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꺼지고 도어 안열려도 하소연할 곳 없어…가전-통신 결합된 '스마트홈' 규제 공백
책임 소재 불명확...전문가 "법적 기준 마련" 필요
2025-10-24 이설희 기자
# 서울에 사는 이 모(여)씨는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후 현재까지 월패드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관리실과 통화도 안되고 외부에서 호출해도 통화나 문열림이 되지 않아 공동 현관문을 열어주러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 씨는 "시공사와 월패드 업체에 수차례 AS 신청해도 전혀 반응이 없다"며 "생활에 너무나도 큰 지장을 주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신축 아파트에 스마트홈 시스템 도입이 급격히 늘고 있지만 관련 하자 분쟁은 제도 밖에 놓여 있어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조명 △난방 △도어락 △환기 △IoT 센서 등 다양한 설비가 앱으로 제어돼 편리하지만 입주 초기부터 꺼지지 않는 조명, 먹통이 되는 월패드, 열리지 않는 도어락 등 오류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고장이 발생해도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 소비자가 적절한 보수를 받기 어렵다는 문제가 반복된다.
△스마트홈 시스템은 건설사가 설치하지만 △하드웨어는 가전사 △소프트웨어는 외부 솔루션사 △통신은 별도 서비스 사업자가 맡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오류가 발생하면 건설사와 가전사, 소프트웨어 등 책임 소재가 뒤엉키기 마련이다. 소비자가 건설사에 보수를 요구해도 외부 솔루션사나 통신 사업자에게 책임을 미루는 등 공방이 이어지면 소비자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경쟁적으로 스마트홈 구축에 나서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홈닉’ ▲현대건설 ‘마이힐스’와 ‘마이 디에이치’ ▲GS건설 ‘자이홈’ 등을 자체 운영 중이다. ▲롯데건설 ▲포스코이앤씨 등 10대 건설사는 대부분 자체 스마트홈 플랫폼을 개발해 설치하고 있다. ▲(주)한화 건설부문 ▲KCC건설 등 중견 건설사들은 대형사들과 업무협약을 맺고 스마트홈을 이용 중이다.
이처럼 스마트홈 설비가 일반화되고 있으나 ‘공동주택관리법’상 하자보수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도 IoT나 스마트홈 설비 관련 조항이 아예 없다.
법 체계 안에서 ‘설비’인지 ‘가전’인지 ‘통신 서비스’인지조차 정의되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분쟁이 발생하면 제도 밖 영역으로 밀려난 소비자가 입증 책임을 떠안게 된다.
조명 제어기와 도어락 등 개별 품목으로 분류될 경우 가전 기준에 따라 1년 무상보증만 적용된다. 하지만 앱 연동 오류나 통신 문제는 제품 결함으로 인정받지 못해 보수 대상에서 제외된다.
건설사들은 분양 단계에서 스마트 조명, 음성 인식 제어, IoT 기반 안전 시스템 등을 앞다퉈 홍보하지만 정작 입주 이후 하자 보수 단계에서의 책임 구조는 비어 있는 셈이다.
◆ 스마트홈 하자 보수 '법적 기준' 마련 필요
전문가들은 스마트홈 설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의하고 유지보수 주체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기별 보증이 아닌 시스템 전체 보증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 앱 기반 제어의 안정성, 보안, 업데이트 의무도 법적 기준으로 포함돼야 한다. 또한 요즘 분양 모델에 스마트홈이 기본화된 만큼 공동주택 하자 범위에 관련 조항을 신설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한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실제로 문제가 발생해도 소비자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사소한 하자들을 제재할 법령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대형사 관계자도 “하자가 발생하는 부분이 다양해 책임주체를 따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 신기술을 규제가 전혀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전했다. 다른 10대 건설사 측도 “현실적으로 당장 법적 제재가 만들어지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가 모든 책임을 지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실제 홈플랫폼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건설사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현재 입주자도 스마트홈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 권익을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 스마트홈 하자 보수 관련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최근 아파트에서 스마트홈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발생되는 하자들이 빠른 시일 내로 정리돼 세세한 보수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며 "책임 소재를 정확하게 따지려면 법령이 먼저 세워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