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뺑뺑이 돌면 감기약 10통도 OK…'1회 1개' 판매 제한 유명무실

제도 실효성·형평성 의문, 소비자 불편만 가중

2026-05-04     정현철 기자
# 인천에 사는 정 모(여)씨는 최근 편의점에서 감기약 두 통을 구매하려다가 거부 당하자 의문을 제기했다. 이전에도 편의점에서 두세 통씩 구매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점원으로부터 "규정상 1인당 한 개씩만 구매할 수 있다"는 이유로 판매를 거부당했다. 정 씨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감기약을 자주 사서 복용해왔다. 자영업자라 자주 자리를 비우기 어려워 한 번에 2~3개씩 구매하곤 했는데 위법 행위인지는 처음 알았다”며 “어차피 인근 편의점을 돌아다니며 여러 개를 구매하는 게 어렵지 않은데 불편하기만 한 규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판매 수량 제한 규정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 채 오히려 소비자 편의만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법상 1회 구매 시 동일 제품 포장단위 기준 1개 판매가 원칙이지만 분할 결제나 이른바 '편의점 뺑뺑이'를 통한 중복 구매를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실효성은 확보하지 못한 채 소비자 불편만 가중시킨다는 비판이다.

정부는 약국이 문을 닫는 공휴일, 심야 시간대 의약품 구매 불편을 줄이기 위해 2012년 11월부터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등 총 13종에 대해 편의점 등 약국 외 판매를 허용했다. 이때 오남용을 막고자 1회 판매수량을 품목별 1개의 포장단위로 제한했다.

감기약 한 통과 소화제 한 개를 동시 구매하는 것은 가능해도 감기약만 두 개 이상 구매하는 것은 불가능한 셈이다. 이를 어기고 판매하면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고 연 3회 이상 위반 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 등록이 취소된다.
 
▲편의점 내 안전상비약품 코너에 안내문구가 부착돼 있지 않다(왼쪽), 부착돼 있어도 글자 크기가 너무 작아 단 번에 알아보기 어렵다(사진=정현철 기자)

편의점에서는 제한 수량 이상 구매를 제한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며 직원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법 시행 시점부터 동일 품목의 안전상비의약품을 두 개 이상 구매할 수 없도록 시스템화 돼 있다. 결제 단말기 포스(POS)에 경고음과 함께 '구매가 불가능하다'는 안내 문구가 나온다. 주기적으로 점포 대상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안내 문구도 부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기자가 △CU △GS25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 인근 편의점을 점검한 결과 시스템 허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현장에는 안내 문구가 제대로 부착돼 있지 않거나 부착돼 있어도 해당 내용을 제대로 식별하기 어려워 제 역할을 못했다.
 
▲(왼쪽부터)가격표에 안내문구가 가려져 있기도 하다. 판매수량 제한 등 주의사항 문구가 나와 있다(사진=정현철 기자)
▲안전상비의약품 안내판이 구석에 처박혀있거나(왼쪽), 안내 문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사진=정현철 기자)

계산 포스 단말기에서 경고음이 울려도 점원에게 '분할 결제'를 요구하자 대부분 수용해주는 등 우회 구매가 가능한 구조였다.

한 편의점 관계자는 “주변 편의점이나 약국 여러 곳을 방문해 같은 약을 사게 되는 등 소비자가 의지가 있다면 사실상 판매 수량을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제도 취지는 분명하다. 약국 외 판매가 예외적으로 허용된 만큼 오남용을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두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할결제나 점포 분산 구매처럼 현실에서 손쉽게 우회 가능한 구조라면 실제 안전관리보다 소비자 불편과 점포 직원의 응대 부담만 키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규정을 지키는 판매자만 항의를 떠안고 조금 더 편하게 약을 구매하려던 소비자는 규제 때문에 여러번 계산하거나 혹은 다수 판매점을 방문할 수밖에 없다.

안전상비약품 규정 위반으로 제재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편의점 업계 설명이다. 실제 다량 구매가 어렵지 않은 상황에서 제재 또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제도 형평성과 실효성 모두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관할 기관인 보건복지부는 편의점에서 의약품을 구매하는 경우를 약국 방문이 어려운 급한 경우로 한정해서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안전상비의약품에 관한 조항이 만들어진 것은 약국이 문이 닫은 시점에서 급한 상황에 한해 의약품을 제공하고자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을 대상 판매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일반적인 시간에 약국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편이라 굳이 재고처럼 쌓아둘 필요 없어 판매 수량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정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