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세탁기 등 생활가전의 고장으로 음식물이 상하고 세탁물이 훼손되는 등의 2차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업체 측이 규정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보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아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에어컨과 정수기 등 렌탈 제품의 설치 및 부실한 사후관리로 발생한 피해 역시 소비자가 보상받기 어려운 대표적인 사례다. 설치 제품의 경우 피해발생 시 보상규정이 갖춰져 있음에도 업체 측은 설치기사의 소속여부, 하자 입증 문제로 보상을 거부하기 일쑤다.
인천시에 거주하는 박 모(여)씨는 지난해 냉장 기능이 고장 난 LG전자 냉장고가 부품이 없어 수리 지연된 탓에 보관 중이던 고기와 해물 등 음식물이 상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 천안시의 최 모(여)씨 역시 구입한 지 3개월 된 삼성전자 김치냉장고의 콤프레샤 고장으로 김치와 장아찌 등이 상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박 씨와 최 씨는 “업체 측은 ‘음식물에 대한 보상 규정이 없어 힘들다’고 안내하더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제조사들은 냉장고 고장으로 발생한 음식물 손상 등 2차 피해에 대한 보상 규정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없다는 입장이다. 자체 규정을 갖추려는 움직임도 없다.
일부 보상에 나서기도 하지만 ‘원래는 안 되는 것인데 특별히 해준다’며 되레 생색내기 일쑤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보상받기 위해 부실한 애프터서비스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단체 전문가는 “피해 입증 문제와 음식물 가액이 문제지만 피해보상과 관련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는 상황이다. 다만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개정 작업에서 논의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옷 세탁 후 손상된 세탁물에 대해서도 업체 측은 보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세탁기 성능 및 불량을 손상 원인으로 지목하고 보상을 요구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용자 과실’이다.
시흥시의 이 모(여)씨는 최근 삼성전자 콤팩트 워시로 빨래한 스포츠웨어 상하의가 칼날에 찢긴 듯한 피해를 입었다. 통돌이에 미세한 찌그러짐이 원인으로 보였다. 이 씨는 “보증기간이 지났기에 유상수리가 가능하고, 손상된 옷은 고객 과실이라 보상이 힘들다는 안내를 들었다”며 불만스러워했다.
경기도 광주시의 서 모(남)씨 역시 LG전자 통돌이 세탁기로 패딩 점퍼를 빨래했다가 옷감이 손상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소매 부위는 내부 충전재가 밖으로 삐져나올 정도로 찢어졌는데 뾰족한 것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서 씨는 “세탁기에 문제가 있다 여기고 AS를 신청했지만 ‘이용자 과실’이라는 안내를 들었다”며 황당해 했다.
업계 관계자는 “세탁소에서의 세탁 사고에 대해선 배상비율표 등 보상기준이 마련돼 있지만 가정용 세탁기에서 세탁 후 발생한 옷 손상에 대해선 마땅히 정해진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 설치 하자 피해, 보상 규정 있으나 마나...관할 직원 아니고 증거 없다며 책임 회피
에어컨 설치기사가 벽지를 뜯고 배관 구멍을 보기 흉하게 크게 뚫는 등 설치과정에서 발생한 2차 피해에 대한 보상처리 역시 지지부진인 경우가 많다.
인천시 남구에 사는 신 모(남)씨는 삼성에어컨을 인터넷으로 구매했다가 설치 과정에서 창문 유리가 깨지는 피해를 입었지만 보상을 거부당한 경험이 있다. 신 씨는 “벽에 구멍 뚫기가 어려워 창문을 잘라 작업하겠다더니 유리를 깨트리고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며 막무가내로 가버리더라”며 황당함을 토로했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에어컨 설치 하자로 인해 발생한 소비자의 재산 및 신체상 피해는 사업자가 손해 배상을 하는 것으로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에어컨 제조사 측은 온라인 몰 등 기타유통업체에서 구매한 경우 설치기사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피해에 대한 보상 관련해 중재의 책임이 없다고 발을 뺀다.
삼성디지털프라자, LG베스트샵 등 브랜드 직영점과 백화점, 홈쇼핑에서 에어컨을 구입했다면 설치는 통상 본사 파견 기사가 하게 된다. 이 경우 설치비가 상대적으로 비싸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제조사 측에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코웨이, 청호나이스, 쿠쿠전자 등 렌탈 정수기를 청소한 뒤에 누수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빈번하지만, 업체 측은 보상을 위한 책임규명이 쉽지 않다며 책임을 회피한다.
아산시에 사는 유 모(여)씨는 렌탈한 청호나이스 정수기의 청소 관리를 받은 후 거실과 부엌 바닥이 물바다가 되는 피해를 겪은 적 있다. 유 씨는 “정수기 청소를 끝낸 코디가 밸브를 제대로 잠그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며 보상을 요구했지만 ‘증거가 명확하지 않다’며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소비자단체 전문가는 “규정상 사업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다면 손해배상을 하도록 돼 있으나 성능유지, 하자보수, 관리의무 등 사업자의 귀책사유 입증을 소비자가 해야 하기 때문에 업체 측이 일단 발뺌하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 = 유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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