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분쟁 The50 ⑮] “의심 소견은 안 알려도 괜찮다더니”...설계사 말 믿었다가 보험 해지 ‘날벼락’
'고지 방해' 증명 못하면 소비자 독박
2026-04-16 서현진 기자
#. 서울 성북구에 사는 정 모(여)씨는 지난해 8월 다이렉트 홈페이지를 통해 A손해보험 실손보험에 가입했다. 당시 정 씨는 고객센터에 감기 등 가벼운 질병도 고지해야 하는지 물었고 상담원은 적지 않아도 된다고 답변했다. 이후 11월쯤 물리치료를 받고 보험금을 청구했다가 보험 가입 전 피부과에서 모낭염 치료 받은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며 고지의무 위반으로 계약 해지 통보됐다. 정 씨는 "모낭염은 감기처럼 가벼운 질병이라고 생각해 고지하지 않았는데 고지의무를 불이행했다니 이해가 안 된다"고 분노했다. A손해보험 측은 "피보험자의 건강상태나 기왕증, 병력 등에 따라 가입 여부가 결정되고 요율이 달라질수도 있어 '고지 의무'를 준수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경기도 포천에 사는 함 모(여)씨는 지난해 1월 설계사 지인을 통해 B손해보험에서 판매하는 건강보험에 가입했다. 함 씨가 보험 가입 전 받은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의심소견이 나왔다. 진단은 아니었어서 설계사에게 고지하지 않았고 보험 가입은 완료됐다. 보험 가입 후 그다음달 함 씨는 병원으로부터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고 4월에 수술을 진행했다. 이에 대해 보험금을 청구하자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계약이 해지됐다. B보험사 관계자는 "계약전알릴의무사항에서도 건강검진을 포함한다고 명시돼 있고 금감원 분쟁조정례에서도 건강검진결과를 의사의 소견과 동일하게 해석한다고 결정하고 있다"며 "건강검진 결과에 대해 정상적인 고지를 해야 보험금 청구시 불이익을 얻지 않을 수 있다"고 답했다.
#. 경기도 파주에 사는 이 모(여)씨는 2024년 4월 C손해보험 건강보험에 가입했다. 가입 당시 이 씨는 과거에 검진을 위해 MRI·CT를 찍었다가 뇌동맥류 의심 소견을 받았던 사실을 설계사에게 알렸으나 설계사는 의심 소견일 뿐 진단을 받은 건 아니기 때문에 보험 가입이 가능하다며 계약을 체결했다. 이 씨는 지난해 7월 병원에 방문했다가 뇌동맥류 진단을 받아 보험금을 청구했고 결국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계약이 해지됐다. 이 씨는 "보험금은커녕 자동으로 보험이 해지될 거고 그간 들었던 보험료도 못 받는다고 한다"며 "설계사는 그만뒀는지 연락도 안 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보험 가입 시 가입자의 건강 상태를 알려야 하는 '고지 의무'를 둘러싸고 소비자와 보험사 간 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
단순 '의심 소견'이나 가벼운 질환에 대해선 고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설계사나 고객센터 상담원 말을 따랐다가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금을 받지 못하고 계약도 해지된 소비자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16일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 따르면 보험 가입 후 '고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험금을 받지 못하고 계약이 해지됐다는 민원이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다. 고지 의무를 어긴 것으로 판정되면 보험금 부지급은 물론 이제껏 낸 보험료 환급 없이 계약도 해지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와 업체 간 갈등이 치열하다.
이전에는 설계사에게 병력을 알렸음에도 고의나 실수로 누락해 보험금이 부지급되는 사례가 주를 이뤘다. 최근에는 건강검진이나 동네 의원에서 '의심 소견'을 받은 정도는 고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안내를 따르거나 가입자 임의로 판단해 알리지 않았다가 보험이 해지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같은 분쟁은 △삼성화재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한화손해보험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신한라이프생명 등 보험사를 가리지 않고 전 업꼐에서 반복되는 고질적 문제다.
◆ 의심 소견·가벼운 질환도 '필수' 고지 대상
'계약 전 고지의무'란 보험가입자가 보험계약 체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보험사에 알려야 하는 것을 말한다. 보험사는 가입자의 질병 여부나 직업 등 위험 상태를 바탕으로 보험계약 체결 여부 및 보험료 수준을 결정하고 있다.
고지의무로는 ▶최근 3개월 내 병원 진단 여부 ▶1년 내 수술이나 추가검사 소견 여부 ▶5년 내 암·뇌 ·심 등 중증질환 진단 여부 등이 있다.
소비자들이 가입하며 설계사에게 중요 내용을 고지했다고 주장해도 효력이 없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보험설계사는 가입자의 고지 내용을 수령할 권한인 '고지의무수령권'이 없다. 설계사에게 말로만 전하고 청약서에 기재하지 않았다면 고지하지 않은 게 되는 셈이다.
계약 시 소비자들은 반드시 보험사에 직접 고지의무를 다해야 하며 설계사에게 고지할 경우 해피콜을 통해 마지막까지 확인이 필요하다.
보험업계는 설계사에게 고지의무 수령권이 없으니 계약자 본인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형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설계사의 경우 고지의무 수령권이 없다 보니 설계사에게 알리는 것만으론 아무 소용이 없다"며 "계약할 때 고객 본인이 서명을 해야 하니 누가 봐도 중요하게 알릴 사항이라고 생각한다면 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건강검진 검사결과지도 고지 대상이다. 금융감독원은 건강검진결과지가 소견서의 일반적인 발급 방식과 차이를 보일 뿐 의사의 소견에 해당한다고 봤다.
예를 들어 건강검진 결과지에 '당뇨병 및 고지혈증 수치가 높아 추가적인 검사 및 진단이 필요하다'고 기재됐을 경우 청약서에서 정의하는 '질병의심소견'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 추적관찰 소견으로만 여기고 보험계약 체결시 고지하지 않는 경우 보험계약이 해지되거나 보험금이 부지급될 수 있다. 다만 단순 문진 후 추적관찰 목적의 권유나 예약 단계의 검사는 고지의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 고지의무 위반하면 보험금 못받고 계약 해지
상법에 따르면 고지의무 위반 시 보험계약이 해지되거나 보험금이 부지급된다. 보험사는 보험가입자의 고지의무 위반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 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이미 보험사고가 발생한 이후라도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할 땐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고 이미 보험금을 지급했더라도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설계사의 고지방해가 확인된 경우엔 고지의무위반을 적용해 계약을 해지하거나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
표준약관 내 알릴 의무 위반의 효과에 따라 ①보험설계사 등이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고지할 기회를 주지 않았거나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사실대로 고지하는 것을 방해한 경우 ②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사실대로 고지하지 않게 했거나 부실한 고지를 권유했을 때는 회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감기 등 가벼운 질병과 단순 의심소견도 향후 중대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소비자들이 스스로 인지하고 방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혜진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감기나 가벼운 질병 또는 의심소견이라고 하더라도 보험계약 이후 이로 유발된 중대 질병으로 인과관계가 성립하거나 이미 질병이 진행되고 있음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보험사고 불능에 해당돼 보험계약이 해지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며 "계약 성립 시점에 이미 존재하는 위험을 고의·중대한 과실로 숨기거나 부실 고지하면 보험사는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선 소비자들은 청약서나 질문지를 신중히 확인하고 향후 분쟁을 대비해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혜진 교수는 "고지의무는 보험사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사실을 기준으로 하므로 청약서나 질문지에 있는 항목은 특히 신중히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는 것을 소비자가 인지하고 주의해야 한다"며 "혹시나 의심스러운 상황에선 자료요청과 제3자나 객관적 공신력이 있는 정보를 확인해 점검해야 하고 계약 시 무리한 상황으로 느껴질 때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혹시 생길 수 있는 분쟁을 대비할 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서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