 각기 다른 영역으로 몸집 불리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철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