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2020년 이후 편입한 해외 계열사 78%가 '건설·신재생'...사법 리스크 벗은 삼성전자, M&A 재시동
2025-10-17 선다혜 기자
삼성그룹이 2020년 이후 편입한 해외 계열사 중 78%가 건설과 태양광사업을 영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사업 기회가 큰 사업 영역에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대표 전영현)는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 여파로 지난 5년간 해외 계열사 편입이 없다.
17일 소비자가만든신문이 2020년부터 2025년 4월 말까지 5년간 삼성그룹 해외 계열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편입은 총 71개, 제외는 104개로 집계됐다.
발전프로젝트, 건설, 금융 등 단기간의 사업 영위를 위해 신설된 특수목적법인(SPC)을 제외하면 편입은 27개, 제외는 93개다.
지난 4월 말 기준 삼성그룹 해외 계열사는 2019년 말 대비 5.6% 줄었다.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건설, 신재생 분야는 늘렸지만 사업 집중과 경영 효율화를 위한 조직 재편으로 전체 해외 계열사 수는 감소했다.
SPC를 제외하고 살펴보면 해외 계열사를 가장 많이 편입한 곳은 삼성물산(대표 오세철‧정해린‧이재언)이다. 건설부문 9개, 상사부문 8개 등 17개를 편입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2021년 싱가포르 법인 설립을 시작으로 필리핀, 베트남, 방글라데시, 폴란드, 루마니아 등 해외 거점을 잇달아 늘렸다. 약 60%는 지분을 취득해 편입했고 나머지는 설립했다.
국내 건설 시장이 주택과 인프라 공급 감소, 치열한 경쟁 심화로 성장 여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돌파구를 해외에서 모색했다. 삼성물산은 해외 거점 확충을 통해 시장 개척과 수주 경쟁력 강화를 꾀했다.
동남아·남아시아·동유럽에서는 인프라 수요가 확대되고 친환경·원전·데이터센터 같은 고부가가치 신사업 기회가 커지고 있다. 해외 프로젝트는 대형 EPC(설계·조달·시공)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현지 법인과 지사를 통한 입찰 자격 확보와 인허가 대응, 인력·자재 조달이 필수적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올해 9월말까지 약 56억 달러(한화 약 8조 원)의 해외수주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320% 증가한 수치다. 10대 건설사 중에서 올해 해외 수주액이 가장 많다.
특히 2024년 편입한 루마니아 법인(Samsung C&T Corporation Romania S.R.L.)은 삼성그룹이 미래 핵심사업으로 점찍은 소형모듈원전(SMR) 전초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물산은 루마니아를 교두보로 삼아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동유럽은 석탄과 가스발전 의존도가 높지만, EU 탄소중립 정책과 러시아 에너지 의존 축소 필요성이 맞물리며 에너지 전환 요구가 커지고 있다.
SMR은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날씨에 좌우되지 않고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안정적인 전원 확보가 절실한 동유럽 국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물산 상사부문은 미국과 유럽에서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계열사를 8개 편입했다. 기존에 미국에서 집중하던 사업을 유럽과 아시아로 확대했다.
지난해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독일에 ‘삼성 C&T 재생에너지 유럽 법인(Samsung C&T Renewable Energy Europe GmbH)’을 설립한 게 대표적이다. 2022년에는 호주에서도 태양광 발전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법인(Samsung C&T Renewable Energy Australia Pty Ltd)을 설립했다.
지난 4월 말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신재생에너지 개발사업을 영위하는 법인(VISTA SV SOLAR 1 SDN. BHD)을 설립했다. 미국에서도 태양광 발전 법인을 4개 편입했다.
태양광 사업 확대는 매각이익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매각이익은 삼성물산이 직접 개발한 태양광 발전소 프로젝트를 다른 투자자에게 넘기면서 얻는 차익을 뜻한다. 2021년 2200만 달러(약 306억 원)에 불과했던 태양광 매각이익은 지난해 말 7700만 달러(약 1074억 원)로 세 배 넘게 뛰었다.
삼성물산은 향후 설계·조달·시공(EPC), 에너지저장장치(ESS), 금융 구조화, 운영관리(O&M)까지 태양광 사업 전체 사이클에 참여해 밸류체인을 구축해 그룹 계열사와 시너지를 창출할 계획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대형 발전소 EPC를 담당할 수 있고, 삼성SDI는 태양광과 연계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공급할 수 있다. 삼성증권·삼성생명 등 금융 계열사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지원하면 개발부터 시공·운영·금융까지 아우르는 그룹 차원의 에너지 밸류체인이 완성된다.
이재용 회장이 국정농단 사건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회계 부정 의혹 사건 등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사실상 경영 시계가 멈췄던 삼성전자는 지난 5년간 편입한 해외 계열사가 없다 시피하다.
삼성전자가 2017년 인수한 미국 전장기업 하만이 4개를 편입했을 뿐이다. 하만을 제외하면 삼성전자는 5년간 해외 계열사 편입이 없는 셈이다.
하만은 2022년 독일의 아포스테라(Apostera)를 인수했다. 증강현실(AR)·혼합현실(MR) 기반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자율주행과 커넥티드카 시장에서 전장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행보다.
아포스테라의 기술은 차량 내비게이션, 헤드업디스플레이(HUD), 운전자 보조시스템(ADAS)에 적용돼 운전자가 실제 도로 위에서 가상 안내선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주행 안전성과 편의성을 높인다. 하만의 인포테인먼트·오디오 솔루션과 결합하면 차세대 디지털 콕핏으로 발전이 기대된다.
이 회장이 사법리스크를 벗은 데다 오는 27일 취임 3주년을 맞아 '뉴삼성' 비전 제시에 박차를 가할 경우 해외 M&A에는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유럽 최대 공조 기기 업체인 독일 ‘플랙트그룹’을 인수했다. 삼성전자가 투입한 금액은 15억 유로(약 2조5000억 원)에 달한다. 7월에는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 젤스(Xealth)를 인수해 미국에서 ‘커넥티드 케어’ 서비스 제공에 나섰다.
삼성E&A(대표 남궁홍)는 해외 플랜트 사업 확장을 위해 법인 4개를 편입했으며, 삼성바이오에피스(대표 김경아)와 삼성중공업(대표 최성안)도 각각 1개씩 해외 계열사를 편입했다.
같은 기간 삼성그룹은 청산과 구조조정에도 속도를 내며 5년 동안 해외 계열사 93개를 정리했다. 청산이 66개로 가장 많았고 합병 15개, 지분 매각 12개 등이다.
경영 효율화를 위해 IT 관련 해외 법인을 23개 줄였다. 삼성SDS(대표 이준희)가 국내에서 사물인터넷(IoT) 사업을 정리한 데 이어 해외에서는 중국과 인도 법인을 합병하며 조직을 축소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선다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