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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대표소송제' 상법 개정안에 재계 한숨...삼성·현대차·신세계 등 영향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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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대표소송제' 상법 개정안에 재계 한숨...삼성·현대차·신세계 등 영향권
  • 유성용 기자 sy@csnews.co.kr
  • 승인 2020.06.05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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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이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다중대표소송제 등의 도입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대해 재계에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지분을 1% 이상 일정부분 획득한 주주가 자회사 또는 손자회사 경영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외부 지분에 의해 회사 경영에 간섭을 받을 소지가 생긴다. 

재계는 외국 투기 자본의 주가조작에 시달릴 수 있고, 회계 및 장부열람권을 통한 자회사의 기밀도 유출될 가능성 등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지주사체제가 완성되지 않은 삼성과 현대자동차, 신세계그룹 등이 상법 개정안의 영향권에 놓여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는 바이오사업에 여러 계열사가 관련 돼 있다. 삼성물산(대표 이영호·고정석·정금호)이 모회사 위치에 있는 가운데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개발 업체 삼성바이오로직스(대표 김태한)는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43.44%, 31.49% 지분을 보유했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시밀러 개발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대표 고한승) 지분 50%를 보유했다.

특정 자본이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한 뒤 삼성 바이오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은 인공지능(AI)과 5G, 바이오, 반도체를 미래 사업으로 삼고 있다.

가뜩이나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문제로 검찰로부터 구속영장 발부 등 강도 높은 압박을 받고 있어 경영에 집중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백화점그룹 등 주력 계열사가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기업의 지분을 대거 보유한 경우에도 다중대표소송제는 부담될 수 있다.

현대자동차(대표 정의선·이원희·하언태)는 현대모비스(대표 정몽구·정의선·박정국)가 지분 21.4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현대모비스에서 주주 지위를 획득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정몽구 회장 일가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

현대차는 이미 2018년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로부터 지배구조 개편에 제동이 걸렸고 주주총회가 취소되는 등 경영 간섭을 받은 경험이 있다. 당시 엘리엇이 보유한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차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은 2~3%에 불과했다.

현대백화점은 현대그린푸드가 12.05%로 정지선 회장(17.09%)에 이은 2대 주주로 있다. 정교선 부회장이 현대그린푸드 최대주주로 형제경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 자본의 간섭은 부담스럽다.

다만 현대차와 현대백화점은 계열사가 지배회사 보유 지분율이 30% 미만이라 법안이 논의되면서 모회사의 자회사 보유 지분율 기준이 어느 선에서 정해지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신세계는 주요 상장 계열사로 분류되는 신세계인터내셔날(대표 장재영)이 해당된다. 신세계가 45.76% 지분을 보유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계열사를 나눠 관할하고 있는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으로선 자신만의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라 외부 개입이 달갑지 않다. 정유경 총괄사장은 신세계인터내셔널 지분 15.14%를 보유한 2대주주다.

지주사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그룹들은 다중대표소송제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지 않는다.

하지만 SK그룹처럼 최대주주의 이혼소송 등으로 향후 지배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엔 외부 자본의 개입에 대한 경계를 놓을 수 없다. SK는 이미 2003년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을 겪은 이력이 있다.

상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는 지난 2016년부터 이뤄져 왔으나 20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2일 국회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업지배구조개선 토론회’를 열고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 만큼 상법 개정안 등을 21대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전자투표제와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의 주요 입법과제 중 하나다.

기업 입장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부문은 다중대표소송제다.

이 법안은 당초 모회사 주주의 자회사 경영 견제를 돕는 장치로 대기업 그룹 오너 일가의 전횡을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이 검토됐다. 하지만 외부 자본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에 집중하지 못하고 금전적, 시간적 비용을 외부 견제에 대한 방어에 써야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어 달갑지 않다. 자연스레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 여력도 떨어지게 된다.

자회사에 대한 모회사의 보유 지분율 기준에 대해선 향후 의견 수립이 필요하다. 과거에 법안이 발의됐던 당시 30%, 50% 기준이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됐다.

미국과 일본은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논리는 명확하다. 소수주주 보호라는 애초의 취지가 무색하게 헤지펀드 등 외국계 투기자본에 이용돼 기업이 경영에 집중할 수 없게 되고 장기적 가치가 훼손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2017년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훼손하는 문제가 많은 만큼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개정안대로 입법될 경우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힘들고 해외투기자본에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위 그룹 한 관계자는 “청와대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하는데 국회의원은 기업 옥죄기에 혈안이 된 모습”이라며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앞장서고 일자리 창출에 힘쓰는 기업을 위한 법안 제정이야 말로 민생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회사는 특정 분야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설립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중대표소송제로 인해 외부 자본에 관여 받을 소지가 생긴다면 사업을 하지 말란 것과 다른 게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0대 그룹에 속한 재계 관계자는 “다중대표소송제가 감사위원 분리선임 등과 결합되면 국내 기업이 외국계 투기자본에 농락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하며 “헤지펀드가 지분을 보유하고 소송을 남발해 주가를 하락시켜 추가지분을 획득한 뒤 소송취하로 단기 차익을 실현하거나 장부열람권을 행사해 자회사의 기밀에도 접근할 위험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중견그룹 한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침체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악재의 연속으로 경영환경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내기도 버거운 상황인데 기업 옥죄기 법안 발의에 한숨이 나온다”며 “기업이 일을 하게끔 만들어 주는 법안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행이 지난 2일 외부 감사 대상 국내 비금융 영리법인 2만5874곳을 조사한 결과 34%가 이자낼 돈도 못 번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유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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