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이 직접 통솔하는 금감원 소비자보호조직, 실효성 있나? 전문가들 "기대 반, 우려 반"
2025-12-23 박인철 기자
‘금융소비자 보호’ 방식이 기존에는 '사후 수습' 위주였다면 이번 개편으로 상품의 설계 단계부터 개입해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는 ‘사전 예방적’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 금소원 설립까지 고려했다가 무산...소비자보호 실질적으로 강화됐나?
금감원은 지난 2012년 소비자보호 기능 강화를 위해 원내 '금융소비자보호처(이하 금소처)'를 별도 신설했지만 금감원의 금융회사 검사·감독 기능과 따로 논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더욱이 금소처의 업무 상당 부분이 민원이나 분쟁조정 등 직원들이 기피하는 업무가 많다보니 내부에서도 금소처로 우수 인력이 가지 않으려는 현상이 발생하는 등 고충이 상당했던 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와 당국은 금소처를 별도 조직을 떼서 '금융소비자보호원' 설치도 검토했지만 무산되는 촌극이 벌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번 개편안에서는 주요 소비자보호 담당부서가 원장 직속 조직으로 편제되면서 권한과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특히 베테랑 국장 3명을 소비자보호담당 부서에 배치하면서 바짝 힘을 준 것도 특징이다.
소비자권익보호국을 신설해 소비자보호실태평가 전담 팀을 기존 1개에서 2개로 늘리게 된 점도 성과 중 하나다. 소비자보호실태평가는 인력부족 및 금융권 건의로 수 년 전 3년 주기제로 변경됐는데 평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번 개편으로 소비자보호실태평가 주기가 더 짧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권익보호국을 신설하여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운영 및 금융회사에 대한 소비자보호 실태평가를 전담하기로 하는 것도 성과 중 하나다. 그간 소비자와 금융회사 간 분쟁에 대한 조정 기능(금소처)이 상품심사 및 제도 담당 부서(금소처 외)와 분리되어 운영되면서 피해 유발요인이 사후적으로 확인되는 경우가 잦았다.
이번 개편으로 주요 소비자 보호 부서가 원장 직속으로 편제되면서 금소처 내 분쟁조정 처리 기능을 각 업권으로 이관해 상품심사부터 분쟁조정, 감독·검사까지 일괄 처리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소비자단체·학계 등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원장 직속의 자문위원회 운영에 분쟁조정위원회 및 소비자보호 실태 평가도 전담한다.
이번 조직개편은 소비자 피해 발생 이후의 사후 구제보다 상품 설계·판매 이전 단계에서 위험을 차단하는 사전 예방 기능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예를 들어 판매량 급증, 언론·민원 신호, 미스터리 쇼핑 결과, SNS 광고·홍보 등 지표를 종합해 ‘노이즈’가 있는 지점을 조기에 포착해 집중 점검한다. 분석 후 실제 소비자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면 ‘소비자 위험 대응 협의체’에 올려 공식 대응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또 상품의 설계·제조 단계에서부터 판매·사후관리에 이르는 금융상품 전 생애주기에 걸쳐 단계별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한다.
조혜진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보호총괄 부문을 원장 직속으로 편제해 사전예방적 소비자 보호를 전사적으로 추진한 부분과 금감원장 직속 소비자보호총괄 부문이 모든 감독 수단을 활용할 수 있도록 변경한 것은 금융소비자보호에 중점을 두겠다는 금융당국의 의지가 보인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금융사고나 피해가 발생한 이후에 후속처리 해결에 초점을 두었던 소비자보호업무가 사전피해예방 차원으로 확산되어 금융상품/서비스의 설계/개발 단계부터 판매/ 판매후 전과정에 걸쳐 금융소비자보호가 총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한 점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개편에 변화 의지 보여... 배치 바꾸는 데 그치지 말아야"
전문가들은 형식적인 구조 변화보다 실질적 권한과 책임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정수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소비자보호 총괄을 원장 직속으로 두어 사전예방적 소비자보호를 추진한다는 것은 사전예방 강화 차원에서 의미는 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구조만 바뀐다고 하여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권한과 책임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상품 심사와 분쟁 조정을 한 부서에서 한다면 상품 출시 전에 소비자보호 관점에서 모니터링하고 상품에 대해 수정 보완 거부 지시가 가능하도록 실질적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조혜진 교수 역시 “심각한 소비자 피해를 유발하는 민생금융범죄 척결을 위해 특별사법경찰도입 추진을 공식화하거나 민원이 가장 많은 보험을 금소처 소속으로 이동해 내실화를 추구한 점은 기대되는 부분”이라면서도 “원장 직속 의사결정을 통해 실효성 있는 금융 정책을 집행할 수 있도록 모멘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금감원이 기존 분쟁조정 부서를 각 업권에 편제시켜 소비자보호의 실효성을 높인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금융회사와의 소통을 비롯한 섬세한 접근도 병행되어야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정연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에는 분쟁 해결 중심이었다면 이제 금융사 운영 전반에 걸쳐 소비자 보호라는 문제를 신경쓰도록 재편했다는 점에서 변화의 의지가 느껴진다”라면서도 “메시지는 확실하나 전례가 없던 제도와 조직이 만들어졌는데 배치만 해놓고 상품 중심으로만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개별 금융사와 당국 간에 소통을 통해서 목표하는 바를 잘 이룰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규복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 혁신이 필요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전예방을 강화하겠다는 금감원의 방향은 맞다고 본다. 다만 어떻게 강화할지가 더 중요하다”면서 “사전예방이나 사후조치나 장단점이 있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소비자 보호를 계속 강조했던 만큼 기존 관행들과 얽히지 않으면서 소비자 보호를 잘 이끌어갈 수 있는 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소비자보호 강화 의지를 드러낸 만큼 편면적 구속력 부여나 집단소송제도 도입, 징벌적 손해배생제도 현실화 등 보다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도 보고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사전 예방에 집중하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해야 핵우산처럼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