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가 '저축은행 부실․비리사태'로 2년째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은행 금리조작 파문'까지 불거지면서 금융시장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금융소비자들은 시중은행들이 경기침체와 서민경제 위축에도 불구하고 대출상품에 가산 금리를 높게 책정해 부당이득까지 챙겨온 사실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한편, 이를 올바로 감시․감독하지 못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직무유기를 엄정히 물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각에선 은행의 금리 횡포에 대해 '터질게 터졌다'는 반응과 함께 금융당국의 '봐주기식 감독'과 은행이 정치화되면서 지나치게 많은 권한과 특혜를 부여 받고 있다는 점도 근본원인으로 꼬집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 금리산정의 지표가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에 이어 대출시 과도한 가산 금리를 적용한 사실이 추가로 적발되면서 금융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부당이득반환 공동소송' 등 대규모 법적소송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 상에도 은행과 금융당국을 향한 네티즌들의 분노와 지탄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디 '눈꽃송이님'은 "부당수익에 대한 이자, 피해고객 사기와 기만행위에 대한 보상금까지 더해서 즉시 보상하라"며 "금감원도 응분의 책임과 법적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분개했다.
아이디 '할말은한다님'은 "대국민 사기극으로 폭리를 취하는 금융사들, 이를 감싸기만하는 금융당국을 이참에 손봐야 정의가 실현된다. 모두 소송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권 금리조작 의혹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착수가 발단이 됐지만 금리 산정기준에 대한 의문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은행․증권사들의 CD금리 담합 정황이 포착됨에 따라 지난 17일과 18일 19개 금융회사에 조사팀을 보내 CD금리 책정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현장조사를 벌였다.
또한 감사원은 지난 1~2월 금감원과 금융위에 대한 금융감독 실태를 감사한 결과,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 변동금리 대출상품에 대해 가산 금리를 높여 수천억원대의 부당이익을 챙긴 사실을 적발했다.
주요 은행들은 지점장 전결로 가산·감면한 금리와 적정한 기준금리를 더해 최종 대출 금리를 결정하는데 감사 결과, 신용등급이 높은 대출자에게 더 높은 가산금리를 부과하거나 지점장이 최고 가산금리 한도를 명확한 기준 없이 정한 경우 등 60여건의 위반사항을 적발했다.
감사원은 지난 18일 금융당국에 이런 불합리한 가산금리 부과방식을 개선할 것을 통보했다.
그러나 은행 등 관련 금융회사들은 여전히 CD금리 담합의혹에 대해 부인하고 있고 금융당국도 은행들과 보조를 같이하면서 사태수습에 나서고 있다.
금융당국은 뒤늦게 '단기지표금리 제도개선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CD발행 및 유통량을 늘려 투명성을 제고하는 방안과 중장기적으로CD금리를 대체할 지표를 마련 중이다.
특히, 권혁세 금감원장과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은행들이) 담합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공정위의 조사방식에 의문을 제기, 유감을 나타내며 배수진을 치고 있다.
반면, 초기에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던 공정위 측은 CD금리 담합 사안이 갖는 파급력을 고려해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다. 일부 금융사가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를 목적으로 공정위에 CD금리 조작사실을 인정했다는 풍문에 대해서도 철저히 함구했다.
금융계는 관련 자료가 방대하고 관련금융회사들의 소명기회 등을 감안해 공정위의 최종 결과가 나오려면 두달가량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 사안에 관심이 집중된 만큼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면 발표시기를 단축시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통합당 등 정치권에서도 은행권의 CD금리 담합 의혹에 대해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 국정조사 등을 통해 철저하게 규명할 것으로 강력 촉구했다.
금융소비자연맹 등 관련시민단체들도 은행권 CD금리 조작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후속조치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이미 과도한 가산금리로 부당이익을 챙겨왔다는 지적을 받은 가운데 CD금리 담합 의혹마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규모 소송 등 심각한 후폭풍에 휘말릴 전망이다.
3월말 현재 국내은행 총 원화대출(1천80조원) 중 CD금리 연동 대출은 324조원(약 30%)에 육박한 가운데 은행들은 금리조작을 통해 고객들로부터 연간 수조원의 달하는 이익을 챙겨온 셈이 된다.
사실 시중은행들은 저금리 기조에도 불구하고 예대마진 차익(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익)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로 지난해 5월 5.98%였던 신규 기업대출 금리는 올해 5월 5.74%로 0.22%포인트 하락한 반면, 가계대출 금리는 5.46%에서 5.51%로 오히려 높아졌다. 정부의 대출규제가 강화되자 가계대출만 올려 폭리를 취한 것이다.
또 '저축은행 사태'로 여론의 몰매를 맞았던 금융당국 역시 그에 버금가는 엄정한 책임을 져야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대대적인 인적․조직쇄신과 이를 감시․견제할 독립된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설립 등의 여론을 더는 외면할 수 있는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