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서민금융 '코드 맞추기' 시늉이라도 내자"

2008-04-16     뉴스관리자
몇달 전까지 만해도 수익성을 최우선하던 시중은행들이 새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역마진을 감수하면서까지 부쩍 서민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의 `서민경제의 활성화' 방침에 코드를 맞춘 것이다.

   16일 은행권에 따르면 홍콩상하이은행(HSBC)은 이번 주부터 정기예금의 최저 가입금액을 3천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대폭 낮췄다. SC제일은행도 현재 200만원인 최소 가입한도를 내리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최근 외국계 은행들이 소액 정기예금을 받지 않는 등 서민 금융소비자를 홀대한다는 지적이 불거지자 곧바로 한도를 낮춘 것이다.

   부자고객을 우대하던 모습과 달리 거꾸로 서민 만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들도 나오고 있다.

   기업은행이 이달부터 판매하는 `서민섬김 통장'이 대표적이다.

   1인당 2천만원까지만 예금을 받고 예금액에 상관없이 최고 연 6% 금리를 지급한다. 최저 가입한도 대신 최고 한도를 둔 것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소액예금에 고금리를 주는 역발상 상품"이라며 "사실 역마진을 감수하고 출시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1월부터 무주택자가 기준시가 3억원 이하인 주택을 구입하면서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때 금리를 0.5%포인트 우대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우대를 받으면 최고 1%포인트 금리가 낮아져 현재 적용되는 주택담보대출의 최저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총 5천억원 한도로 현재까지 100억여원이 판매됐다.

   시중은행 상품개발 담당자는 "새 정부 출범 후 서민경제의 활성화 분위기에 맞춰 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금융상품을 만들려고 고민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적정 수익을 확보하면서 서민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설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캐피탈이나 저축은행 등 자회사를 통해 신용등급이 낮은 고객에게 연 20~30% 금리의 소액 신용대출을 하는 방안도 잇따르고 있다.

   하나지주 자회사인 하나캐피탈은 지난달 소액 신용대출인 `미니론'을 출시했고, 기업은행 자회사인 기은캐피탈도 영세 중소기업직원 및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평균 20% 금리인 소액 대출을 내놓을 예정이다.

   우리금융지주 자회사인 우리파이낸셜도 다음달께 서민대출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고 국민은행도 서민금융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들이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를 낼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저신용자나 서민들에게 신용대출을 하지 않고 자회사를 통해 대출에 나서는 것 역시 기존 대부업체와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최근 청와대가 인하를 유도한 `소액 송금수수료'에 대해서도 대부분 은행들이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속병을 앓고 있다. 수익 측면에서 원가를 감안하면 이미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는 것이 은행권 항변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서민금융을 활성화한다는 취지에는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20%의 고객이 전체 은행 수익의 80% 이상을 가져다주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며 "건전성과 수익성 등을 감안할 때 실효성있는 방안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