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 박병엽 부회장이 차기 대통령 감으로 거론되며 세간의 뜨거운 시선이 쏠렸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최근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차기 대통령 감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라는 폭탄발언했다.
이 전 지사가 박 부회장을 대통령감으로 거론한것은 맨손으로 벤처기업을 시작해 큰 기업을 일군 후 좌절과 재기 등 성공한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와 관련 팬택 관계자는 "가진 것이 없이 회사를 키웠고 좌절을 극복해 낸 박 부회장의 능력을 높이 샀기에 나온 발언인 것 같다"며 "박 부회장 성격상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겨를도 없고 현재 회사를 정상 궤도에 올리는 작업에 매진하기도 바쁜 상황"이라며 정치 외도 가능성을 차단했다.
실제로 박 부회장은 한국기업사에서 기업가 가치를 인정받는 몇 안 되는 지.덕.용 3가지 리더십을 두루 갖춘 경영자로 평가받고 있다.
박 부회장은 스스로 “변화의 순간에는 위기가 따르며 이를 기회로 삼지 않으면 결코 앞으로 나갈 수 없다”라는 신념을 자주 피력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이 포진한 IT정글에서 맨주먹으로 팬택계열을 국내 3강의 IT기업으로 끌어올려 ‘샐러리맨의 성공신화’로도 자주 회자된다.
박부회장은 1985년 충청 아산시에 위치한 호서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맥슨전자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1991년 전셋돈 4천만원을 종자돈 삼아 서울 신월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직원 6명과 함께 무선 호출기 사업을 시작하며 인생 2막을 그려나갔다.
그가 이끈 팬택 계열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생산으로 미국 모토로라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고 연간 3억 달러의 수출을 기록하며 내실을 다졌다.
2001년에는 사재를 털 정도의 공격적 승부수로 매출규모 1조원에 이르는 현대큐리텔을 인수하며 중견 그룹으로 몸집을 불렸다.
대기업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휴대폰 사업을 시작한만큼 그는 유럽과 미국을 이웃나라처럼 무박 3일의 일정으로 다니는 열정도 보였다.
현대큐리텔을 인수했을 당시 박 부회장은 업무보고 과정에서 금융권과의 이자 협상율을 5.2%라고 보고한 재무책임자에게 “5.2%가 아니라 5.195%”라고 지적한 일화는 유명하다.
4년 뒤인 2005년에는 국내 최고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스카이를 인수해 휴대폰 사업의 절정을 구가하게 된다.
성격이 서민적이고 소탈해 2000년 팬택 대표이사 부회장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의 직함은 변함없다. 포장마차를 즐기고 나이 많은 임원에게는 ‘형님’, ‘선배님’이라는 깍듯한 호칭을 붙일 정도로 친화력도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상이든 아니든 처음 대면한 사람이라도 5분이면 호형호제 할 정도라고.
2006년 국내 금융환경 악화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며 15년간 이어져온 성공신화가 무너지는 듯 했으나 오뚜기처럼 일어선 그는 팬택을 가장 모범적인 워크아웃 졸업 사례로 만들었다.
이과정에서 박 부회장은 자신의 지분 4천억원을 회생자금으로 내놓고 전국 방방곡곡의 채권단을 설득하며 백의종군했다.
워크아웃 후 사즉생의 정신으로 하루도 쉬지 않으며 회사를 이끈 박 부회장은 2009년 다시 한 번 과감한 배팅을 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열풍이 불었고 국내는 여전히 피처폰이 대세였지만 팬택은 스마트폰 올인을 선언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념의 발로다. 박부회장의 스마트폰 올인 전략은 그대로 적중해 팬택은 18분기 연속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지난 23일 한 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 부회장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지방대를 나왔음에도 벤처기업을 큰 기업으로 키웠으며 좌절을 딛고 재기에 성공했다”며 충분한 대통령 감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유성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