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X파일] “내 과실 30%인데 왜 전액 내야 돼?”...자동차보험 ‘자기부담금’ 비율 놓고 갈등

대법 '미보전손해' 인정 여부에 촉각

2025-09-15     서현진 기자
보험이 진화하면서 보험금 지급 기준도 세태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지만 소비자들은 정보 부족과 불명확한 기준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복잡한 약관, 강화된 심사 기준 속에 보험사와 가입자 간 법정 다툼도 잇따르고 있다. 최신 법원 판례와 금융당국 규정을 바탕으로 보험금 지급의 경계선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 소비자 A씨는 지난 5월 교통사고로 보험금을 청구하면서 자기부담금 제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해당 사고는 본인 및 상대차 과실 3:7로 마무리됐고 남 씨는 수리비 170만 원 가량 나와 자기부담금 30만 원을 제외한 140만 원 가량의 보험금을 받았다. 그러나 남 씨는 본인이 낸 자기부담금 30만 원에 대해 상대 측 보험사가 일부 보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 과실은 30%밖에 되지 않는데 자기부담금도 내 과실비율만큼만 내야 하는 게 맞지 않나"라며 의아해했다.

자동차사고 발생 시 본인이 부담한 자기부담금에 대해 상대 측 보험사에 보상 책임이 있는지를 둘러싸고 소비자와 보험사 간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기부담금도 일부 보험에서 말하는 미보전손해(보험으로 보상받지 못한 손해)에 속하기 때문에 상대 보험사에서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동차보험 자기부담금 관련 분쟁은 하급심 판결을 통해 '미보전손해'와 성격이 다르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어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자동차보험의 자기부담금은 사고 발생 시 일부 비용을 보험계약자가 직접 부담하는 제도다. 자기부담금은 보통 20만 원에서 50만 원 사이로 책정된다. 업계에서는 이 장치가 보험료를 절감하고 소액사고 청구도 줄이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보험에서 자기부담금을 30만 원으로 설정했을 때 차 사고 수리비로 100만 원이 나온다면 30만 원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나머지 70만 원은 보험사에서 보험금으로 지급한다.

분쟁은 일부 소비자들이 쌍방 과실 사고 시 본인이 낸 자기부담금을 상대 차량 보험사가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발생하고 있다.

삼성화재, DB손해보험, 현대해상, KB손해보험, 캐롯손해보험 등 자동차보험을 판매하는 대부분 손해보험사에서 소비자와 겪는 갈등이다.

◆ 보험사들 '차주가 부담' 약관 변경...대법원 판단에 달려

자동차보험 자기부담금을 둘러싼 법적 분쟁은 과거 화재보험 판례에서 비롯됐다. 2015년 1월 대법원은 화재보험의 일부보험 사건에 대해 "피해자는 보험금으로 보상되지 않은 남은 손해액(미보전손해)에 대해 가해자에게 직접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해당 법리가 자동차보험 자기부담금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논란이 시작된 셈이다.

이후부터 일부보험에서 말하는 미보전손해와 자기부담금이 같은 성격을 띠는지에 대한 법적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법원 판결에선 일부보험과 자동차보험의 자기부담금은 성격이 다르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2021년 법원에선 1심을 통해 자기부담금을 교통사고로 인한 손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쌍방 과실 교통사고로 차량이 파손되는 손해를 입은 10명이 자기부담금 상당액을 보상하라며 상대방 차량 보험사에 소송을 걸었으나 법원에선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2심에서도 같은 결론이 내려졌으며 현재 3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일부 보험은 보험가입금액이 실제 보험가액보다 적어 사고 시 손해 전액을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인 대신 보험료가 저렴하다. 손해액 중 보험금액 비율만큼 보상하며 나머지는 미보전손해에 속한다.

자동차보험의 자기부담금은 보험사고 시 손해액 일부를 차주가 직접 부담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자기부담금을 높게 설정할수록 보험료가 저렴해진다. 계약상 차주가 확정적으로 부담하기로 약정한 금액을 제외하고 보상한다.

소비자들은 상법상 자기부담금 또한 보험금으로 보상되지 않은 손해이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직접 청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상법 제682조에 따르면 '손해가 제3자의 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경우에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자는 그 지급한 금액의 한도에서 그 제3자에 대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권리를 취득한다. 다만 보험자가 보상할 보험금의 일부를 지급한 경우에는 피보험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기재돼 있다.

자동차보험 자기부담금과 미보전손해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다면 이같은 분쟁은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사들은 약관상 자기부담금이 보험사와 계약자 간 약속이기 때문에 자기부담금에 대해 보험사에 보상을 요구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보험사는 지난 2020년~2021년 약관을 '자동차보험 자기차량손해 자기부담금은 환급액이 없다'고 변경했다.

보험사 관계자는 "화재보험은 보험금도 거액인 데다가 미보전손해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하면 실익이 있으나 자동차보험 자기부담금은 20만 원에서 50만 원 가량의 소액이고 소비자 입장에서 큰 실익은 없을 것이므로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고 답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보험사들은 약관의 명시된 내용을 따를 뿐이다"라며 "다만 지금까지의 하급심 판결을 보면 자기부담금은 피보험자가 부담해야 할 부분이라고 나와 있다"라고 강조했다.

하급심에 이어 대법원에서 계속되고 있는 '자동차보험 자기부담금과 미보전손해 소송'의 원고인 대리를 담당하고 있는 법무법인 원곡은 보험사들이 소송 진행 도중 변경한 약관이 소비자들을 위한 일이 맞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서치원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사건이 진행되고 있던 도중 보험사들이 갑자기 자차 자기부담금에 대한 환급은 없다며 개별약관을 변경해 의문이다"라며 "이런 약관 변경이 과연 소비자들의 이익을 위한 일인지 궁금하며 소비자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불리하게 바뀐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라고 답했다.

또한 원곡 측은 이 사건이 단순히 자기부담금 손해배상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보험업계의 관행을 들여다보기 위한 과정이라고 밝혔다.

서치원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원고들이 자기부담금 손해배상을 청구한 건 대물사고와의 형평성 문제와 자기부담금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며 "쌍방과실 사고 후 소비자가 급하게 차량을 써야 하는 상황에선 보통 본인의 돈을 써서 수리하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대물처리 대비 20~50만 원 손해를 보게 돼 대물사고와의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고 답했다.

이어 "입원 사고의 경우 손해액이 무한정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자기부담금을 통해 억제할 수 있으나 대물 사고는 한번 사고가 나면 수리비는 고정돼 있다. 요즘 교통사고 시 과실이 100:0은 잘 나오지 않고 과실도 보험사가 정해 소비자가 개입하지도 못한다. 보험사들이 애초에 과실비율을 정해서 소비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다고 확대 해석할 수 있어서 개별 소비자 문제라기보단 보험업계 관행을 소송을 통해 들여다보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서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