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 커진다더니 보험료만 껑충"…설계사 실적 경쟁에 보험 '부당승환' 계약 기승
"보험사 책임 강화,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해야"
2025-10-31     서현진 기자
			#.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에 사는 최 모(남)씨는 2023년 기존에 가지고 있던 B손해보험사의 실손보험을 4세대로 전환 시 1년 동안 보험료를 50% 할인해 준다는 설계사의 권유로 계약을 전환했다. 최 씨가 기존에 가입했던 보험은 종합보험이어서 실손 특약만 전환했다. 그러나 전환 후 7만 원이었던 보험료가 10만 원 가량으로 훌쩍 뛰었다. 최 씨는 "보험료는 더 비싸졌는데 보장은 축소됐다"며 억울해했다.
#. 제주 제주시 조천읍에 사는 유 모(여)씨는 지난해 12월 설계사로부터 C손해보험사에 가입한 보험상품을 리모델링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계약을 전환했다. 김 씨는 실손보험과 암보험을 갖고 있었는데 설계사는 더 좋은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상품으로 전환해 주겠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올 7월 김 씨는 재가입한 암보험이 고액의 보험료를 내야 하며 실손보험 또한 1세대에서 4세대로 전환된 것을 알게 됐다. 김 씨는 "완전히 속아서 가입시켰다는 걸 알았다"며 "환급해 달라고 하니 보장성보험이라 환급금도 없다는데, 그 내용도 처음 들었다"고 분개했다.
#.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사는 김 모(여)씨는 올해 4월 가입돼 있던 D생명보험사 치아보험의 만기일이 도래하자 설계사로부터 다른 상품 가입을 권유받았다. 설계사가 기존보다 보장 내용이 더 좋아졌고 10만 원 보장받던 걸 3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해 수락했다. 그 후 김 씨는 치과에서 레진 치료를 받고 보험금 5만 원을 보장받았다. 기존 상품이었다면 30만 원까지 보장되는 상황이었다고. 김 씨는 "보험료도 전보다 매달 만 원 이상 오른 상황인데 계약 당시 보장이 줄어드는 내용에 대해선 언급도 없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보험 설계사들이 기존 계약보다 더 보장이 좋다며 상품을 갈아타게 하는 이른바 '부당승환'으로 피해를 입는 소비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 과정에서 오히려 보장이 축소되고 보험료가 비싸졌다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보험사들은 계약 승환 시 기존 보험과 재계약하는 상품을 비교하는 확인서를 안내하고 있고 고객 또한 해당 내용을 인지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민원이 들끓자 생명·손해보험협회는 지난 29일 내년부터 '자사 승환계약률 비교공시' 항목을 신설해 승환계약이 빈번한 보험사를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31일 소비자고발센터에(www.goso.co.kr)에 따르면 일부 보험 설계사들이 기존 가입자에게 새로운 상품으로 전환을 권유하는 이른바 '보험 갈아타기'시 보장 축소, 보험료 인상 등 불이익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피해를 입었다는 소비자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소비자들은 '보험료를 낮출 수 있다', '보장 혜택이 더 좋아진다'는 말을 믿었으나 보장은 줄고 보험료는 늘었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신한라이프생명, 라이나생명, 동양생명 등 생명보험사뿐 아니라 삼성화재,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한화손해보험 등 손해보험사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다.
이같은 부당승환은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보험업법 제 97조에 따르면 부당승환은 보험설계사나 보험회사가 이미 체결된 기존 보험계약을 부당하게 해지·소멸시키고 유사한 새 계약을 체결하게 하는 행위며 이같은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기존 계약 해지 후 1개월 이내에 새 계약을 체결하거나 ▲6개월 내 보험기간·이율 등 주요 내용을 비교 안내하지 않은 경우 법률상 '부당승환'으로 보고 있다.
부당승환이 발생하는 주 요인은 설계사의 실적 경쟁 때문이다. 설계사는 소비자에게 보험 상품을 판매한 뒤 그에 대한 판매수수료를 받는다. 신규계약은 어렵고 고객 자금은 한정돼 있으니 기존 계약들을 타 상품으로 재계약시키는 행태가 반복되는 것. 최근 설계사 스카우트 과정에서 지급되는 과도한 정착지원금 또한 부당승환을 양산한다는 지적이다.
부당승환이 기승을 부리자 보험업계도 자체 정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29일 생명·손해보험협회는 내년부터 상품비교공시정보 시행세칙을 개정하고 자사 승환계약률 비교공시 항목을 신설해 승환계약을 일삼는 보험사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부당승환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피해 호소에도 구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이 재계약 시 상품설명 등 약관에 대한 설명을 모두 이해했다는 동의서를 작성하기 때문이다. 설계사는 부당승환이 적발될 경우 모집을 정지하는 등 제재한다.
보험사들은 계약 승환 시 법적으로 비교대상확인 안내 기준을 설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형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비교대상확인은 기존 보험 상품과 새로 계약할 상품의 보장 내용이나 보험료 등을 각각 비교해주는 확인서"라며 "법적으로 설계사가 해당 내용을 고객에게 안내하고 고객이 인지했으면 사인을 받는다. 이런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보험 상품이 어려워 소비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또 다른 대형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상품설명, 자필서명 등 판매가 프로세스대로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설계사에 대한 완전판매 교육이 충실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 전문가들은 부당승환 피해를 막기 위해선 설계사보다 보험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 모아 말하고 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보험 계약 시 설계사에게 넘어가는 판매수수료 비중이 높다 보니 부당승환이 문제가 된다. 다만 이는 설계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험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협회에서 승환계약률 비교를 공시하면 투명성이 강화되고 보험사들 또한 자체적으로 관리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소비자들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조혜진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협회 측에서 자발적으로 비교 공시하는 건 정말 바람직한 일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활용해 소비자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예를 들면 비교 공시를 보험 판매 시 현장에 비치하거나 설명하는 등 당국의 금융소비자보호 기조와 발 맞춰 나가면 좋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서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