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감원장 1년 ㊤] 금융소비자 보호, 사전 예방으로 대전환...조직개편·거버넌스 혁신도 성과
2026-08-03 이철호 기자
이재명 정부의 첫 금융감독수장인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취임 1년을 맞는다. '사전적 소비자보호'라는 일관된 목표를 내세우며 금융권에 소비자보호문화를 확산시켰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지만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투자자 보호에 소극 대응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공존하고 있다. 이 원장 취임 1년의 성과와 향후 과제를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금융소비자를 더욱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 소비자보호처의 업무체계 혁신과 전문성·효율성 제고에 힘쓰겠습니다. 금융권의 소비자보호 실태에 대한 모니터링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필요시 감독·검사 기능을 적극 활용해 소비자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겠습니다."
지난해 8월 취임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사전적 소비자보호'라는 일관된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금융권에 '소비자보호문화 정착'이라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취임 초기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에 반대 입장을 내비쳤지만 이후 금감원 조직을 소비자보호중심으로 탈바꿈하며 금감원 본연의 업무가 '소비자보호'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금융권에도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를 화두로 던져 금융회사들이 소비자보호조직을 강화하고 상품 설계 단계부터 소비자보호가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소비자보호 문화'를 조성하는데 기여했다.
◆ 취임 한 달 만에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화두 던져...금융사들 서둘러 CCO 조직 확충
이 원장이 취임 직후 가장 먼저 던진 화두는 '소비자보호거버넌스'였다. 금융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비자보호'가 중심이 되어 금융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사전적 소비자보호가 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취임 한 달이 지나지 않는 지난 9월 9일 이 원장은 '금융소비자보호거버넌스 관련 간담회'를 개최하고 금융회사 최고 경영진이 앞장서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소비자보호 달성을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주문했다.
단순한 선언적 구호가 아닌 금융회사들이 실제 경영 과정에서 소비자보호 요소를 담고 소비자보호조직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금융당국에 제시한 측면에서 파장이 컸다.
이 날 발표된 '금융소비자보호거버넌스 모범관행'에는 금융회사의 실질적인 소비자보호 체계 운영을 위해 ▲이사회 ▲내부통제위원회 ▲담당임원(CCO) 및 총괄부서 ▲성과보상체계(KPI) ▲지주회사 등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주요 요소별 금융회사가 내재화해야 할 운영원칙이 담겼다.
금융소비자보호거버넌스 모범관행의 여파는 예상보다 컸다. 발표 직후 조직규모가 가장 큰 금융지주와 은행부터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범관행이 발표된 지 12일 만에 우리금융그룹이 ▲CCO 임면시 이사회 결의 필수 및 임기 2년 이상 보장 ▲CCO에게 배타적 사전합의권 보장 ▲소비자보호부서 인력 적극 충원 등의 내용을 담은 대응방안을 신속하게 발표했다.
이후 KB금융그룹은 주요 계열사 이사회에 소비자보호위원회를 설치하고 소비자 권익 강화를 위해 소비자보호 품질지수(CPQI)를 도입했으며 신한금융그룹도 주요 자회사 이사회 내 소비자보호위원회를 신설했다.
하나금융그룹은 지난 5월 국내 금융지주 중 최초로 그룹 이사회 내 소비자보호위원회를 개최하고 그룹 소비자보호담당 임원의 직급을 상무에서 부사장으로 격상하며 바짝 힘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BNK금융그룹이 부산은행과 경남은행 이사회 내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를 신설하고 CCO의 임면권을 이사회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조치가 이뤄졌다.
지난 4월 금감원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모범관행 도입 이후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 대상 금융회사 77개사 중 이사회가 소비자보호 관련 경영전략 및 정책을 직접 보고받는 기업이 55개사에서 69개사로 확대됐다. 소비자보호 관련 소위원회를 운영하는 회사도 2개사에서 15개사로 늘었다.
또한 최고고객책임자(CCO) 임기를 2년 이상 보장하는 회사도 29개사에서 51개사로 증가하며 CCO의 권한이 확대됐고 총인원대비 소비자보호부서 인원 비중이 1.65%에서 1.87%로 커지는 등 소비자보호부서의 인력규모도 커졌다.
대형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비자보호위원회에 금융소비자 관련 전문가 출신 사외이사를 배치해 주요 상정 의안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검토와 논의가 기대된다"며 "향후에도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 금소원 설립에 버금가는 조직개편으로 소비자보호 강화 부응
이 원장은 금감원 내 소비자보호 전담조직을 대거 확충하는 한편 각 권역마다 민원·분쟁담당 부서를 신설하는 등 소비자보호 중심의 파격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주목 받기도 했다.
사실 이 원장은 취임 일성부터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 문제를 마주하며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인 바가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따르면 금감원 내 금소원 분리가 예정되었지만 금소원 분리를 반대하는 금감원 수장으로서의 입장이 상충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금소원 분리는 반대하는 대신 금감원 조직을 소비자보호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방법을 택했다. 금융소비자보호처에서 소비자보호 핵심 업무를 분리해 원장 직속 소비자보호총괄 부문을 신설하는 것이 골자였다.
또한 소비자 피해구제 수단인 분쟁조정 기능을 각 업권의 상품·제도 담당 부서로 이관하는 한편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운영 전담팀을 신설하고 소비자보호 실태평가 전담팀도 확대했다.
보험업권의 경우 소비자보호담당 업무를 전담하던 금융소비자보호처로 편입됐는데 민원이 가장 많은 업권 특성상 반영된 결과였다. 대형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보험부문이 금소처 산하로 편입된 것 만으로도 보험사 입장에선 소비자보호업무를 더 신경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면서 "실제로 회사 내에서도 소비자보호 관련 부서들이 대폭 확충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소비자보호 관련 상시기구 신설을 통해 시장에 '금감원장이 소비자보호를 직접 챙긴다'라는 시그널을 주기도 했다. 지난 3월 원장 직속으로 금융권 및 소비자단체 등 전문가들이 포함된 '금융소비자보호자문위원회'를 출범하고 금융감독 업무 전반에 소비자 관점을 반영하기로 했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소비자단체 출신 인사가 처음 선임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동안 제재심의위원회는 법조계 인사에 편중된 구성으로 비판을 받았는데 지난 4월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이 임명됐다. 금융회사 제재 과정에서 소비자 전문가 시각이 반영돼 결과적으로 소비자보호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조직개편과 더불어 '금융소비자보호 개선 로드맵'도 발표하며 사전예방적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리스크 기반 소비자보호 감독체계를 구축하고 금융회사 내부통제·거버넌스를 소비자보호 중심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감원이 사후제재 중심에서 사전예방 중심으로 감독 기조를 전환하면서 금융회사 내부통제가 강화되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특히 금융사고 발생 이후 처벌하는 방식보다 위험요인을 미리 점검하는 감독체계는 금융시장 신뢰를 높이는 방향"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찬진 원장의 금융소비자 중심 금감원 조직개편과 금융회사 내부통제 강화 등이 아직 실질적인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금감원이 지난 1년간 사전예방적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조하고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이를 체감하기 어렵다"며 "금융사에서 소비자 보호 기조가 강화됨에 따라 일부 위험이 걸러지는 것도 있겠으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와닿지 않는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철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