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인한 저금리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은행권이 수익악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은행마다 조직슬림화와 영업강화를 통해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허리띠를 졸라 매는 데는 다소 소극적인 모습이다.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대표 박주근)는 최근 KB국민과 신한, 우리, 하나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의 순이익을 기준으로 계산한 직원 1인당 평균 생산성이 지난해 3분기까지 7천160만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1억760만원에 비해 33.5%나 감소했다는 조사자료를 내놓았다.
반면 같은 기간 직원 1인당 평균 급여는 4천620만원에서 5천640만원으로 22.1%나 증가했다.
수익이 30% 넘게 감소했는데도 불구하고 직원 급여는 다른 직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오른 것이다.
사실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지만 은행이 여전히 수천억원 대의 순이익을 내고 있는 상황이고, 직원들이 공무원도 아닌데 고통분담 차원에서 급여 동결을 강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은행의 제 잇속 챙기기 행태가 오래 전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은행에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이 투입된 바 있다. 이후 회생에 성공한 은행들은 막대한 수익을 쌓으면서도 대출금리나 각종 수수료 인하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적잖은 원성을 샀다. 국민의 세금을 퍼부어 살려 놓았더니 자기 배 채우기에만 급급하다는 비난여론이 한동안 고조됐다.
결국 금융당국이 나서서 수수료 체계를 개선하고 예대마진 축소를 유도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가 은행의 수익감소에 한몫을 하고 있다.
한국은행과 금융권에 따르면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를 뜻하는 예대마진은 지난해 8월 2.03%포인트에서 지난해 12월 1.74%까지 하락했다가 올해 1월 2%포인트로 올랐지만 앞으로 다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도 은행이 수익악화를 벗어나리 어려우리라는 관측이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4대 은행의 직원 급여 인상률은 지나치게 과했던 셈이다. 참고로 고용부가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의 협약임금 인상률은 평균 4.7%에 불과했다.
은행이 직원들의 사기를 고려해서 형편이 허락하는 선에서 최대한 혜택을 주려고 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직원처우와 관련해 진짜로 시급한 사안은 급여인상이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이기 때문이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7개 시중은행과 기업은행을 비롯한 주요 은행 8곳 가운데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의 계약직 비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SC은행이 33%로 계약직 비중이 가장 높았고 기업은행(31.2%)과 외환은행(30.6%)도 30%를 넘겼다. 4대 은행의 경우 KB국민의 계약직 비율이 26.5%에 달했고 신한은행이 11.6%, 하나은행이 11.2%였다. 우리은행은 계약직 비중이 4.6%에 불과했다.
알려진 대로 계약직 직원의 경우 고용불안은 물론 급여와 각종 복지혜택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은행이 평균 급여를 크게 높여도 그 혜택이 정규직 직원들에게 집중된다는 뜻이다.
즉, 수익이 줄든 말든, 계약직 직원들이 손해를 보든 말든 정규직 직원들만 잇속을 차리고 있는 셈인 것이다.
지난해 대선 정국을 계기로 비정규직 문제가 큰 관심을 끌자 은행들은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나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올들어 계약직 텔러 830여명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산업은행은 무기계약직 37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기업은행은 단기계약직 제도를 폐지하고 무기계약직만 채용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기존 정규직과는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무기계약직은 고용기간을 보장해주기는 하지만 정규직은 아니기 때문에 급여나 승진제도, 복리후생 여건이 동등치 않다는 것이다. 신한은행의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된 텔러를'RS(retail service)'직군으로 분류해 기존 정규직과는 다른 급여체계를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 경제체제에서 기업은 직원에게 급여를 얼마나 줄 것인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경영성과와 급여수준이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은 결코 온당치 않은 일이다.
더구나 같은 직장에서 같은 종류의 일을 하면서 급여와 복리에 차별을 받는 것은 시장경제 논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은행이 금리장사로 제 배만 채운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우려면 경영성과에 걸맞는 적절한 임금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조직내부의 차별도 해소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