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제조연한 규정 미비...몇 년 된 재고품 장착해도 소비자 보상 불가
보증 8년뿐, 장착 기준 없어...관리 헛점
2025-10-27 임규도 기자
타이어의 경우 신차에는 생산된 지 2년 이내의 제품을 장착하도록 하고 있지만, 배터리는 8년 보증기한만 설정돼 있다. 따라서 신차에 생산된지 3~4년이 지난 재고품이 장착되더라도 소비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보상 받을 근거가 없는 셈이다.
관련 규정이 없다보니 자동차 회사들은 홈페이지 등에 제조사 정보만 제공할 뿐이다. 배터리 제조일자와 관련된 정보는 차량 인도 시에만 알려주고 있다.
지난해 9월 전기차의 '배터리 제조일 표기 의무화'를 골자로 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해당 내용은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고 국토교통부에서 향후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사용하지 않아도 저장상태, 충전 상태, 온도 등에 따라 내부 화학반응이 진행되고 시간 경과만으로도 용량이 감소한다는 특징을 지녔다. 그렇다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배터리 제조일이 오래된 경우 성능 저하나 품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연차 배터리는 '제조일로부터 2년 이내' 장착을 권장하는 반면 전기차 배터리는 권장 기간조차 없는 실정이다. 소비자가 배터리 노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제조일 확인이 유일한 방법이지만 현재로선 차량을 인도받기 전까진 알 수가 없다.
전기차 배터리는 제조일 등 정보가 바코드 형태로 내장돼 외관만으로는 확인이 어렵다. 배터리 정보는 제조사 정비 시스템을 통해서만 해독이 가능하다. 대부분 전기차 배터리는 차체 하부에 위치하고 있어 소비자가 직접 확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내연차 배터리가 스탬프나 라벨을 통해 외관에 제조일을 표시하고 있는 것과 차이가 있다.
지난 2월17일부터 개정된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개별 배터리에 식별번호를 부여하고 자동차등록원부에 등록하는 제도가 시행됐다. 하지만 자동차등록원부의 경우 자동차 구매 후 등록 시 확인할 수 있어 차량 구매 전까지는 탑재된 배터리의 제조일을 소비자가 알 수 없다.
27일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 전기차를 생산하는 현대차·기아·르노 등 국산차 3개사와 벤츠·BMW·아우디·폭스바겐·포르쉐·폴스타·BYD 수입차 7개사 등 총 10개 주요 완성차 업체를 확인한 결과 홈페이지, 구매 계약서 등에 전기차 배터리 제조일을 고지하지 않고 있다.
다만 10개 제조사 모두 차량 인도 시 소비자가 배터리 제조일을 물어볼 경우 정보를 전달한다고 입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구매를 통해 차량 생산이 시작돼 사전에 배터리 제조일을 소비자에 전달하기는 어렵지만 인도 후에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50조 4항에 따르면 구동축전지(전기차 배터리)를 갖춘 자동차를 판매할 경우 용량, 정격전압, 셀 제조사, 형태, 주요 원료 등을 고지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배터리 제조일 고지 의무는 포함돼 있지 않다.
각 사도 홈페이지를 통해 배터리 정보를 고지하고 있다.
△현대차 △기아 △아우디 △폭스바겐 △포르쉐 등 5곳은 홈페이지에 ①배터리 용량 ②정격전압 ③셀 제조사 ④형태 ⑤원료 등을 고지하고 있다.
아우디 관계자는 “자동차관리법에서 의무적으로 고지해야 하는 항목들을 홈페이지를 통해 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르쉐코리아도 "자동차관리법령 의무규정에 따라 셀 제조사명과 형태, 주요 원료 등 주요 정보를 구매자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벤츠 △BMW △르노 △포르쉐는 홈페이지를 통해 전기차 모델별 ①셀 제조사를 고지하고 있다. 이 중 벤츠만 연식별 배터리 셀 제조사를 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폴스타는 홈페이지에 ①정격전압과 ②용량을 고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현행 자동차관리법에는 제조사의 전기차 배터리 제조일 고지는 의무가 아니다”며 “자동차등록원부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 제조일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화재에 대한 국민적 불안과 배터리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지난해 9월 조은희 의원은 전기차 배터리 정보를 누구나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자동차제작자 또는 판매자가 전기차를 판매할 때 해당 자동차의 배터리 제조일자 등 세부적인 정보를 구매자에게 고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자동차등록증에 배터리 정보를 기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은희 의원실에서는 "지난 9월24일 통과돼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으나 '제조일 표기 의무화'는 별도로 빠져 향후 국토부에서 논의될 예정"이라며 "전기차 배터리 제작 시 들어가는 부품마다 제조일이 다르기 때문에 배터리 완성품의 제조일을 어떤 기준으로 정할 지가 아직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전기차는 내연차에 비해 역사가 짧아 기술적 불확실성이 더 크다”며 “소비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정보에 대해 공개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임규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