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분쟁 The50 ⑪] 냉장고 도어 플라스틱 조각 하나 떨어졌는데 통째 교체...모듈화에 수리비 폭탄

사설 수리 업체 찾았다간 무상AS 대상에서도 제외

2026-03-19     최창민 기자
AI, 디지털화 등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환경 속에서도 통신·가전·유통·금융·플랫폼 등 각 업종에서 소비자 피해를 유발하는 고질적 문제들은 개선 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은 창립 20주년을 맞아 그동안 소비자고발센터를 통해 제기된 20년간의 방대한 민원을 통해 업종별 고질화된 문제점을 짚어보는 '소비자분쟁 The50' 연간 기획 시리즈로 진행한다. 고질적 민원의 원인을 분석하고 제도적 허점과 정책적 과제도 제시한다. [편집자주]
 
#사례1=
대구 달성군에 거주 중인 배 모(남) 씨는 지난달 아이폰15 프로 배터리 수리 차 공식 서비스센터를 찾았다가 100만 원의 수리 비용이 발생한다는 안내를 받고 깜짝 놀랐다. 배 씨는 배터리 잔량이 40%에서 1%로 급격히 줄어든 뒤 전원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방전 문제로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업체 측이 안내한 비용은 메인보드값 85만 원, 배터리값 15만 원이다. 심지어 수리 후 배터리 문제로 확인돼도 100만 원은 동일하게 청구된다고 안내했다. 서 씨는 결국 사설 업체를 찾아 8만 원으로 배터리를 교체 받고 문제를 해결했다. 애플은 아이폰의 내부 공간 효율을 높이기 위해 배터리와 메인보드를 모듈화하고 있다.

#사례2= 울산 북구에 거주 중인 백 모(남) 씨는 삼성전자가 제조한 갤럭시 S21의 충전 단자 수리를 요청했다가 메인보드를 교체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은 충전 단자가 메인보드와 모듈형으로 이뤄져 있다. 백 씨는 "단자 교체 비용 5~7만 원 정도로 예상하고 서비스센터를 방문했는데 30만 원의 수리비를 안내 받았다"라며 "서비스센터 말대로라면 소비자는 모든 부품 이상을 메인보드 연관으로 보고 이를 교체해야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장난 냉장고 문짝(왼쪽)과 파손 조각.

#사례3= 경기 구리에 거주 중인 서 모(여) 씨는 4년 전 구매한 LG전자 양문형 냉장고를 수리하려다 비용에 깜짝 놀랐다. 냉장고 우측 문을 열다가 고무 패킹 내부에 덧대진 플라스틱 부분이 파손됐는데 수리 비용이 40만 원에 달했다. 서 씨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떨어졌을 뿐인데 문짝 하나를 40만 원이나 주고 통으로 갈아야 하는 게 정상이냐"며 "수백만 원을 주고 구매한 제품인데 이렇게 쉽게 파손될 정도면 리콜 대상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전자제품 제조사들이 공정 간소화,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부품을 모듈화(반제품화)하면서 과도한 수리 비용을 떠안게 된 소비자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모듈화 제품은 여러 부품을 기능별로 몇 개의 큰 덩어리(모듈)로 묶어 조립하는 방식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공정이 간소해지고 원가가 절감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작은 고장에도 전체 모듈을 함께 교체해야 해 생각지도 못한 비싼 수리비를 지불해야 할 수 있다.

19일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 따르면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TV 등 대형가전부터 오븐레인지, 청소기, 밥솥, 커피머신, 휴대전화 등 다양한 가전제품의 부품 고장 수리 시 모듈화 부품으로 과도한 비용을 요구받았다는 소비자 민원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TV 패널, 냉장고 문 일부 버튼이나 전면 강화유리, 밥솥 증기가 나오는 부분, 휴대전화 충전 단자, 휴대전화 음량 조절 버튼 등이 대표적이다. 이 부위는 일부가 고장나도 그 부분이 포함된 전체 모듈을 교체해야 해 예상보다 높은 수리비로 소비자를 놀라게 만든다.

냉장고 문 전면 강화유리가 깨진 경우 해당 부위만 새로 끼워넣으면 될 거라 생각들지만 실제로는 도어와 강화유리가 일체형으로 이뤄져 도어를 통째로 바꿔야 한다.

품목이 다양한만큼 삼성전자, LG전자, 오텍캐리어, 위니아, 쿠쿠전자, 쿠첸 등 대부분 가전사들이 이같은 문제로 소비자와 분쟁을 겪는다. 소비자들은 사소한 고장으로 전체를 교체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금전적인 부담을 지우는 일이므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가전 제품을 수리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를 충분하게 보장해야 한다"며 "소비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차원에서 다양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조사들은 일체화된 부품을 납품 받아서 완제품을 만드는 경우에는 모듈화를 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제품별로 상이하지만 모듈화된 제품은 교체에 높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며 "단순한 조작부는 쉽게 교체가 가능하지만 특히 패널이 적용된 경우에는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에플 관계자는 "기기 상태에 따라 일부 수리가 가능하다"면서도 "전체 교체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소비자 불만을 해소하고자 일부 제품에 한해 분리 수리를 실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폴더블폰 디스플레이 단품 수리’를 제공하는 서비스센터를 기존 147곳에서 158곳으로 늘렸다. 올해 들어서도 2곳 더 늘렸다. 이에 따라 전국 서비스센터 169곳 중 160곳에서 폴더블폰 디스플레이 단품 수리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디스플레이 단품 수리’는 디스플레이 부품과 테두리, 케이스 등을 분해해 필요한 부품만 교체하는 수리 방식으로 삼성이 지난 2019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지난해 디스플레이 단품 수리를 이용한 고객은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LG전자도 모듈수리만 가능했던 액정표시장치(LCD) TV를 지난 2017년부터 분리 수리해왔다.  LCD TV는 과거 LCD 패널이 고장나면 뒤편의 조명 부품(LED Array)도 함께 수리해야 했으나 개별 부품별로 수리가 가능토록 바꿨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수리비에 사설 수리 업체를 찾았다가 무상AS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일각에선 모듈화 제품의 경우 이상이 없는 부품도 함께 교체해야 하는 소비자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수리비 절감이나 보증기간 연장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부품 모듈화로 인해 늘어난 수리비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건 부당한 측면이 있다"면서 "수리비 할인 등 대안을 마련해 제시하거나 가능한 분리 수리를 할 수 있도록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답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최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