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시스템, KAI 지분 0.58% 취득…‘한국판 스페이스X’ 속도
2026-03-16 이범희 기자
15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통해 KAI 보통주 56만6635주를 599억 원에 매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KAI 전체 주식의 0.58%에 해당하는 규모다. 13일 종가 기준으로는 약 1035억 원 수준이다.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11월 해당 지분을 취득했다. 다만 5% 미만 지분은 대량 보유 공시 의무 대상이 아니어서 이번 사업보고서 제출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한화 계열사가 KAI 지분을 보유하는 것은 2018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AI 지분 5.99%를 전량 매각한 이후 약 7년 만이다.
한화와 KAI는 한국형 전투기(KF-21) 사업 등에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다. 동시에 초소형 위성 체계 개발 분야에서는 경쟁 관계이기도 하다.
한화시스템은 이번 주식 취득에 대해 ‘일반 투자’라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한화가 이번 지분 투자를 통해 KAI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이에 한화시스템 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AI 지분을 추가 확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양사의 협력이 강화될 경우 우주항공과 방산 분야 수출 경쟁력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육해공을 넘어 우주까지 아우르는 미래 전장 환경에 대응하는 ‘한국판 스페이스X’ 구상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KAI 민영화가 추진될 경우 한화가 가장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파트너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화시스템의 KAI 지분 취득 규모는 0.58%에 그치지만 의미는 크다. 업계에서는 향후 협력 확대를 위한 출발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전장 환경 변화가 있다.
우주가 새로운 전장으로 부상하면서 육·해·공·우주를 통합한 ‘전 영역 작전(All Domain Operations)’ 개념이 글로벌 방산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이다. 미국은 2018년부터 우주와 사이버를 포함한 전 영역 작전을 강조해 왔다. 2019년에는 우주군을 창설하며 우주 기반 군사 역량을 강화했다.
통신위성, 정찰위성, 조기경보위성 등 핵심 군사 정보가 우주 기반으로 확보된다는 점에서 우주 전력의 중요성은 계속 커지고 있다. 독일과 캐나다 등 주요 국가들도 군용 위성통신 체계 구축에 나서며 전장 영역을 우주로 확대하고 있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있다.
2002년 설립된 스페이스X는 위성 발사 비용을 낮추며 민간 우주산업의 판도를 바꿨다. 현재는 위성 인터넷과 방산 솔루션을 아우르는 복합 안보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에서도 글로벌 전장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형 스페이스X’ 구축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화와 KAI는 국내 우주·방산 분야에서 각각 경쟁력을 확보해 온 기업으로 협력 시 시너지가 기대되는 조합으로 평가된다.
한화는 2021년 ‘스페이스 허브’를 출범시키며 발사체, 위성 제조, 데이터 사업으로 이어지는 우주 사업 수직 계열화를 추진해 왔다. 발사체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맡고 위성 제조는 한화시스템이 담당한다. 이후 위성 영상 판매 등 데이터 사업으로 확장하는 구조다.
KAI는 차세대 중형위성 개발과 양산을 주도해 왔다. 위성 핵심 부품과 탑재체 기술 자립에도 성과를 내며 정지궤도복합위성과 다목적실용위성 본체 개발을 수행했다. 중대형급 위성 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평가된다.
한화의 발사체 기술과 KAI의 위성 개발 및 데이터 분석 역량이 결합하면 ‘발사–위성–데이터–서비스’로 이어지는 우주 밸류체인을 국내 민간 기업이 구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우주산업은 설계와 운영 전반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반복 발사 경험을 쌓는 구조를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가 경쟁력”이라며 “한국판 스페이스X 구축이 산업 생태계 형성과 해외 진출의 핵심 조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KAI는 올해 2월 방산·우주항공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첨단 엔진 국산화와 수출용 무인기 공동 개발 등을 주요 협력 과제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지분 취득은 KAI 민영화 논의와 맞물려 더욱 주목받고 있다.
현재 KAI의 최대주주는 한국수출입은행으로 지분 26.41%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도 8.20%를 보유해 정부 지분이 사실상 30%를 넘는 구조다.
리더십 공백 장기화와 부채비율 450% 수준의 재무 부담 등이 지적되면서 K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민영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화의 과거 인수 행보와 맞물려 이번 지분 취득을 의미 있게 보고 있다.
한화는 2015년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2016년 두산DST를 인수하며 방산 사업을 확대했다. 2023년에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인수하며 해양 방산 분야까지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업계에서는 한화가 우주 분야를 방산 포트폴리오의 ‘마지막 조각’으로 보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한화와 KAI의 사업 영역이 대부분 보완 관계에 있어 중복이나 독과점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도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