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분쟁 The50 ⑥] 잘하던 게임 느닷없이 계정정지...불법 프로그램 이용 분쟁 격돌

명확한 사유 비공개..."악용 가능성 배제 못해"

2026-02-12     이승규 기자
AI, 디지털화 등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환경 속에서도 통신·가전·유통·금융·플랫폼 등 각 업종에서 소비자 피해를 유발하는 고질적 문제들은 개선 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은 창립 20주년을 맞아 그동안 소비자고발센터를 통해 제기된 20년간의 방대한 민원을 통해 업종별 고질화된 문제점을 짚어보는 '소비자분쟁 The50' 연간 기획 시리즈로 진행한다. 고질적 민원의 원인을 분석하고 제도적 허점과 정책적 과제도 제시한다. [편집자주]

#사례1 경북 경주에 거주하는 김 모(남)씨는 엔씨소프트의 아이온2 계정이 비인가 프로그램 사용을 이유로 정지됐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김 씨는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정 이용이 제한됐고, 게임 내에서 구매한 아이템조차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게임사 측에 이의를 제기하고 정확한 제재 사유를 요청했으나 “상세한 내용은 안내할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그는  “적어도 정확한 사유라도 알고 싶다”고 호소했다.

#사례2 서울에 사는 반 모(남)씨는 마지막 로그인 후 석달 만에 접속한 배틀그라운드 계정이 갑자기 정지 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반 씨는 계정 정지 사유가 명확하게 안내되지 않아 소명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반 씨는 이후 접속 기록을 통해 본인 계정으로 중국에서 게임이 실행된 정황을 발견했다. 해외로 출국한 사실이 없다는 자료를 준비해 소명했지만 크래프톤은 ‘구체적인 사유는 안내할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반 씨는 "계정 기록을 살펴보니 중국에서 접속한 기록이 있었다"며 "해킹 당했을 당시 불법 프로그램이 사용된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나한테 피해가 와 너무 부당하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사례3 전북 광양에 거주하는 김 모(남)씨는 드림에이지의 아키텍트 계정이 갑자기 정지 당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드림에이지 측은 김 씨에게 비정상적인 접속 및 작업장 이용이 의심돼 계정 이용을 제한했다는 취지의 안내를 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가족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며 아이템을 거래한 부분이 오해를 산 것 같다”며 “충분히 소명 했음에도 계정 제한이 해제되지 않았고 정확한 제재 사유도 안내받지 못해 답답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정상적으로 게임을 이용했는데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며 이용을 정지 당했다는 소비자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게임사들이 불법 프로그램 근절을 위해 제재를 강화하면서 '계정 정지'로 인한 갈등도 속출하는 추세다.

게임업계는 건전한 이용 문화 조성을 위한 불가피한 처분이라고 주장하나 제재를 받은 이용자들은 근거와 기준이 불분명하다며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양 측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을 통해 억울한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소비자고발센터(https://www.goso.co.kr)에 따르면 게임사들의 '계정 정지'와 관련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계정 정지는 게임사들이 유저들의 게임 이용 권한을 박탈하는 것이다. 유저들이 약관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을 경우 게임사에서 일방적으로 제재가 가능하다. 대개 비정상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아이템을 불법적으로 거래하는 문제로 제재하곤 한다. 

최근 국내 게임업계는 불법 프로그램 사용이나 작업장 등 행위를 막기 위해 제재를 강화하는 추세다. 실제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12월 강남경찰서에 불법 프로그램(매크로)을 사용한 아이온2 이용자 7인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고 65회에 걸쳐 72만7748개의 계정에 대한 제재를 진행하는 등 대대적으로 건전한 게임문화를 조성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같은 게임사들의 제재 과정에서 불만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약관에 위배되는 불법적인 이용이 없었는데 계정 정지 처분을 납득할 수 없다는 주장들이다. 본인의 실책이 아님에도 계정이 정지돼 억울하다는 민원도 이어지고 있다. PC방 등 공용 컴퓨터를 이용한 후 계정 이용이 제한되거나 해킹 당한 계정이 정지를 당했다는 불만도 잇따르고 있다.

유저들의 강한 항의에도 게임사들은 강경한 입장을 내세운다. 명백한 제재 사유가 발견될 경우에만 게임 이용을 제한하고 있으며 억울하게 제재를 받은 유저가 생겼을 경우에는 풀어주고 있다고 강조한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공정한 게임 생태계 조성을 위해 불법 매크로 사용 및 비정상적인 플레이를 제재한다"며 "제재 계정 중 운영정책을 위반하지 않았을 경우 고객지원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크래프톤 측도 단일 요소가 아닌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제재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용자 보호와 서비스 공정성을 위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다각적인 검토 절차를 운영 중이라고 전했다.

드림에이지 관계자는 “위 사례의 경우 정밀 데이터 재검증을 실시한 결과 일반적인 게임 이용 패턴으로는 나타날 수 없는 조직적·반복적 재화 집결 로그가 명백히 확인됐다”라며 “게임 내 물가 시스템을 파괴해 정당하게 게임을 즐기는 대다수 선량한 이용자들의 노력과 자산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중대 사안인 만큼 예외 없는 제재 원칙을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이용자들은 제재 자체보다 소명 과정에서 구체적인 설명 없이 '매크로성' 답변만 반복하는 것에 대해서도 피로감이 크다고 호소한다. 

게임사들은 계정 이용이 제한된 유저에게 제재 사유를 상세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불법 행위의 우회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입을 모았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세부 기준을 모두 밝힐 경우 작업장이나 치트 개발자들이 이를 분석해 우회 가이드로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게임사는 소명 과정을 거친 후 문제가 없다면 계정 제재를 풀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플레이 패턴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소를 보고 판단하는 만큼, 제재가 풀리지 않았다면 명백한 위반 사항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에 커지는 가이드라인 필요성 대두

게임사와 유저 간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이용자가 게임 이용약관상 해선 안될 금지 행위를 한 경우 게임사는 어떤한 보상 의무도 지지 않는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핵사용이나 작업장 운영 등 약관 위반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면 별도 보상 없이 일방적인 제재가 가능한 구조다.

게임사 입장에서도 일부 이용자의 불법 행위로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불법 프로그램이나 작업장 운영 등으로 게임 내 질서가 훼손돼 다른 이용자들이 피해를 입더라도  개별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 역시 마땅치 않다.

학계에서는 양측 간의 갈등을 완화하고 억울한 유저가 발생하지 않도록 명확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위정현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어떤 사안에 어떤 제재를 할지 명백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지만 갈등이 줄어들 것"이라며 "갑작스럽게 정지를 당해 충격이 있을 고객들에게 해킹 툴을 사용했다는 것을 증빙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이를 외부에 공개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저가 무고하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 분명하게 보상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게임사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면 사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불법 프로그램 사용이나 매크로성 플레이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아무리 제도를 강화해도 갈등이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승훈 안양대학교 게임콘텐츠학과 교수는 "게임사들의 책임도 중요하지만 게임 이용 문화 성숙도 함께 다뤄져야 할 시점"이라며 “결국 불법 프로그램 사용 등이 갈등의 시작인 만큼 유저들이 성숙해지고 건전한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갈등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승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