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교수채용 과정 `연구업적 조작' 의혹 파문
고려대 조형학부(옛 미술학부)가 신임 교수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상당수 응모자의 점수를 축소 조작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대학 측은 문제가 불거지자 새 교수의 채용을 취소했으나 관련자 징계와 추후 임용 절차를 미루고 있어 학교 안팎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7일 고려대 당국 등에 따르면 이 대학 조형학부는 지난해 8월 동양화 전공 이모 교수의 정년퇴임에 따라 지난 1월 새 교수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내고 서류 심사와 시범강의 등 절차를 거쳐 A씨를 신임 교수로 선발했다.
그러나 이번 채용에서 낙방한 상당수 응모자는 학교 측으로부터 돌려받은 연구실적물 제출 자료 사이에서 `전임교원 임용지원자 연구업적 총괄표'라는 제목의 서류를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형학부가 채용 심사를 위해 작성한 이 서류에서 자신들의 전시회 개최 횟수가 터무니 없이 축소 기재돼 있었던 것.
서류 심사에서 탈락한 B씨는 "개인전시회와 공동전시회를 합쳐 모두 106번을 했는데 표에는 개인전 3번, 공동전 11번 등 14번만 한 것으로 돼 있다. 이 때문에 1차 심사에서 떨어졌는데 학교에서는 실수였다고만 할 뿐 납득할 만한 해명을 못하고 있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다른 탈락자 C씨는 "100회가 넘는 실적이 60개로 깎인 선생님도 있는데 학교에서는 `60회가 만점이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해명을 했다고 한다. 최종 합격한 A씨는 전시회 횟수가 30~40회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연구업적 목록의 경우 심사위원장이 숫자가 맞게 기재돼 있는지 2번이나 확인한 다음 도장을 찍도록 돼 있기 때문에 고의적 조작이 아니고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 탈락자들의 판단이다.
이번 교수 채용 과정에서는 연구실적 축소뿐 아니라 모집 공고와는 다른 방식의 평가를 하고 응모자격 조건을 갑자기 완화하는 등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판단이다.
동양화는 전공 특성상 외국어(영어) 강의가 필요하지 않아 모집 공고에 `영어강의 예외 학과로 함'이라고 공지해 놓고선 실제로는 영어 시범강의를 한 응모자에게만 가산점을 줬다는 것이 응모자들의 전언이다.
한 탈락자는 "조형학부장이 시범강의 며칠 전에 전화를 걸어 `영어로 강의하면 가산점이 있다'고 했다. 심지어 일부 응모자는 이런 전화조차 받지 못했다. 실제로 영어로 시범강의를 한 3명이 최종 1∼3위로 결정됐다"라고 말했다.
`영어강의 예외 학과'라는 공고 내용을 어기고 영어 시범강의에 가산점을 준 것은 영어권 국가에 거주했던 A씨를 1위로 뽑으려는 `꼼수'였다는 게 탈락자들의 주장이다.
또 지난해까지 `5년 이상의 교육 및 연구 경력이 있는 자'로 제한했던 교수 응모자격이 올해 공모에서는 폐지된 것도 관련 경력이 3년 정도에 불과한 A씨를 선발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속출하면서 탈락자의 정식 진정이 접수되자 고려대는 부랴부랴 A씨의 채용을 취소했다.
조형학부 측은 이번 사태에 대해 "어느 한 케이스만 갖고 볼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와 묶여 있는 것이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조금만 있으면 입장을 밝히고 다 해결하겠다"라고 말했다.
대학 관계자는 "이번 채용 과정에는 절차상 문제점이 있다고 여겨져 일부 문제가 있는 것은 징계를 하고 인사 조치를 할 계획이다. 향후 인사는 본부에서 직접 공정하게 할 예정이다"라면서도 무엇이 문제점인지는 공개하기를 꺼렸다.
이와관련, 관련자 징계와 동양화 전공 교수의 채용이 늦어지면서 졸업을 앞둔 4학년 재학생들은 졸업작품 지도와 진로상담 등에서 큰 불편을 겪고 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