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으로 빚어낸 ‘伊와인의 왕’
이탈리아 와인 ⑪ 프루노토 바롤로(Prunotto Barolo)
1800년대 사보이 왕가의 와인
1차대전 직후 프루노토가 인수
포도알 일일이 세는 섬세한 관리로
강건한맛.풍부한 타닌 완성
슈퍼 토스카나와 다른 고전파워 명성
최근 이탈리아 와인의 유명세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은 슈퍼 토스카나 와인들이다. 그러나 고전적인 와인 애호가들에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을 꼽으라면 대부분 바롤로를 가장 먼저 언급할 것이다. ‘이탈리아 와인의 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바롤로는 파워가 넘치면서도 세련된 면모를 갖추고 있다.
바롤로는 마을 이름이자 와인 이름이다. 소읍 알바(Alba)에서 남쪽으로 5㎞가량 내려가면 작은 마을 바롤로가 나온다. 인구는 200명 정도에 불과하고, 가게 두엇, 식당 하나, 육중한 나무 문이 닫혀 있는 포도원들이 보인다. 이처럼 자그마한 동네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을 만들어 내는 곳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다. 그러다가 수확철이 되면 다른 지방에서, 다른 나라에서 일꾼들이 몰려들고 축제 분위기가 벌어진다. 우리네 추석만큼이나 이곳의 포도 수확도 자연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시기에는 알바도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떠들썩해진다. 동시에 이 지역을 대표하는 두 개의 경매가 벌어진다. 바로 송로버섯과 바롤로 경매다. 전 세계의 미식가들과 와인 애호가들이 현지에 직접 찾아오거나 인터넷을 통해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과 송로버섯을 구입하기 위해 액수를 올려 부르곤 한다. 마을 전체는 매혹적인 와인과 버섯 향기로 뒤덮인다.
바롤로 와인이 세간에 등장한 것은 1800년대 중반의 일이다. 당시 이탈리아 통일운동은 토리노에 있는 사보이 왕가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졌다. 사보이 가문은 자신들의 영지에서 생산한 바롤로 와인을 왕실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면서 그 품질의 우수성을 알려나갔다. 이런 바롤로 와인을 전 세계에 알린 와이너리로는 프루노토(Prunotto)와 피오 체자레(Pio Cesare) 등을 들 수 있다. 알바를 거점으로 삼아서 가장 먼저 외국으로 수출하면서 바롤로의 뛰어남을 과시했고, 전통을 이끌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대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알바 읍내를 벗어나기 직전 아담한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작은 간판에는 프루노토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건너편에는 북에서 남으로 능선이 길게 이어져 있는데 이른바 ‘랑게(Langhe)언덕’이라고 불린다. 이 언덕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바롤로 포도밭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다. 1923년 알프레도 프루노토(Alfredo Prunotto)는 ‘랑게 와인 협동조합’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한다. 오랫동안 뜻을 모아 와인을 만들던 조합이었지만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됐다. 알프레도는 아내와 함께 어떻게 하면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골몰한다. 당시에 프루노토는 자기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았다. 각각의 농부들이 재배한 포도들을 사들여서 와인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알프레도가 알아낸 것이 서로 다른 밭에서 나온 포도마다 품질이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밭에서 재배된 포도가 가장 품질이 뛰어난지 선별하면서 구입해 와인을 만들어 나갔다. 지역 전체에서 가장 좋은 포도를 골라내고 마을은 물론, 각 밭의 특징을 이해하면서 블렌딩하고 와인을 만들었던 것이다. 바롤로 와인을 만들려면 네비올로 품종만을 100% 사용해야 하지만, 그 품종 자체도 토양에 따라 품질 차이가 컸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밭마다 이름이 따로 붙여지고 와인마다 구체적인 캐릭터의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이런 차이에 대한 이해가 프루노토에서 만든 바롤로의 품질을 개선해 주었고, 그 결과 바롤로를 대표하는 포도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프루노토의 바롤로를 상징하는 밭은 부시아(Bussia)이다. 해발 350m의 고도에 자리잡은 남향 밭으로 석회질이 많고 진흙과 모래 토양이 뒤섞여 있는 곳이다. 이 밭의 풍부한 석회질은 부시아 바롤로의 강건한 맛과 풍부한 타닌이 형성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우수한 토양을 골라내고, 거기에 세심한 관리를 더하면서, 수확할 때도 포도송이 하나하나를 선별함으로써 프루노토의 명성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잘 익은 체리, 꽃 향기, 그리고 스파이시한 향이 더해진 바롤로다운 향긋함을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