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그늘-고객센터 ⑯] 상담원 연결 '산 넘어 산'...ARS·챗봇 게이트키핑에 허송세월
기업 효율화 추구에 이용자는 불편
2026-04-21 정은영 기자
국내 산업계가 마케팅과 민원 처리, 상품설계, 내부통제에 이르기까지 경영 전반에 AI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가히 AI 광풍이라 부를 정도의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AI 활용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이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AI 활용으로 인한 편리함 뒤에 교묘한 알고리즘으로 소비자를 조정하고 피해를 양산하는 일도 현실이 되고 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은 2026년 창간 20주년을 맞아 AI가 몰고올 소비자 생태계 변화와 혼란을 진단하는 연중 기획 시리즈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그러나 기업의 AI 활용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이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AI 활용으로 인한 편리함 뒤에 교묘한 알고리즘으로 소비자를 조정하고 피해를 양산하는 일도 현실이 되고 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은 2026년 창간 20주년을 맞아 AI가 몰고올 소비자 생태계 변화와 혼란을 진단하는 연중 기획 시리즈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금융, 자동차, 가전 등 소비자 생활에 밀접한 영역에서 고객센터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상담원들이 AI 서비스 뒤에 숨고 있다.
소비자가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담원과 통화하기 위해서는 보이는 ARS, AI 상담원 등 거쳐야 하는 단계가 더 늘었다.
기업들이 상담 효율화를 위해 앞세운 AI 서비스의 답변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소비자가 헛되이 쓰는 시간만 길어지는 셈이다.
21일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 시중 은행과 전업 카드사, 완성차, 가전 및 렌탈 업체 고객센터의 상담원 연결 과정을 확인한 결과 AI 상담원이나 보이는 ARS를 먼저 대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고객센터 전화 시 '보이는 ARS / 누르는 ARS 선택 → 상담유형 선택 → AI상담원/채팅상담 등을 마쳐야 상담원과 연결되는 식이다. 다단계를 거쳐야 해 대기 시간이 있지 않더라도 상담원과 통화하기까지 수분의 통화 시간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고객센터 상담원들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AI 상담원이나 보이는 ARS를 도입하며 디지털 전환에 나선 결과다.
신한은행은 고객센터에 전화해 상담원과 통화하려면 반드시 AI 챗봇을 거쳐야 한다. 보이스피싱 안내 멘트를 약 24초 들어야 하고 이후 AI 상담을 통해 문의 유형을 선택해야 상담원 연결이 가능하다.
신한은행 측은 "대표번호 상담 과정에 AI 음성봇을 도입한 것은 상담 수요가 많은 시간대에도 고객이 보다 신속하게 필요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간단한 조회나 안내성 업무는 음성봇을 통해 대기 없이 바로 처리할 수 있고 보다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한 경우에는 상담원 연결로 이어지는 구조로 운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하나은행은 상담 직원 연결 버튼이라고 안내하는 ‘0번’을 눌러도 AI 상담원 '하이'가 응대한다.
하이에게 '온라인 뱅킹' 등의 업무 종류를 말하고 또 개인인지 법인인지 여부를 알려준 뒤에야 상담사 연결이 진행됐다. 실제 상담원 연결까지는 대기 시간 포함 약 3분이 소요됐다.
우리은행도 상담원과 통화 하려면 AI 상담사와의 대화를 거쳐야 한다. '신용 대출 신규', '전세 대출 신규' 등 문의 내용을 간단히 말한 뒤에야 상담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KB국민카드는 디지털 ARS 연결 후 상담원 연결 버튼을 클릭해도 ▲개인회원 ▲이용한도 ▲카드발급신청 ▲금융서비스 ▲아파트관리비 ▲항공예약 버튼이 다시 한번 안내된다. '개인회원'을 클릭하니 홈페이지에 안내된 대표 번호가 아닌 '1644' 번호가 따로 뜬다. 이곳으로 전화를 걸어야 일반 상담원과 연결된다.
현대카드, 우리카드, 하나카드, BC카드는 고객센터로 전화해도 상담원 연결 항목이 없다. 음성 안내를 통해 세부 항목을 클릭해야만 상담원 연결 항목을 들을 수 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 역시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면 AI 상담사가 먼저 응대한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기아만 AI 상담사를 거쳐 상담원 연결이 되는 구조다. AI 상담사에게 '상담사 연결'이라고 말한 후 문의하고자 하는 차량이 일반 차량인지, 컨시어지 차량인지, 전기차인지 선택하면 상담사와 연결된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등 수입차 업계는 고객센터의 디지털 전환이 상대적으로 더뎌 ARS를 통해 문의 유형을 누르면 바로 상담원과 통화가 연결된다.
LG전자는 보이는 ARS와 AI 상담사 연결을 고를 수 있다. AI 상담사에게 제품 종류와 증상을 말하면 카카오톡 메신저로 해결 방법을 알려준다.
가령 "세탁기 누수"라고 말하면 "수도꼭지를 잠근 후 급수호스를 풀고 다시 연결해달라"며 "세탁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누수 증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콘텐츠를 통해 안내해 드리겠다"라고 설명한다.
쿠쿠전자는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면 카카오톡 상담이나 홈페이지를 통한 AS 접수를 먼저 권유한다. 카카오톡 등 접수 방식을 먼저 고르고 문의 유형을 선택한 뒤 상담원 연결이 가능하다.
청호나이스는 보이는 ARS 링크를 클릭한 후 하단에 있는 '상담원 연결' 버튼으로 상담원 연결이 가능하다.
상담원이 즉각 응대하지 않는 가운데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고객센터는 대부분 1588·1577·1566 등 유료번호다. 요금제로 정해진 부가 음성 통화량을 초과하면 통상 부가세 포함 1분당 1.98원의 요금이 부과된다. 유선전화는 3분당 39원의 요금이 발생한다. 상담원까지 연결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비자들의 요금 부담이 커킬 수밖에 없다.
단순 문의나 긴급 상황에서도 상담사가 뒤로 숨는 구조는 소비자 편의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시월 건국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아직은 AI 도입 등 디지털 전환 과도기 단계로 보인다"라며 "소비자의 연령대나 민원 유형에 따라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AI의 판단이 획일적이지 않게끔 체계를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정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