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환자들의 희망 `글리벡베이비'를 아세요?

2008-07-08     뉴스관리자
2002년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형성(37.경기도 김포)씨는 지금도 백혈병과 사투를 벌이면서 어렵게 살고 있다. 하지만 큰 아들 재우(3)에 이어 올해 초에 둘째 아들 재승이(1)를 낳으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새롭게 알게됐다.

   재우와 재승이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을 복용하면서 얻은 아이들이라고 해서 환자들 사이에서 `글리벡 베이비'로 불린다.

   `필라델피아 염색체' 이상에 따른 단백질 변이로 발생하는 만성골수성백혈병은 몇 년 전만 해도 평균 생존율이 불과 3~5년 밖에 되지 않는 불치병이었다. 하지만 2001년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는 글리벡이 국내에 소개된 이후 백혈병 환자들은 암 투병 중에도 엄마와 아빠가 되는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글리벡이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90%에 효과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글리벡이 국내에 들어온 이후 2003년 12월 첫 번째 아기가 태어난 데 이어 지금까지 재우와 재승이와 같은 글리벡 베이비가 수 십 명에 달한다.

   지난달 28~29일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의 모임인 `루 산악회'는 충남 홍성의 한 자연휴양림에서 `2008 희망찾기 하계 캠프'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재우와 재승이를 포함해 1~6세까지 16명의 글리벡 베이비들이 부모와 함께 참여했다.

   1박 2일 동안 진행된 캠프 내내 이들 아이들은 170여명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와 가족, 의료진에게 웃음과 행복을 선사하며 희망둥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물론 지금이야 애들의 재롱을 보고 행복해 하지만 당시만 해도 아이를 갖겠다고 결정하는 것 자체가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두려운 과정이었다고 이들은 토로한다.

   이영성씨도 마찬가지였다. 운수업에 종사하던 이씨는 2002년 10월 극심한 피로감과 온 몸에 번지는 멍 때문에 진찰을 받은 후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됐다. 독한 항암치료가 시작되면서 생업은 물론이고 정상적인 생활자체가 힘들어졌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내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집안에서는 차츰 웃음도 사라져갔다.

   엄마 아빠가 되기 위한 이씨 부부의 희망이 되살아난 것은 2003년 건강보험 급여를 통해 국내에 본격 소개되기 시작한 글리벡을 복용하면서부터였다.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담당의사의 처방대로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었다.

   아프던 몸에 차츰 변화가 오기 시작했고, 백혈구 수치도 정상에 가까워졌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큰 불편함이 없어졌다. 원래 하던 운전을 다시 시작하면서 가슴 속 한구석에 묻어두었던 2세에 대한 희망이 다시 되살아났다고 이씨는 당시를 회고한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아이를 갖게 되면 아이가 잘 못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이미 글리벡을 복용하면서 건강한 아이를 가진 환자가 있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2006년 첫 아이를 가졌고, 올해 둘째 아들까지 낳았죠"라며 그는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던 임신 당시를 떠올렸다.

   올해 초 둘째 딸 현솔이(1)를 낳고 두 딸의 아빠가 된 김대영(36)씨 역시 2005년 10월에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케이블 TV 회사에서 일하는 김씨는 일의 특성상 외근이 많아 처음에는 치료에 걱정도 많았으나 병 진단 후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서 일상생활 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김씨도 아이를 가진다는 게 과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에게는 병을 얻기 전 낳은 첫째 딸 하은이(4)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친척분들을 비롯해 주변 분들이 태어날 아이의 건강도 중요한데 굳이 또 아이를 가져야 하냐고 말리셨어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가능하다는 확신을 주셨고, 무엇보다 결혼 초 두 명의 아이를 갖자고 했던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어요"
김씨 부부는 올해 1월 마침내 건강한 현솔이를 얻게 됐고, 주위의 우려는 희망으로 변했다. 이번 캠프에서도 현솔이는 다른 글리벡 베이비들과 함께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많은 백혈병 환자들의 희망과 관심의 대상이 됐다.

   국내 `글리벡 베이비'의 대부격인 여의도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 교수는 "물론 백혈병 환자가 아이를 가지려면 의료진과 세심한 부분까지 상의해야겠지만, 많은 환자들이 글리벡 복용 후 백혈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몸 상태가 좋아지는 만큼 얼마든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서 "최근에는 남성 백혈병 환자뿐만 아니라 글리벡을 복용하고 있는 여성 백혈병 환자도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