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5년 上] 현대차·기아 국내 점유율 82%→92%, 글로벌 톱3 점프...계열사 자생력도 커져

2025-10-13     임규도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4일 취임 5년을 맞는다.

정 회장의 지난 5년간 메시지는 ‘고객’, ‘미래’, ‘성장’을 핵심으로 한다. 취임사 및 5번의 신년사에서 정 회장은 고객을 41회로 가장 많이 언급했다. 미래 38회, 성장 30회 등이다.

고객과 미래 성장을 중시하며 소통 리더십으로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축한 정 회장은 과거에 추진 해오던 ‘패스트 팔로우’ 전략에서 벗어나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한 전동화 전환에 박차를 가했다. 로봇,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미래 사업 기반도 다졌다.

준비된 총수였기에 경영 철학이 확고하게 드러났고 미래 비전 실현을 위한 행보도 빠르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정 회장은 정몽구 명예회장이 건강 문제 등으로 2016년 12월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황에서 그룹 경영을 총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회장 리더십 아래 주력인 자동차는 국내 점유율이 90%를 넘어섰고, 글로벌 판매량도 5위에서 3위로 올랐다. 4위와 격차를 크게 벌리며 ‘톱3’ 고정축이 됐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동차 부품, 철강 등 완성차를 만들고 유통하기 위해 수직계열화로 존재하던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 등 계열사들도 독자 경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이 변화했다.

다만 계열사들이 현대차, 기아 의존도를 낮추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25% 관세로 인한 수익성 저하, 노사 문제, 순환출자 해소 등 지배구조 개선, 신흥시장 전략 재편, 현대차그룹 신사옥 추진 지연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의선 회장 체제서 국내 점유율 82.2→91.9%...글로벌 톱3 입지 굳혀
 
정 회장은 취임 후 5년간 국내시장 점유율을 10%포인트 가까이 끌어 올렸다. 취임 전 2019년 82.2%이던 점유율은 2023년부터 91%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5년간 국내시장 점유율은 단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다. 올해도 8월까지 점유율은 91.9%다.
 
글로벌 판매량도 5위에서 2022년 3위로 올라섰고 지난해까지 3년 연속 3위를 수성하며 ‘톱3’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 고금리로 인한 구매 심리 위축,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등이 지속된 상황에서 달성한 기록이라 의미가 더욱 크다.
 
4위 스텔란티스그룹과의 격차는 2023년 97만대에서 지난해는 160만대로 격차를 더욱 벌렸다.

올해도 상반기까지 365만3586대로 전년 동기 대비 0.9% 증가했다. 특히 미국에서 3분기 판매량은 48만175대로 작년 동기보다 12.0% 증가했다. 역대 3분기 최대 실적으로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각각으로도 최고 기록이다.

정 회장은 코로나19로 판매량이 뚝 떨어진 2020년 10월 14일 회장으로 승진해 현재는 예년 수준을 넘어서는 성과를 냈다.
 
국내외 시장에서 입지가 커진 현대차, 기아는 정 회장 체제에서 매출이 각각 65.7%, 84.8% 증가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매출 증가율은 현대차 13.1%, 기아 17%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현대차가 4배, 기아는 6.3배 늘었다. 기아는 정 회장 체제에서 영업이익이 매년 증가했다.

정 회장이 과거 부회장 시절부터 개발 과정을 직접 챙긴 제네시스 등 고부가가치 차량 판매 확대로 올해도 현대차, 기아 매출은 모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차 매출은 올해 185조 원, 기아는 113조 원으로 5%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다만 미국 관세 25% 장기화와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노조 파업으로 인해 수천억 원대 손실이 예상되면서 영업이익은 두 자릿수 비율로 감소할 전망이다. 현대차 영업이익은 12조6500억 원, 기아는 10조650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그룹 외형도 꾸준히 커졌다. 특히 지난해는 현대차그룹 총자산도 300조 시대를 열었다.
 

견조한 실적으로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 S&P, 피치 등으로부터 모두 A등급을 획득했다.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전부 A등급을 받은 자동차 업체는 메르세데스-벤츠와 토요타·혼다, 현대차, 기아 등 단 4곳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가 부여한 신용등급도 모두 최고 등급인 ‘AAA’다. 글로벌 시장에서 지위가 상승하면서 수익성과 재무 건전성이 대폭 개선되고 제품경쟁력과 브랜드 파워가 높아진 점 등을 반영한 결과다.

◆정의선 회장, 미국·인도·동남아서 글로벌 거점 확대

현대차, 기아의 글로벌 판매량이 톱3로 자리를 굳힌 것은 정의선 회장이 지난 5년간 글로벌 거점을 대폭 확대한 결과로 풀이된다.

글로벌 거점 확대 전략 대표적인 성과는 2022년 10월 착공한 메타플랜트(HMGMA) 공장이다. 미국 내 전기차 수요 대응과 공급망 현지화를 위한 그룹 첫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연간 30만대의 생산 규모를 갖췄다.

주문, 조달, 물류, 생산을 AI데이터로 통합한 스마트 팩토리로 물류비, 인센티브 등을 줄이고 미국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현대차그룹의 전략 거점이다. 지난해 10월 아이오닉5 생산을 시작으로 올해 3월 아이오닉9 양산을 시작했다. 향후 제네시스와 하이브리드 혼류 생산 라인업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트럼프 25% 관세 리스크에도 HMGMA는 그룹의 현지 공급망 기지로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 회장은 2022년과 2023년 연속으로 HMGMA 건설 현장을 방문해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세계가 선망하는 최고 수준의 전기차 생산시설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HMGMA)'

세계 3위 인도 시장에서 거점 확보를 위해 정 회장은 2023년 8월 인도 GMI의 탈레가온 공장을 인수했다. 인도 투자로 현지 수요에 대응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탈레가온 공장은 연간 13만대 생산능력을 지녔다.

인수 과정에서 현지 직원 고용 승계 등이 인도 정부의 승인 걸림돌로 제기됐으나 당시 정 회장이 현장을 찾아 협상 과정에서 해결사 역할을 하며 인수 시기를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는 2023년 인도 아난타푸르 공장을 증설해 생산능력을 연간 30만대에서 43만대로 늘렸다.

정 회장은 202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인도를 찾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해외 첫 직원들과의 타운홀 미팅을 열고 세계 3대 시장으로 커진 인도에 대한 비전, 현지에서의 현대차 성장 요인, 인도 전기차 사업 계획 등 사업 현안에 대해 소통했다.

정 회장은 ‘고객 지향 철학’을 강조하며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바로 고객이며,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도를 찾은 정의선 회장
동남아 시장에서는 2022년 1월 아세안 회원국 최초로 완성차 공장을 완공하고 생산을 시작했다. 현지 맞춤형 SUV ‘크레타’와 아이오닉5를 생산하고 있다. 2022년 11월에는 베트남 탄공그룹과 합작한 2공장도 완공하며 생산능력을 2배(10만대) 늘렸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 권역 별로 ▲북미 26% ▲인도 15% ▲유럽 15% ▲한국 13% ▲중동 및 아프리카 8% ▲중남미 8% ▲중국 8% ▲아시아태평양(중국 제외) 7% 등의 비중으로 판매를 추진하고 있다.

새롭게 추가한 거점과 기존 공장들은 지속 개선해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SDF)로 전환해나갈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의 첫 스마트 팩토리이자 제조 혁신 테스트 베드인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개발한 각종 첨단 생산 기술을 다른 글로벌 공장으로 확대 적용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위축되지 않고 과감한 투자와 핵심 기술 내재화, 국내외 톱티어 기업들과의 전략적 협력 등을 통해 미래 기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살길 찾으라”...정의선 체제서 완성차 외 계열사 경영 방식 달라져

2020년 10월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 현대차그룹의 경영 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정 회장은 현대차, 기아로부터 발생하는 일감에 안주하지 말고 계열사 스스로 살길을 찾으라고 틈만 나면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소재와 부품을 그룹 내에서 조달하는 수직계열화가 핵심 전략이었던 정몽구 명예회장 시절과는 기조가 확연히 다르다.

자동차부품, 철강, 물류 등 완성차 수직계열화를 이룬 계열사들의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전장, 섀시, 배터리 영역에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해외 수주에 집중했다.

2022년 스텔란티스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배터리 시스템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2023년에는 폭스바겐과 약 5조 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시스템 공급계약을 맺었다. 벤츠의 차세대 전기차 섀시 모듈 공급계약도 따냈다.

올해는 북미 완성차 제조사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IVI) 제품을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11월 CEO인베스터데이를 통해 오는 2033년까지 핵심 부품 분야에서 글로벌 고객사 매출 비중을 4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제너럴모터스, 포드, 르노 등 글로벌 25개 브랜드에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을 시작했다. 비계열사 대상 판매량이 처음으로 100만 톤을 넘어섰다.

현대글로비스는 2022년 폭스바겐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과 3조 원 규모의 해상운송 계약을 맺었다. 전기차 물량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데 정 회장이 강조하는 전동화 전환 기조에 맞춰 선박에 전기차 화재 예방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마련한 게 효과를 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올해는 ‘비계열 고객 확대의 원년’으로 삼았다. 2023년 착공에 나선 글로벌 물류 센터(GDC)가 3분기부터 본격 가동을 시작했는데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글로비스는 GDC 운영을 통해 글로벌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 등과의 협업을 강화하며, 그룹 외 매출을 확대할 방침이다.

현대트랜시스는 2021년 리비안과 루시드에 EV 전용 시트 공급을 시작했고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전기차 제조업체 시어모터스와 3조 규모의 전기 자동차 구동 시스템(EDS)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해외 판매처를 넓히고 있다.

또 미래 주요 운송 수단 중 하나로 거론되는 UAM(도심형 항공 모빌리티)에 들어가는 시트를 선제적으로 개발 중이다. 2022년 국제 에어쇼를 통해 UAM 객실 콘셉트를 공개했으며 2025 레드닷에서는 UAM 캐빈 콘셉트로 3개의 주요 상을 수상하는 등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그룹 외 사업을 확대하고 있지만 아직은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현대모비스는 76.1%로 2019년 66.3%보다 10%포인트가량 높아졌다.

현대글로비스 역시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은 66.7%로 정 회장 체제에서 7.5%포인트 상승했다. 최근 이뤄진 수주가 실적에 본격 반영되기 시작하면 내부거래 비중은 낮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주요 계열사별 실적 분위기는 엇갈린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현대트랜시스는 정 회장 취임 전인 2019년 대비 지난해 매출이 50% 이상 증가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이 기간 영업이익이 8765억 원에서 1조7529억 원으로 두 배가량 늘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처음으로 3조 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현대위아와 현대카드도 영업이익 규모가 두 배 커졌다. 반면 현대제철은 수요 둔화와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좋지 못하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는 올해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임규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