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가 왜 수사 전문가를 채용하지?...보이스피싱 '무과실 배상제' 추진에 은행 초비상

2025-12-24     박인철 기자
국회가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하면 은행 등 금융회사의 과실이 없더라도 일부 또는 전부를 배상하도록하는 '무과실 배상책임제' 입법 추진에 나서면서 4대 시중은행에 초비상이 걸렸다.

올들어 10월까지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조566억 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피해액 8545억 원을 넘어선 만큼 법안이 시행되면 은행권의 배상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3일 더불어민주당 조인철 의원과 정무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강준현 의원은 금융사의 무과실 배상책임을 골자로 한 '전기통신 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보이스피싱 피해 발생 시 금융사의 무과실 배상책임을 지게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개인들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과도하게 지고 있는 만큼 금융시스템은 피해 회복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사의 보상 한도를 최대 5000만 원으로 하되, 피해자 계좌의 금융사와 사기 이용 계좌의 금융사가 절반씩 보상액을 분담하도록 설정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다만 이용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금융회사가 보이스피싱 방지를 위해 충분히 노력했거나 이용자의 고의·중과실 있는 경우는 보상 책임을 면제했다.

국회의 입법 추진에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4대 은행은 인력 충원과 고객 정보 공유 등으로 발빠르게 보이스피싱 방지 대책을 세우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8월부터 선제적으로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인원을 11명에서 25명으로 2배 이상 늘렸다. 최근 피해가 급증하는 범죄 유형을 분석해 집중 탐지하는 업무를 수행했는데 한 달에만 사기계좌 1306건, 피해액 약 225억 원을 예방했다.

지난 달부터는 LG유플러스와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 업무협약(MOU)를 체결하고 금융과 통신 데이터를 결합한 AI 기술 기반의 예방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KB국민은행이 거래 패턴, 계좌 행동 데이터, 채널 이용 이력 등 금융 데이터를 분석하면 LG유플러스는 AI 통화앱 ‘익시오’의 실시간 보이스피싱 탐지 기능, 악성앱 설치여부, 위험 URL 접속여부 등 보이스피싱에 자주 활용되는 통신 특성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선별하는 식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이 단순한 금융 범죄를 넘어 사회적 피해를 초래하는 중대한 문제인 만큼 고객의 재산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금융그룹 차원에서 대응에 나선다. 지난 9월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아 은행·카드·투자증권·생명보험 등 4개 자회사가 보이스피싱 의심 거래 발생 시 고객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금융지주의 공동 대응으로 동시다발적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한 일괄적인 임시조치 등도 가능해진 만큼 고객보호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달에는 보이스피싱 제로 3차년도 사업 계획을 발표하며 ‘온라인 예방교육’을 새롭게 선보였다. 중위소득 100% 이하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자들에겐 최대 300만 원의 긴급 생계비도 지원할 예정이다.

하나은행은 2018년 금융권 최초로 AI 기반 탐지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지속 업데이트를 통해 피해방지에 힘쓰고 있다.

올해는 단순 거래 패턴 비교에 머물던 시스템을 나선형·합성곱 신경망(CNN) 알고리즘이 결합한 지능형 분석·탐지시스템으로 구축했다. 이제는 보이스피싱이 벌어지기 직전에 순간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구조까지 발전했다.

지난해 2818억 원 규모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했는데 올해는 그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금융거래 적정성 점검 체계 구축과 실시간 이상거래탐지시스템 운영에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부터 은행권 최초로 경찰·수사 전문가 채용에 나섰다.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대응 체계를 전문가 집단으로 구축해 신종 금융사기 수법을 모니터링하는 전담 조직을 구성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다.

AI,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등 첨단 기술력과 수사 전문 인력의 시너지로 보이스피싱 방어막을 구축해 예방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9월부터는 보이스피싱 예방전문기업 ‘씽크풀’과 함께 AI 기반의 체험형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