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그늘-AI워싱 ⑩] 의사·약사라 믿었는데...AI가 만든 가짜 전문가 SNS에서 활개

2026-03-10     이정민 기자
국내 산업계가 마케팅과 민원 처리, 상품설계, 내부통제에 이르기까지 경영 전반에 AI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가히 AI 광풍이라 부를 정도의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AI 활용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이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AI 활용으로 인한 편리함 뒤에 교묘한 알고리즘으로 소비자를 조정하고 피해를 양산하는 일도 현실이 되고 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은 2026년 창간 20주년을 맞아 AI가 몰고올 소비자 생태계 변화와 혼란을 진단하는 연중 기획 시리즈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SNS와 온라인 플랫폼에서 전문가가 등장해 건강 정보를 설명하며 제품 구매를 유도하는 형태의 영상 콘텐츠가 급증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알고리즘 추천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는 30~60초 분량의 짧은 영상을 보고 의사나 약사 추천 제품이라 믿고 구매를 고려하게 된다.

그러나 최근 영상에 등장하는 전문가 중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된 가상의 인물이 적지 않다.  기술 고도화로 실제 인물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해졌기 때문이다. 의료인처럼 자연스럽게 말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명한다”, “카르노산 성분이 탈모에 도움을 준다”는 식의 전문 용어를 구사한다.

정보 콘텐츠의 탈을 쓴 제품 광고가 대표적인 ‘AI 워싱’ 으로 번지고 있다.
 
▲AI로 생성된 인물이 등장해 탈모 개선 효과를 강조하는 광고 영상

올해 1월 ‘인공지능 기본법’이 시행되면서 AI 생성물이라는 표시가 이뤄져야 하지만 이들 영상 대부분에는 아무런 고지가 없다. 현재는 제도 시행에 따라 약 1년간의 계도기간이 운영되고 있어 이 기간에는 법 위반이 발생하더라도 과태료 부과 등 행정처분은 유예된다.

채널 프로필에는 ‘가정의학과 전문’, ‘건강 정보 채널’ 등의 설명만 있을 뿐 등장하는 의사 정보는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상 댓글창에는 “3주 만에 8kg 감량 성공”, “병원 갈 필요 없어졌다”는 식의 후기가 줄줄이 달려 있으나 유사 문구가 반복되는 자동 생성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AI로 생성된 의사가 등장한 영상이 숏폼 플랫폼을 중심으로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다.

이 같은 영상은 신고 후 삭제되더라도 유사 계정이 곧바로 재개설되는 방식으로 반복 게시된다. 일부 계정은 1~2주간 집중적으로 광고 영상을 올린 뒤 채널을 폐쇄하는 ‘치고 빠지기’ 운영을 하기도 한다.

영상 하단에는 조작된 SNS 후기 화면을 합성해 수많은 사람이 이미 효과를 본 것처럼 연출하는 수법도 등장하고 있다. 

◆정부 대응에 수법 진화하며 여전히 성행..."플랫폼 책임 규정 필요해"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도 AI 활용 광고의 문제점이 확인됐다.

비만치료제 ‘위고비’와 유사한 효과를 낸다고 홍보한 일반 식품 16개 제품을 분석한 결과 체중 감소에 도움이 되는 원료를 포함한 제품은 단 하나도 없었고 이 중 31%는 AI로 생성한 가상의 의사나 인플루언서를 광고에 동원했다.

“마시는 위고비”, “GLP-1 촉진” 등 의약품과 혼동을 유발하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적발 제품의 88%는 알약 형태로 제작돼 소비자가 전문 의약품으로 오인할 여지를 뒀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AI로 생성한 의사·약사 등 가짜 전문가를 등장시켜 식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의 효능을 과장한 광고는 63건이 적발됐다. 주요 위반 유형은 질병 예방·치료 효능을 표방한 광고와 거짓·과장 광고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남희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서도 지난 2024년 온라인 허위·부당 광고 적발 건수는 약 9만6000건으로 2021년 대비 1.6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발 건수가 늘어나는 가운데 숏폼 플랫폼 특성상 실제 유통 규모는 훨씬 클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행 약사법 제68조(과장광고 등의 금지)에 따르면 의약품의 명칭·제조방법·효능에 관해 거짓 또는 과장 광고를 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된다. 특히 동법 제2항은 의사·약사 등이 제품의 효능을 보증한 것으로 오해할 염려가 있는 기사나 표현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으며 제6항에 따라 전문의약품의 대중 광고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AI 가짜 전문가 광고가 확산되자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해 말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7회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AI 등을 활용한 시장 질서 교란 허위·과장광고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AI로 만든 가짜 전문가나 유명인 딥페이크를 활용한 허위·과장 광고가 식·의약품 분야를 중심으로 범람하고 있다”며 “노년층 등 정보 취약계층 피해가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대책은 ▲유통 전 사전 방지 ▲유통 시 신속 차단 ▲제재 강화 및 단속 역량 확충의 3단계 구조로 설계됐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식·의약품 등 AI 허위·과장 광고가 빈발하는 영역을 24시간 내 서면심의 대상에 포함하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법 개정을 추진 중이며 긴급 사안의 경우 방통위가 플랫폼에 임시 시정 요청을 할 수 있는 절차를 도입해 방심위 심의 완료 전이라도 우선 차단이 가능하도록 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식약처 역시 AI 가상 전문가가 효능을 보증·추천하는 광고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광고에 해당한다고 판단 기준을 명확히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과징금 상향도 추진하고 있다.

식약처와 소비자원은 측은 “AI 허위·과장 광고에 대한 신속한 차단을 위해 관계 부처 협의 등을 통해 감시·적발 기능 강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종합대책을 내놓은 지 두 달이 지났지만 AI 가짜 의사 영상은 여전히 숏폼 플랫폼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일부 영상은 광고 문구를 음성에만 삽입하거나 제품명을 해시태그로만 표기하는 방식으로 단속을 피하는 등 수법이 진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생성형 AI를 활용하면서 영상 제작 속도가 크게 빨라지고 비용 부담도 낮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계정 생성과 삭제가 비교적 간편한 환경에서는 유사한 형태의 광고가 반복적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AI 광고의 경우 소비자가 이를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AI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 광고 상황에서는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오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AI가 제작·출연한 광고라면 소비자가 즉시 알아볼 수 있도록 보다 명확한 표시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이 직접 얼굴을 내걸고 광고할 경우에는 일정 부분 책임이 뒤따르지만 AI를 활용한 광고는 실제 메시지의 주체가 드러나지 않아 왜곡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식품·의약품 광고를 포함해 표시·광고 제도 전반에서 AI 활용 광고에 대한 별도 규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행 제도는 부당 표시·광고에 대한 사후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AI가 활용된 광고의 경우에는 소비자가 한눈에 인지할 수 있는 방식의 사전적 표시 의무를 보다 명확히 규정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