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분쟁 The50 ③] 8년된 레몬법 여전 '무용지물'...신차 중대 불량에도 무한수리 반복
제조사 중심 설계로 소비자 구제 부실
2026-01-22 임규도 기자
# 수원시 영통구에 사는 엄 모(여)씨는 지난해 11월 현대차 쏘나타를 출고한 지 3일 만에 시동이 걸리지 않아 서비스센터에 입고시켰다. 배터리를 교체한 뒤 차량을 출고했지만 일주일 만에 배터리가 방전돼 발전기 부품을 교체했다. 이후 세 번째 배터리가 방전돼 ECU(전자제어유닛)을 교환했다. 지친 엄 씨가 제조사와 서비스센터 측에 차량 환불을 요청했으나 수리로 해결이 가능하다며 거절했다. 엄 씨는 “신차 출고 후 주행거리 100km가 안되는 상황에서 배터리 방전 문제가 3번이나 발생했다. 제조사에 환불을 요청했으나 명확한 안내 없이 수리만 반복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 대구시 동구에 사는 안 모(남)씨는 2024년 4월 BMW i7 차량을 구매했다. 출고 10개월 뒤인 작년 2월 차량 히터 가동 시 소음이 발생하고 시동이 걸리지 않는 문제로 서비스센터에 입고시켰다. 직원은 콤프레셔가 문제라며 교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품 조달에 시간이 소요될 수 있고, 조립 후 테스트 과정에서 정상 작동하지 않을 경우 재조립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10일이 지나 콤프레셔를 교체했지만 정상 작동되지 않아 다시 분해·조립이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결국 서비스센터에 입고한 지 50일이 지나서야 차량을 출고할 수 있었다. 안 씨는 “1년도 안 된 차량이 수리 대기에만 50일 이상 소요됐다. 차량 교환을 요구했으나 수리만 고집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 서울시 성북구에 사는 정 모(남)씨는 2024년 11월 구매한 벤츠 GLE 450d에서 지난해 5월 엔진오일 경고등이 점등돼 서비스센터를 방문했다. 센터에서는 차량을 점검했고 직원은 경고등이 다시 점등되면 재방문하라고 안내했다. 이후 두 달 뒤인 7월 엔진오일 경고등이 재점등돼 엔진오일을 교환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과 10월에 걸쳐 엔진오일 경고등이 두 차례 점등됐고 그때마다 엔진오일 교환과 센서 교체 등 단순 수리만 이뤄졌다. 정 씨가 제조사에 차량 교체를 요구했으나 단순 소모품 문제라며 거절했다. 정 씨는 “4회에 걸쳐 동일한 결함이 반복되고 있지만 소모품 문제로 치부하며 교환을 거부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 경기도 하남에 사는 김 모(남)씨는 지난해 8월 제네시스 GV80 차량을 구매했다. 주행거리 500km 시점에 고속도로 주행 중 엔진 경고등이 점등되며 차체 떨림과 가속 불능 현상이 발생해 차량을 서비스센터에 입고시켰다. 직원은 3번 실린더 실화 문제라며 1번과 3번 실린더의 위치를 바꾸는 수리를 진행했다. 그러나 10일 뒤 증상이 재발해 다시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두 번째 방문에서는 3번 실린더를 원상복구하고 엔진 계통을 교환한 뒤 차량을 출고했다. 이후 15일 만에 고속도로 주행 중 동일한 증상으로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직원은 4번 실린더 문제라며 부품을 교체했다. 김 씨는 “신차 출고 한 달 만에 엔진 결함으로 세 차례나 부품을 교체했지만 언제 다시 문제가 재발할지 몰라 불안하다. 수리로만 덮을 게 아니라 교환이나 환불 등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출고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차에서 동일한 결함이 반복되고 있지만 제조사는 차량 교환이나 환불 대신 수리만 고집하고 있어 소비자들이 발을 구르고 있다.
신차 구매 후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한국형 레몬법이 도입된 지 8년차에 접어들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실효성을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형 레몬법은 신차에서 중대한 하자나 일반 하자가 반복될 경우 소비자가 차량 교환 또는 환불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2017년 자동차관리법 개정으로 도입돼 2019년 1월1일부터 시행됐다. 자동차관리법 제47조의2(자동차의 교환 또는 환불 요건)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인도 후 1년 이내 또는 주행거리 2만km 이내 차량에 한해 적용된다. △중대한 하자 2회 △일반 하자 3회 수리 후 같은 하자가 재발한 자동차와 △1회 이상 수리한 경우 누적 수리기간이 총 30일을 초과한 자동차가 교환·환불 신청 대상에 포함된다.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해 차량 교환 또는 환불을 진행할 수 있다. 하자 재발 사실을 제조사에 서면으로 통보한 뒤 정비·점검명세서 등 관련 자료를 제출해 중재 절차를 진행한다.
한국형 레몬법이 시행된 지 8년 차지만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9년 제도 시행 이후 2023년 4월까지 자동차 교환·환불과 관련한 중재 신청은 1954건이다. 이 중 실제로 교환이나 환불로 이어진 판정은 13건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신청 건수 대비 인용 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교환 환불이 아니라 반복 수리로 땜빵 처리만 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소비자들은 부품 교체 등으로 수리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제조사가 레몬법에따라 교환이나 환불 등 근본적인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복되는 고장으로 교통비 등 금전적 부담과 서비스센터를 오가는 데 따른 시간 손실, 차량을 이용하지 못하는 불편 등은 모두 소비자에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의도적으로 수리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신차의 경우 결함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더라도 고장 원인을 단번에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고장 가능성이 높은 부품부터 순차적으로 교체하는 ‘예측 수리’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국산차 업계 관계자는 “차량에 탑재되는 부품이 2~3만 가지가 넘어 문제가 의심되는 부품부터 교체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다보니 반복 수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예측 수리 방식이 반복되면서 서로 다른 부품 교체 이력이 남게 되고 이후 조정·중재 단계에서 동일한 고장 증상임에도 같은 하자로 인정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신차 교환·환불 중재 규정 제7조에 실질적 동일성으로 특정 부품의 같은 하자와 동일 기능에 연관된 장치들의 하자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형 레몬법의 중재 신청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자는 동일한 결함으로 수리를 받고 해당 수리 내역이 이미 제조사 시스템에 남아 있음에도 별도의 법정 양식 서면으로 ‘하자 재발 통보’를 제조사에 반드시 전달해야 한다. 정비·점검명세서를 제조사로부터 직접 발급받아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 제출해야 하는 절차도 요구된다.
제조사가 이미 인지하고 있는 결함 사실을 비전문가인 소비자에게 번거로운 서면 작업으로 다시 통지하도록 강제하는 구조다.
이로 인해 통보 절차 누락을 중재 신청 결격 사유로 삼아 교환·환불을 어렵게 만드는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자동차 전문가는 현행 한국형 레몬법이 제조사 중심으로 설계됐다고 지적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행 한국형 레몬법은 소비자가 고장이 여러 차례 반복될 것을 미리 예상해 중재를 신청하지 않으면 이후에는 중재 대상에서 제외되는 구조로 제조사에 우호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가 체감하기에는 동일한 고장 증상이 반복됐음에도 정비 내역에는 스티어링 칼럼, 조인트 암 등 수리 항목이 조금씩 다르게 기재되면서 ‘동일 정비가 아니다’는 이유로 인용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며 “부품이나 정비 항목이 달라졌더라도 소비자가 느끼는 이상 증상이 같다면 동일한 고장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임규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