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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대포통장 근절 실적 쌓겠다고 생사람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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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대포통장 근절 실적 쌓겠다고 생사람 잡아?"
입출금 통장 개설하는데 증빙서류 한가득...소비자 불만 터져
  • 윤주애 기자 tree@csnews.co.kr
  • 승인 2015.11.05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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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과 은행들이 대포통장을 근절하겠다며 신규 입출금 통장을 개설할 때 각종 증빙서류를 요구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뚜렷한 직장이나 거주지가 없는 소비자는 입출금 통장 하나 만들기 힘들 정도다. 대포통장에 따른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은행들이 과도하게 소비자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감독원(원장 진웅섭)은 지난 3월 대포통장으로부터 발생되는 금융사기를 사전에 방지하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수시 입출금 통장을 신규 개설할 때 금융거래목적확인서를 받도록 각 은행들에 지도했다. 

급여통장을 만들 경우 재직증명서나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급여명세표 등을 요구하는 식이다. 법인 사업자라면 새롭게 거래하려는 은행에 물품공급계약서(계산서)나 재무제표, 부가가치세증명원, 납세증명서 등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직장을 다니지 않고 있는 취업준비생이나 주부, 노인 등은 공과금이나 휴대전화요금, 아파트 관리비 등을 자동이체하기 위해 입출금 통장이 필요하다고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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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은행의 금융거래 목적 확인을 위한 증빙서류 예시.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 다른 은행도 증빙서류 요건이 크게 다르지 않음.

금융당국과 은행들은 입출금 통장 개설 목적을 분명히 해 차후에 대포통장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30일부터 일부 고객에 대해 시행하던 것을 입출금 통장 서류 증빙을 모든 신청자에게 요구하고 있다.

신한, 우리, NH농협, KEB하나 등 다른 은행들은 일찌감치 대상자를 확대해 금융거래목적확인서를 받고 기타 증빙서류를 첨부하고 있다. 차후에 무슨 일이 발생할 지 모르니 급여통장이라면 명함이라도 받아놔야 하고, 재직증명서 등도 복사본을 지점별로 보유하도록 내부지침을 강화했다.

특히 은행들은 거주지나 직장 인근 점포가 아닌 곳에서 신규 입출금 통장을 개설하는 게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며, 더 세밀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신길동에 사는 A씨가 자녀의 입출금 통장을 만들려면 직장 인근인 중구에서는 안되고 신길동 지점에서나 가능한 식이다. 이 경우 동사무소 등에서 자녀를 중심으로 한 가족관계증명서 등의 증빙서류를 떼 가야 하는 건 필수조건이다.

상대적으로 개인고객수가 적은 IBK기업은행은 입출금 통장을 만드는데 크게 제한을 두지 않았다. 기업은행은 최근 한 달 동안 입출금통장을 1번 만들었을 경우 거래목적을 확인해 두번째 입출금통장을 만들도록 했다.

금융소비자와 금융소비자단체 "일부 범죄 막자고 온 국민 불편" 한 목소리

올 들어 입출금 통장을 만들기 까다로워지자 금감원과 각 은행들에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자녀에게 통장을 만들어주려던 학부모, 용돈통장과 체크카드를 만들려던 중학생 등 증빙서류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 계좌를 개설하지 못한 이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이 모(남)씨는 "대학생이 용돈을 받으려고 통장을 개설하려는데 무슨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하냐"며 "일반인 통장 개설 건수가 많지, 예비 범죄자들의 통장 개설 건수가 많은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말이 안된다"고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박 모(여)씨도 "겨우 시간 내서 은행에 입출금 통장 발급받으려고 갔더니 특정한 목적이 없으면 안된다고 하더라. 금융거래목적을 입증할 방법이 없는 취업준비생이나 대학생, 주부, 노약자들은 금고를 사서 보관하라는 것이냐"고 어처구니 없어 했다.

그러나 금감원 측은 신규 통장 개설을 제한했더니 대포통장 건수가 줄었다며 지금의 기준을 계속 가져갈 예정이라고 확고한 입장을 보였다.

금감원 관계자는 "올 들어 대포통장 건수가 감소하는 추세"라며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입출금 통장 개설을 제한하고, 지연출금제도 등을 도입한 게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이어 "민원이 접수되고 있지만 대포통장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이 정도는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국내에선 통장을 만들기 쉽고 수수료도 부과되지 않아 우후죽순 통장 숫자만 늘었지만 앞으로는 휴면계좌를 줄여 대포통장을 근절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홍콩 등은 통장 만드는데 인터뷰만 일주일이 걸리는 것에 비해 아직도 우리나라 사정이 낫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민간연구소인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이기동 소장은 "통장을 만들어 계획적으로 범죄를 하는 이들에게 강력하게 처벌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금융거래를 하는 소비자만 계속 힘들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자단체에서는 금감원이 대포통장 실적을 놓고 은행들을 압박하니까 면피를 위해 과도하게 증빙서류를 요구하는 등 소비자들의 불편을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올들어 대대적으로 대포통장 근절 정책이 시행되면서 입출금통장을 개설하기 까다로워지고 예금 인출이 지연되는 등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며 "예방책도 중요하지만 피해 발생시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강 국장은 특히 입출금 통장 개설과 관련해 "한동안 앞다퉈 고객을 유치했던 은행들이 계좌개설 이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져야 하는 걸 소비자들에게 전가시키려는 행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도 "사기를 막겠다고 해서 전 국민을 상대로 필요 이상의 촘촘한 그물망을 친 것 같다"며 "금융당국과 은행들은 신규 입출금 통장을 개설하러 온 소비자들을 잠재적인 대포통장 소유자로 보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윤주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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