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아파트 보일러 무상보증기간 제각각...경동은 '입주일', 귀뚜라미·린나이·대성쎌틱 '설치일'

"가전 아닌 건축 설비로 분류"

2026-02-11     이설희 기자
# 대구에 사는 김 모(여)씨는 2023년 2월 신축 아파트 입주 당시 설치돼 있던 대성쎌틱 보일러가 지난 1월 고장 나 업체에 수리를 요청했다. 연소통을 교체한 후 수리비로 27만4000원을 청구 받은 김 씨는 의아했다. 가스보일러 품질보증기간 3년이 지나지 않아 무상으로 수리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체 측은 설치일을 기준으로 3년이 지나 수리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실제 사용을 시작한 시점은 2023년 2월인데 사용 이전에 설치됐다는 이유로 무상 보증이 종료됐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대성쎌틱 측 입장을 듣고자 했으나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신축 아파트에 설치되는 보일러의 품질보증기간 산정 기준을 둘러싸고 소비자 혼란이 커지고 있다.

에어컨·냉장고·식기세척기 등 대부분 빌트인 가전은 입주일을 기준으로 보증기간이 시작되지만 가스보일러는 제조사에 따라 ‘설치 완료일’ ’입주일’ 등 산정 기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가스보일러 품질보증기간이 3년으로 명시돼 있으나 실제 사용 기간과 상관없이 보증기간이 상당 부분 소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품질보증기간 내에 제품 하자로 고장난 경우 무상 AS가 가능한만큼 보증기간 산정 기준은 소비자 이익과 직결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보일러 업체 중 경동나비엔은 유일하게 신축 아파트에 설치된 보일러 입주일을 기준으로 품질보증기간을 산정한다. 귀뚜라미보일러와 린나이코리아, 대성쎌틱은 설치일 기준이다.

경동나비엔 측은  입주 전 설치 여부와 관계없이 실제 사용이 시작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AS를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보일러 제조사는 설치 완료 시점을 기준으로 무상보증 기간을 산정하고 있다. 보일러를 일반 가전이 아닌 건축 설비로 분류하고 내부 기준에 따라 설치일을 책임 개시 시점으로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귀뚜라미보일러는 입주일과 무관하게 설치 완료 시점을 기준으로 보증기간을 산정하는 것이 내부 기준이라고 전했다. 린나이도 원칙적으로는 시공일 기준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계약자가 입주민 개인이 아니라 시공사 단체다보니 입주민 개개인의 입주일을 체크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도 "한 두달 정도 차이는 서비스 차원에서 AS를 지원한다"고 전했다.

대성쎌틱 측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고객센터에 직접 문의한 결과 '입주 시점이 아닌 설치일을 기준으로 산정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 보일러, 설치되자마자 보증기간 시작...가전과 다른 이유

대부분 보일러 업체가 품질보증기간 산정일을 설치일로 기준하는 이유는 보일러를 건설 과정에서 일괄 설치되는 ‘건축 설비’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보일러 제조사는 개별 소비자가 아닌 건설사·시행사와 계약을 맺고 납품·설치를 진행한다. 그렇다보니 설치가 완료된 시점을 책임 개시 시점으로 보고 보증기간을 기산하는 구조를 적용하는 셈이다.

냉장고, 에어컨 등은 소비자와 제조사 간 직접 계약 구조로 전원 인가와 시운전 등 실제 사용 개시 시점이 비교적 명확하다.

반면 보일러는 입주 전 이미 설치가 완료된 뒤 장기간 미사용 상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고 최초 가동 시점을 전산으로 명확히 특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입주 전 공정 과정에서 바닥 마감이나 도배, 내부 건조 등을 위해 입주 개시 전 이미 가동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경우 최초 가동 주체가 입주민이 아니고 가동 기간이나 횟수 역시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문제는 보증기간 산정 기준이 분양·입주 과정에서 충분히 안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입주일 기준으로 보증이 시작된다고 오인하기 쉽고 실제 고장이 발생한 뒤에야 기준 차이를 알게 되는 구조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보일러는 계절상품의 특성상 실제 사용이 제한돼 있어 고장이나 하자를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며 “이런 점을 고려하면 무상보증 기간은 설치일이 아니라 소비자 입주일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입주일 기준 적용이 어렵다면 최소한 보증기간 만료 시점과 몇 개월 정도 차이에 대해서는 업체가 무상으로 처리하는 등 유연한 운영이 필요하다. 현재처럼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면 소비자가 예기치 못한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