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하면 운전자의 목숨에 직결될 수 있는 아찔한 사고임에도 제조사는 "검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채 차량에는 문제가 없다"고만 판명하는 경우가 대부분. 차량의 사고 기록(EDR)데이터 검사 결과 공개를 촉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94년부터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되기 시작한 급발진 사고는 97년부터 건수가 급증했다. 그러나 2004년 3월 자동차 급발진 사고에 대해 자동차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의 첫 판결 이후 현재까지 운전자 편의 손을 들어준 판례는 없는 상황이다.
한편, 미국은 오는 9월부터 소비자가 EDR 데이터를 요구할 경우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규정을 시행한다.
◆ 주차하려는 순간 급발진으로 벽 뚫고 추락
8일 대구 달성군 화원읍 여 모(여.39세)씨는 지난달 7일 2006년 구입한 기아 로체 차량을 운전하다 아찔한 사고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해 근무하고 있는 주유소 옆 주차 공간에 주차하려고 서서히 속도를 줄인 후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갑자기 엔진이 굉음을 내면서 제어할 시간도 없이 차가 담장벽을 향해 질주한 것.
여 씨에 설명에 따르면 차가 갑자기 속도를 내는 순간 브레이크를 연신 밟아댔지만 전혀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고.
결국 차는 50m를 돌진해 벽에 충돌한 뒤 2번을 뒤로 왔다 갔다 하더니 순식간에 담장을 부수고 약 20m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말았다.
여 씨는 추락하는 순간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떴을 때는 차체가 반 쯤 뒤집힌 채 에어백이 터져 있었으며 여 씨는 뒷좌석 모서리로 튕겨나가 있었다고. 이후 여 씨는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고 2주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이 후 여 씨는 기아자동차 측으로 CCTV 녹화본을 제출하고 자동차 급발진 사고 원인 규명을 요구했지만 '급발진 사고라고 볼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여 씨는 "CCTV를 보면 브레이크 등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 뒷바퀴는 멈춰져 있고 차가 앞바퀴에 끌려 튕겨져 나가는 것이 분명히 보이는데도 업체 측이 무시하고 있다"며 "사고 조사를 하러 나온 경찰들과 함께 CCTV를 함께 봤을 때도 이구동성 급발진 사고라고 말해도 제조사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기아자동차 측은 내부 분석 중이라며 공식 답변을 미루고 있는 상태다.
◆ 브레이크 작동 안돼 급기야 트럭 충돌.."이상 없으니 수리비나 내~"
창원시 양덕동에 거주하는 윤 모(여.50세)씨 역시 지난 3월 르노삼성 SM5를 운전하다 급발진 사고를 겪었다.
편도 1차선 도로에서 약 50Km/h 속도로 달리던 중 갑자기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고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던 것. 당황한 윤 씨가 브레이크를 여러 번 밟았지만 제동이 되지 않았고 급기야 전방에 주행 중이던 트럭에 두 차례 충돌하고 말았다.
충돌 후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려 겨우 차를 멈출 수 있었지만 한동안 차에서는 윙 하는 소리가 계속됐고 윤 씨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고.
윤 씨는 “정상 주행을 하던 차가 갑자기 고속으로 올라가면서 앞차를 들이받는데 손을 쓸 수 없었다”며 “앞이 낭떠러지거나 사람이라도 다치게 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니 너무 아찔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윤 씨는 사고수습 후 즉시 르노삼성자동차 측에 상황설명과 함께 급발진에 대한 검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서비스센터로부터 나온 검사 결과는 차량에는 이상이 없다는 것.
윤 씨는 평소에 차량에 이상이 없었고, 정기점검도 철저히 했는데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냐고 항의했지만 서비스센터에서는 검사에 대한 보고서는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에 대해 르노삼성자동차 관계자는 “검사 결과 해당 차량은 급발진 사고 판단 기준에는 맞지 않았다”며 “차량 파손이 미미한 점 등을 분석했을 때 운전자가 짧은 순간에 제동 시기를 놓친 것으로 판단되므로 급발진 차량이 아니며 수리비도 지불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 갑작스런 굉음내며 내달려.."이번에도 유령짓?"
서울 방배동 박 모(남.51세)씨도 2년 전 서초구 인근 주택가에서 급발진 사고를 겪었다.
사거리에서 좌회전 해 내리막길을 가기 위해 정지 후 가속 페달을 살짝 밟았는데 차량이 갑자기 굉음을 내며 내달린 것.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박 씨는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고, 10여 미터를 돌진한 끝에 전봇대를 들이받고 옆으로 돌아 누워버렸다.
그러나 문제의 차량을 제조한 현대자동차 측은 정밀검사를 실시했지만 차량에는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박 씨는 "차가 멀쩡하다면 유령이 뒤에서 밀었다는 소리냐"고 반문한 뒤, "정지했던 차의 가속 페달을 갑자기 세게 밟는다고 해서 차가 급속히 튀어나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어 "비교적 안전지대인 주택가에서 발생한 급발진이라 피해가 경미했지만, 도심 혼잡한 곳이나 고속 주행 중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며 "차가 언제 또 제어불능 상태가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불안하기만 하다"고 탄식했다.
이후 박 씨는 두 달 간 업체 측과 실랑이를 벌였지만 회사 측이 입장을 바꾸지 않아 600만원의 수리비용은 고스란히 박 씨의 몫이 됐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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