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 하나 받았을 뿐인데 약정 연장…무료 기기 교체·사은품 뒤에 숨은 '재계약'
통신·렌탈·상조·우유 배달까지, 소비자 불만 속출
2026-01-02 이범희 기자
#사례2 전북 전주시에 사는 주 모(여)씨는 약 2년 전 B유업체 대리점을 통해 우유 배달을 18개월 약정으로 계약했다. 주 씨에 따르면 계약 종료 시점 무렵 대리점에서 비타민 제품을 주며 “본사에서 연락 오면 계약 자동 연장에 동의한 것으로 말하라”고 요청했다. 주 씨가 항의하며 우유 배달을 거부하자 대리점 측은 이미 계약이 연장됐다며 위약금을 요구했다. B유업체 관계자는 “대리점과 고객 간 계약으로 본사가 직접 개입하거나 변경을 결정할 수 없다. 주요 조건 변경이나 재계약 여부는 계약서를 통해 확인이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사례3 서울 용산구에 사는 김 모(여)씨는 지난 2020년 부모가 C렌탈업체 정수기를 3년 약정·5년 의무사용으로 계약을 맺었으나 만기를 앞두고 6년 약정으로 재계약된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김 씨에 따르면 그의 부모는 영업점 직원이 "월 렌탈료가 낮아진다"는 점을 ‘혜택’으로 설명했을 뿐 계약이 연장됐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 김 씨는 “부모님은 재계약된 줄도 모르더라. 2년만 더 사용하면 기기 소유권이 이전돼 재계약도 필요없는 상황이었다”고 꼬집었다. C렌탈업체 측은 “녹취 확인 결과 조건이 충분히 안내된 상태에서 재계약이 진행됐다”고 해명했다.
#사례4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오 모(여)씨는 D통신사의 인터넷 약정 기간 3년이 종료돼 다른 상품을 알아보던 중 1년을 더 사용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고 부당함을 호소했다. 약정 기간 중 AI 스피커 고장이 잦아 통신사 측 안내에 따라 기기를 교체한 게 화근이었다. 오 씨는 단순히 단말기 교체인 줄 알았으나 약정이 1년 연장됐던 것. 오 씨는 “장비 불량으로 교체했을 뿐인데 추가 약정으로 처리해 모든 부담을 소비자가 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가전렌탈, 통신, 상조, 우유 배달 등 여러 약정형 상품에서 사은품 제공이나 무료 기기 교체를 내세워 소비자 모르게 재계약을 유도하는 사례가 반복되며 불만이 커지고 있다.
업체들은 가입자에게 조건 등 내용을 충분히 고지했다고 주장하지만 혜택만 부각되고 계약 연장 사실은 명확히 안내하지 않아 소비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구조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일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 따르면 계약 확인이나 혜택 안내로 인식한 업체 상담 과정에서 실제로는 약정이 연장되거나 새로운 계약이 체결됐다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대면이 아닌 전화 상담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들이 계약 변경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호소가 이어졌다.
△코웨이·쿠쿠전자·청호나이스·SK매직(SK인텔릭스) 등 가전렌탈과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등 약정형 상품 전반에서 유사한 형태의 민원이 속출했다.
그러나 이들 업체 모두 계약 연장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다고 밝혔다.
상조업체 관계자는 "분쟁 발생 시 상담 녹취를 기준으로 불완전판매 여부를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만기 해지와 연장, 전환 등 선택지를 가입자에게 안내한다. 만기 연장은 고객 동의를 확인한 뒤 전화 녹취 계약 방식으로 체결된다”고 설명했다. "계약 체결 이후에는 카카오톡 알림톡과 홈페이지, 고객센터를 통해 계약 내용과 취소·위약 규정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렌탈사 측은 “계약 구조와 약관에 대한 소비자의 인지 부족으로 오해가 발생하는 사례가 일부 있다”면서도 “방지하기 위해 녹취와 전자계약 등 절차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소비자가 별도 이의 제기 없이 계약 절차를 완료한 경우 이를 문제 삼아 계약 효력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소비자 전문가들은 소비자가 오인해 계약한 책임이 사업자에게 있다고 봤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명예 교수는 “기기 교체나 사은품 제공을 계기로 약정이 연장됐다는 분쟁과 관련해 소비자가 계약 내용을 오인했다면 그 책임은 원칙적으로 공급자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소비자가 계약 체결 당시나 이후 업체 측과 주고받은 △녹취 △문자 △안내 자료 등 객관적 증거를 확보·보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자료에서 오인을 유발하는 표현이나 설명 부족이 확인된다면 이를 근거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