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3년 이재용, 사법리스크 벗고 광폭 행보로 ‘뉴삼성’ 색 입혀…기술 초격차 복원 과제

2025-10-24     선다혜 기자
7월 미국서 한미 관세 협상을 지원 및 빅테크 글로벌 경영인과 회동, 8월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 참여,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과 오찬, 9월 삼성디스플레이(대표 이청) 아산캠퍼스 방문해 기술 경쟁력 강조, 5년간 6만 명 신규 채용 계획 발표, 10월 일본서 한·미·일 경제대화 참석, 성과연동 주식보상(PSU·Performance Stock Units) 제도 시행,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 서밋 참석 예정.

지난 7월 17일 삼성물산(대표 오세철·정해린·이재언) 불법 승계 사건에서 무죄를 확정받으며 사법리스크를 벗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약 3개월간 이어간 행보다.

이 회장의 광폭 행보 속 미국 관세를 25%에서 15%로 하향하는 협상을 한국과 맺었고, 삼성전자(대표 전영현)는 테슬라와 22조7000억 원 규모의 파운드리 계약을 발표했다.

또 삼성전자는 3분기 86조 원으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2조1000억 원으로 4개 분기 만에 다시 ‘10조 클럽’에 복귀했다.

재계에서는 오는 27일 회장 취임 3주년을 맞는 이 회장의 메시지와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3주년 관련 별다른 행사는 준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 리스크 족쇄 벗은 이재용 회장 ‘뉴삼성’ 色 입히며 핵심 사업 역량 강화

이재용 회장은 취임 당시인 지난 2022년에도 별도의 행사나 취임사 발표 없이 예정된 일정들을 소화했다. 취임 후 그는 줄곧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며 기술을 강조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매년 시설투자와 연구개발(R&D) 투자 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시설투자는 2023년 53조1139억 원, 2024년 53조6431억 원으로 최대를 기록했다.

연구개발비도 2023년 28조3400억 원, 2024년 35조 원을 썼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18조 원을 투입해 반기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반도체 중심의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미래 신사업 확대에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항소심 무죄 선고를 받은 후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데 이어 샤오미 전기차 공장과 세계 최대 전기차업체 BYD 본사를 찾아 전장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삼성전기는 4월 BYD로부터 차량용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대량 공급 승인을 확보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가 이달 1일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글로벌 AI 핵심 인프라 구축을 위한 상호 협력 LOI 체결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달 들어 이 회장은 오픈 AI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장은 지난 2월과 7월에 이어 올해만 샘 울트먼 CEO를 3번이나 만나며 AI 인프라 동맹을 굳건히 했다.

올트먼 CEO가 추진 중인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는 삼성전자의 HBM 등 메모리 반도체가 핵심 역할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인재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6월 글로벌 디자인 전문가 마우로 포르치니와 TSMC 출신 반도체 개발자 마거릿 한을 영입했다. 8월에는 임원 장기성과인센티브를 재개하고 전 직원 성과연동 주식보상제를 도입했다.

이 회장은 전장, 냉난방공조(HVAC) 등 신사업 강화에도 힘줬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독일 냉난방공조업체 플렉트그룹을 약 15억 유로(2조4000억 원)에 인수했다. 이는 2017년 하만 인수 이후 8년 만에 단행된 최대 규모의 M&A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수를 통해 AI·전장·스마트홈 등 미래 산업 전반에서 ‘AI DC(AI 데이터센터) 기반 하드웨어 수직계열화’ 전략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이는 AI 반도체를 시작으로 데이터센터, 냉각·전력관리 시스템, 전장과 스마트홈 기기까지 하나의 기술 축으로 연결하는 ‘AI 인프라 통합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전략이다.

플렉트그룹이 보유한 압축기·열교환 기술은 전기차 히트펌프나 배터리 온도 관리 등 열제어 시스템에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하만을 중심으로 한 삼성의 전장사업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7월에는 미국 디지털헬스케어 기업 젤스(ZELSS), 9월에는 하만과의 시너지를 위한 미국 마시모(Masimo) 오디오사업부를 잇따라 인수했다.

◆반도체 초격차 지위 회복 과제...이재용 등기임원 선임, 그룹 콘트롤타워 재건 관심

사업 역량 강화에 나선 이재용 회장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반도체 초격차 지위 회복이다.

삼성전자는 AI 반도체 시장의 핵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경쟁에서 SK하이닉스(대표 곽노정)에 선두 자리를 내줬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3월 말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에 탑재될 HBM3E(8단) 제품 공급을 시작하며 시장 주도권을 잡았다. 지난해 9월에는 세계 최초로 12단 적층 HBM3E 양산에 성공해 4분기부터 엔비디아 등 글로벌 고객사에 출하를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1년 뒤인 9월에서야 엔비디아의 HBM3E(12단) 품질 인증을 통과했다. 삼성전자는 후발주자로서 내년 상반기 HBM4 양산을 목표로 품질 검증과 생산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회장이 2025 APEC 정상회의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직접 만날지 이목이 쏠린다. 두 사람이 만날 경우 HBM4의 개발 현황과 생산 시점·공급 안정성·성능 향상·가격 조건 등 구체적 로드맵을 놓고 실질적인 논의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고, 결과에 따라 내년부터 시작될 HBM4 경쟁에서는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023년 2월 7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찾아 QD-OLED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하고 있다.

이 회장은 기술 초격차를 위해 계열사 주요 사업도 직접 챙겼다.

삼성그룹은 반도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 등 주요 사업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특히 LCD 패널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삼성디스플레이를 추월하며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OLED 분야에서도 중저가 패널 중심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이에 이 회장은 6월 인천 송도의 삼성바이오로직스(대표 존 림) 사업장을 방문해 5공장 생산시설을 점검하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9월에는 충남 아산의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찾아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점검했다.

디스플레이·바이오 등 비메모리 사업을 강화함으로써 글로벌 경쟁에서 균형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한편 곧 있을 사장단 인사와 임원 인사 방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 회장이 대법원 무죄 확정 이후 처음 맞는 정기 인사로 ‘뉴삼성’ 체제의 방향성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취임 3년을 맞는 이 회장의 등기임원 선임과 함께 그룹 콘트롤타워 재건 가능성도 관심거리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선다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