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 안내대로 셋톱박스 문 앞에 뒀는데 분실"…통신사 장비 위약금 부과에 소비자 분통

회수 지연·유실 책임 공방…민원 잇따라

2025-11-24     이범희 기자
경기 수원에 거주하는 이 모(남)씨는 LG유플러스 인터넷을 해지하며 상담사로부터 “장비 회수를 해야 하니 포장해 문 앞에 두라”는 안내를 듣고 따랐다. 이틀간 집을 비워야 해 본인이 있을 때 방문하길 원했으나 상담원이 "괜찮다"고 말했다는 게 이 씨 주장이다.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문 앞에 둔 장비가 없기에 회수된 줄 알았으나 한 달 뒤 '장비 미회수'로 15만 원의 위약금 고지서를 받았다. LG유플러스 측은 "장비가 사라져 이 씨에게 여러차례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아 위약금이 청구됐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취재 후 통신사와 소통했고 위약금을 취소해 줬다"고 전했다.

서울시 관악구에 사는 신 모(남)씨는 KT스카이라이프의 인터넷TV 상품을 사용하다 지난 3월 약정 만료로 해지했으나 업체에서 셋톱장비를 3개월째 회수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지난 6월 소비자에게 장비를 분실했다며 '분실 장비 요금'을 납부하라는 고지서를 보냈다. KT스카이라이프 측은 업무 위탁 계약을 체결한 대리점, 고객센터에서 누락해 발생한 일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취재 당시 고객에게 청구했던 분실비와 가산금은 모두 철회하겠다고 전했다. 

셋톱박스·공유기 등 인터넷 통신 장비는 계약 해지 시 업체에 반납해야 하지만 회수 과정에서 분실돼 위약금 분쟁으로 번지는 사례가 적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 

소비자들은 통신사가 해지를 막기 위해 장비를 제때 수거하지 않거나 안내대로 문 앞에 뒀는데도 분실되면 모든 책임을 소비자에게 돌린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통신사들은 소비자 귀책사유로 장비가 분실됐다고 판단되면 손실보상금을 청구해 갈등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 KT스카이라이프 등 통신업체는 공통적으로 “임대 장비를 고객이 분실하거나 훼손한 경우 해당 비용을 배상해야 한다”는 규정을 약관에 명시하고 있다. 회수 방식은 통신사별로 달랐다.

KT와 SK브로드밴드는 업체서 방문해 수거해가는 게 원칙이나 소비자 선택에 따라 직접 반납할 수도 있다. KT는 직영매장인 KT플라자에 고객이 직접 반납 가능하고 SK브로드밴드는 우체국택배를 이용한 택배 발송 방식이 있다. LG유플러스는 반환 방식이 가장 다양하다. △홈매니저 방문 회수 △택배 기사 방문 △편의점 착불 발송 등 세 가지다. KT스카이라이프는 '수거사유 발생일 또는 고객과 협의한 수거 예정일 이내에 설치 장소에서 회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약관에 명시해 다른 통신사처럼 방문 회수를 기본 절차로 설정하고 있다.

KT는 인터넷 해지 시 장비 회수팀이 소비자와 일정을 협의해 방문 수거하는 방식을 원칙으로 운영한다. KT플라자 등 직영 매장에서 직접 반납하는 것도 가능하나 이때도 방문 일자를 조율해야 한다. KT 관계자는 “정해진 회수 기일은 없으나 소비자가 요청한 날짜에 맞춰 방문해 수거한다”고 밝혔다.

통신사들은 회수해야 말 통신 장비가 사라지면 과실 여부, 사실관계 등을 따져 위약금 청구를 결정한다.

LG유플러스는 소비자가 인터넷을 해지하면 이후 최대 6주 동안 전화 3회·문자 2회 등 총 5회 이상 장비 회수 관련 내용을 안내한다고 밝혔다. LG 유플러스 등 통신 “만약 장비가 사라진 경우라면 고객과 소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위약금 부과 여부를 판단한다”고 말했다.

장비 분실에 소비자 책임이 큰 경우 통신사는 자체 산정식에 따라 손실보상금을 책정한다.

SK브로드밴드와 KT는 ‘{(60개월-해당장비 사용월수) ÷ 60개월} × 장비가격’을, LG유플러스는 ‘{(48개월-해당장비 사용월수) ÷ 48개월} × 장비가격’을 적용한다. KT스카이라이프는 ‘{(72개월-해당장비 사용월수) ÷ 72개월} × 장비가격(분실 시점 시가)’을 적용한다. 사용 기간이 72개월을 넘기면 손실보상금은 부과되지 않는다.

즉 사용 기간이 길수록 감가가 누적돼 부담액이 줄고, 사용 기간이 짧을수록 반환해야 할 금액이 커지는 구조다. 부속품은 감가 없이 정액으로 청구된다. 예컨대 일반형 리모컨은 1만1000원, UHD형 리모컨은 2만2000원, 어댑터는 1만1000원 등이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모뎀·셋톱박스 등 임대 장비는 해지일 또는 소비자와 협의한 회수 예정일로부터 영업일 기준 5일 이내에 회수돼야 한다. 이 기간을 넘겨 발생한 장비 분실이나 훼손에 대해서는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소비자에게 가까운 지점 방문이나 정확한 회수 일정 협의를 안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교수는 “이런 유형의 분쟁은 시간이 지나면 환급이나 배상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해지 과정에서 녹취 파일, 문 앞에 둔 경우 사진·영상 증거 등 소비자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기록을 반드시 남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