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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미비로 보험금 퇴짜 일쑤...10년간 국회 문턱 못넘는 '청구간소화법', 소비자만 골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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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미비로 보험금 퇴짜 일쑤...10년간 국회 문턱 못넘는 '청구간소화법', 소비자만 골탕
서류 많고 절차 복잡해 소액 청구 포기 일쑤
  • 박관훈 기자 open@csnews.co.kr
  • 승인 2021.09.10 0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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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금 청구 위해 안내한 서류 제출했는데 추가 자료 요구=서울시 도봉구에 사는 최 모(남)씨는 지난 2006년부터 (무)LIG 웰빙보험(현 KB손해보험)에 가입해 15년 째 계약을 유지 중이다. 최 씨는 최근 상해로 병원 진료를 받고 보험사 홈페이지를 통해 '진료비 세부내역서' 등을 첨부한 뒤 보험금을 신청했다.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일자별 외래진료비영수증을 첨부해 재청구하라’고 다시 안내했다. 최 씨는 “보험사 홈페이지에서 제출하라고 한 '진료비 세부내역서'를 첨부했는데 '일자별 진료비 영수증'을 추가로 제출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 보험금 청구 때마다 '서류 미비' 등 퇴짜맞기 일쑤=성남시 서현동에 사는 이 모(여)씨는 교보생명 실손보험에 가입 이후 의료비를 청구할 때마다 애를 먹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씨에 따르면 보험사에 의료비를 청구할 때마다 ‘양식에 맞지 않다' '청구 서류가 미비하다’는 등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당한 사례가 수차례다. 이 씨는 “실손의료비를 청구할 때마다 매번 애를 먹고 있다”며 “특별한 이유 없이 불필요한 서류를 요구하는 보험사의 횡포인지, 제도상의 문제인지 모르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병원 멀어 각종 서류 떼기 쉽지 않아...'방법 없나?'=포항시 죽도동에 사는 최 모(남)씨는 지난해 아버지가 암 진단으로 입원한 후 실손의료비 청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의료비를 청구한 흥국화재가 의사소견서 등 각종 서류를 요구하면서다. 최 씨는 아버지가 연로한데다 병원이 타 지역에 위치해 서류 제출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최 씨는 “피보험자인 아버지가 나이도 많고 입원했던 병원이 타 지역에 있어 필요한 서류를 떼기가 쉽지 않다”며 “보험사가 병원에 직접 관련 서류를 요청하고 진상을 밝히던지 해야지, 소비자를 이렇게 번거롭게 하니 정말 불편하다”며 한탄했다.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개정안이 올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보험금 청구 절차에 불편을 토로하는 소비자들의 개선 요구가 거세다.

보험가입자가 의료기관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면 전산시스템을 통해 필요한 서류를 보험사에 전송함으로써 보험금을 자동 청구하는 '간소화법' 통과가 절실하다는 게 소비자들의 주장이다. 

현재 보험금을 청구하려면 소비자가 병원과 약국 등에서 진료비 세부내역서, 일자별 진료비 영수증 등 각종 서류를 직접 챙겨 보험사에 내야 한다. 보험설계사 또는 팩스 등을 통하거나 보험회사를 직접 방문해 청구서와 함께 제출해야 하는 식이다.

서류를 제출해도 추가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빈번하고 증명서 발급에 드는 비용도 몇 천 원에서 수 만 원대에 달해 부담이 적지 않다. 

청구 절차가 복잡하고 간단치 않다보니 소액의 보험금 같은 경우 청구를 포기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실손의료보험은 일상적인 의료비를 보장함으로써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률을 보완하는 보험상품이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중 약 3800만 명, 80% 이상이 가입하고 있다. 

실손의료보험이 보편화됨에 따라 보험금 청구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으나 번거로운 과정으로 소비자 불편이 가중되면서 개선에 대한 요구는 계속돼왔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도 서류를 기반으로 보험금 지급업무를 수행하는 현행 방식이 번거롭고 비용이 이 많이 들어 간소화 개정안이 통과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 법안이 통과되면 환자가 의료기관과 보험사 사이에서 직접 서류를 전달할 필요 없이, 의료기관이 전자기록의 형태로 보험사에 직접 환자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소비자와 보험사들의 기대에도 불구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개정안' 이 통과되지 않는 것은 의료계의 반발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 정청래 의원 등 10인이 ‘실손의료보험 계약 보험금 청구 서류의 전자적 전송 근거 마련’에 대한 보험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으나 이번에도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회가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돌입한데다 의료계의 거센 반대로 이해상충 이슈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지난 6월과 7월 의료계 반대가 심한 상황에서 여야는 이 법안을 ‘이해집단 간 상충있는 쟁점 법안’으로 분류해 법안 소위에 상정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정무위 의원들은 개정안을 통해 보험회사가 실손의료보험의 보험금 청구 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하도록 하거나 이를 전문중계기관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보험계약자·피보험자 등이 요양기관에게 의료비 증명서류를 전자적 형태로 보험회사에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최근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IT 강국임에도 보험금 청구 절차는 옛 방법에 머물러 있다”며 “디지털 기반의 IT활용 등을 통해 보험소비자의 편익을 개선하고 요양기관과 보험회사 등의 업무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해당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행 실손보험금 청구 방식은 연간 수억 장에 달하는 종이가 낭비된다는 점에서 최근 대두되는 ESG경영 관점과도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의료계는 여전히 보험사가 환자 정보를 축적하면 향후 보험료 할증 및 갱신 거부에 활용할 위험이 있다며 해당 법안이 보험사의 이익만 고려한 것이라 반발하고 있다.

복지부 역시 “민간보험 계약관계에서 제3자에 해당하는 요양기관에게 서류의 전자적 전송 요청을 따라야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은 의무이행 및 수용성 제고를 위한 재정적, 행정적 지원 방안을 함께 논의하는 등 사회적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는 10여 년 전인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권고했고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고용진,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채 폐기됐었다.

보험업계는 실손보험 청구 절차가 간소화되면 보험가입자의 편의성을 제고할 수 있으며, 과잉진료의 문제 또한 상당수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안 통과 무산을 아쉬워하고 있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올 들어 금융위원장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국민 여론 등도 나쁘지 않아 법안 통과를 기대했지만 결국 무산되는 분위기라 안타깝다”라며 “특정 (이익) 집단의 입김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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