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통신·교육 서비스, 가입자 사망시 위약금 면제 맞아?...약관 없고 현장 갈등 다발

공식 입장 "입증 서류 제출시 위면해지"

2025-11-17     정은영 기자
#사례1 부산시 영도구에 사는 조 모(여)씨는 "최근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SK텔레콤에서 인터넷과 휴대폰 지원금 116만 원을 납부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며 황당해했다. 조 씨는 “저는 단순히 대리인일 뿐인데 책임을 묻는 건 부당하다”며 “만약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이라면 이런 경우엔 누가 부담하느냐”고 호소했다.

#사례2 서울시 동대문구에 사는 이 모(남)씨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사용하던 쿠쿠홈시스 비데 렌탈 계약 해지시 약 60만 원의 위약금을 청구 받았다고 기막혀했다. 이 씨는 “계약자 사망이라는 불가피한 사정에도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쿠쿠홈시스 측은 "사망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 위약금이 면제된다. 해당 건도 사망신고서를 제출해 위면해지 처리됐다"고 설명했다.

#사례3 대구시 달서구에 사는 구 모(남)씨는 고모가 LG헬로렌탈에 TV와 세탁기를 렌탈해 사용하던 중 사망해 업체에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업체 측은 "일정 기간 요금을 낸 뒤에는 완전히 명의자 소유가 되는 계약 형태"였다며 해지 시 약 200만 원을 청구했다. 구 씨는 이용할 사람도 없는데 200만 원 때문에 해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답답해했다. LG헬로렌탈 측은 "임대가 아닌 할부판매 계약이라 렌탈이 종료된 후 고객이 제품 소유권을 갖는 구조"라며 비용이 청구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사례4 경남 양산에 사는 배 모(여)씨는 모친이 생전에 가입했던 뇌새김 외국어 스마트학습 계약 관련해 남은 렌탈료를 청구 받아 부당함을 호소했다. 배 씨는 어머니가 가입했던 내용을 알지 못해 학습지도, 렌탈 기계도 갖고 있지 않다고 호소했으나 소용 없었다. 배 씨는 "담당자에게 이용자 사망 시 회사 규정을 알려달라고 했으나 없다더라"면서 "가족이 이를 대신 갚아야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황당해했다.

가전렌탈과 통신, 교육 등 서비스 가입자가 사망한 뒤 업체가 유족에게 위약금을 청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있다.

법률적으로는 채권이 상속돼 유족에게 위약금을 청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관련 기업들은 사회적 정서를 감안해 위약금 없이 계약을 종료하는 ‘위면해지’가 가능하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자녀나 친척 등 유족에게 위약금을 전가하면서 다툼이 잦고 일부 업종은 약관에 관련 규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통신업계는 이용약관에 ‘가입자 사망 시 위약금 면제’를 명시하고 있지만, 가전렌탈·교육업계는 약관상 규정이 없어 현장에서 담당자 안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도 가전렌탈 서비스 계약자 사망시 위약금 부과를 두고 다투는 민원이 통신 서비스 보다 다발하고 있다. 교육업체도 약관엔 이같은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으나 이용 연령대가 낮아 민원은 드물었다.

17일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 △가전렌탈업체 5개사와 △통신업체 5개사 △교육업체 3개사 등 총 13개 업체를 조사한 결과 모두 계약자 사망 시 증빙 서류를 제출하면 위면해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전렌탈업체와 교육업체는 공식 홈페이지 이용약관 어디에서도 '사망시 위면 해지' 규정을 찾아볼 수 없다. 

▲LG전자 ▲코웨이 ▲쿠쿠전자 ▲SK인텔릭스(SK매직) ▲청호나이스 등 가전렌탈 5개 업체는 약관엔 명시하고 있지 않으나 공식적으로 '명의자 사망 시 입증 서류를 제출하면 위면해지가 가능하다'고 공통된 입장을 밝혔다.

LG전자, 청호나이스 측은 "구독 계약자가 사망했을 경우 계약자 본인의 사망진단서 등 사망을 유효하게 증명할 수 있는 증명서를 제출하면 위약금이 면제된다"고 전했다.

코웨이 관계자는 "계약자 사망시 계약자의 기본증명서를 증빙서류로 제출하면 위약금, 등록금 등 비용이 면제된다"고 설명했다. SK인텔릭스 측은 사망진단서, 직계가족 신분증, 가족관계 증명서를 요구하고 있다.

▲교원(구몬·빨간펜) ▲웅진씽크빅 ▲대교 등 주요 교육업체들도 약정 상품 계약자가 사망 시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 위면해지 처리된다. 이 경우 태블릿 등 학습 기기는 회수되며 남아 있는 할부금은 면제된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LG헬로비전 등 통신서비스 업체들은 이용약관상 계약자가 사망, 이민 등 불가피한 사유로 계약을 유지할 수 없을 경우 위약금 면제 대상임을 명확히 적시하고 있다.

이들 업체 관계자는 "계약자의 사망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할 경우 위약금이 면제된다"고 입 모았다. 다만 계약 당시 대리점으로부터 지원금이나 사은품을 받았을 경우에는 대리점에 따라 환급을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체가 위약금을 요구해도 법적으로 문제될 소지는 없다. 렌탈계약 채권은 렌탈업체에 있고 채무는 자연스럽게 상속되기 때문에 상속자는 계약을 이행할 의무가 생긴다. 계약자가 사망하더라도 계약은 유효해 업체가 상속자에게 위약금을 요구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자 전문가는 명의자가 사망 시 위약금을 무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며 현장 실무자들이 책임을 갖고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영애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렌탈이나 통신 계약자가 사망했을 경우 위약금 없이 해지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만약 계약자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위약금을 무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정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