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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치권의 무분별한 '고통분담' 요구에 '정치금융'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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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치권의 무분별한 '고통분담' 요구에 '정치금융'이 우려된다
  • 김건우 기자 kimgw@csnews.co.kr
  • 승인 2021.01.25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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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에서 금융권에 대해 압박수위를 높이면서 관치금융보다 더한 정치금융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여당을 중심으로 시중 유동성과 개인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공매도 중단 연장 또는 제한적 허용을 요구하는가 하면, 은행에 이익공유를 명분으로 금리를 낮추거나 아예 이자를 받지 말라는 주장까지 등장하고 있다.

우선 공매도 문제의 경우 국회가 주도적으로 법안 개정안까지 통과시켜 놓고 입장을 뒤집은 자가당착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증시 변동성 확대가 우려되자 금융당국은 지난해 3월부터 한시적으로 공매도 제도를 중단시켰고 올해 3월부터 재개시킬 방침이었다.  

공매도 재개에 따른 시장 불안과 불공정 행위 방지를 위해 국회는 지난해 법안 개정 작업에 나섰고 12월 차입공매도 제한 법적근거 신설, 불법 공매도 형사처벌 등의 개선책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개인투자자 권익보호를 위해 공매도 중단을 연장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일고 있다. 코스피 3000시대 주역인 동학개미들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제공할 수 없다는 주장이 그 동안의 제도 정비를 무색케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익공유제' 도입을 주장하며 금융권에 이자를 포기하라는 급진적인 주장마저 정치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12월 주요 시중은행 임원들과 함께한 간담회 자리에서 "예대금리차 완화에 마음을 써달라"고 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은행이 이자를 받는 것을 중단시키거나 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지난 15일 비공식으로 열린 더불어민주당 불평등해소 TF 회의에서는 카드사들이 재난지원금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있으니 이익공유제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두 코로나19 정국에서 서민들의 고통을 은행권이 함께 부담하자는 취지였지만 '자발적 참여'보다는 은행들에게 사실상 강제로 참여하라는 맥락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정치권이 연일 공세를 펼치고 있는 반면, 금융권과 금융당국은 속앓이를 할 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금융권은 코로나19사태에 대한 고통분담 취지는 수긍하면서도 정치권이 사실상 강요에 가까운 압박을 가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거부감을 품고 있다. 이미 금융당국 차원의 코로나19 대책에 동참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다소 무리한 요구라는 반응이다.

은행권의 경우 현재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원금상환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 프로그램을 시행중인데 추가적인 조치는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까지 시중은행들의 순이익은 전년 대비 평균 5~10%, 지방은행은 최대 20% 이상 감소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신용평가사를 중심으로 금융권의 대출연장 조치가 결국 은행들의 건전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연일 경고등을 날리고 있다. 

게다가 금융지주 수익성 확대는 은행보다는 증권, 보험 등 비은행 계열사의 실적 호전에 따른 결과였기 때문에 은행 수익성 확대와는 연관이 없음에도 추가 희생 요구가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카드업권 역시 재난지원금 사용으로 카드 결제액은 늘었지만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제반비용과 시행 초기 급증했던 소비자 불만, 이에 따른 비용 발생을 감안하면 실제 재난지원금 도입으로 얻은 손익은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시장경제원리를 정치 논리가 압도하는 상황이지만 금융당국도 정치권에 밀려 오락가락 횡보를 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공매도 중단 연장 요구에 대해 원칙적으로 3월 재개를 못박았지만 최근에는 변동 가능성도 내비치면서 한 걸음 물러섰다. 은행 대출만기 추가연장에 대해서도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국내 금융사들의 건전성과 수익성을 볼 때 감내가 가능하다는 뜻을 밝혔다.

금융권은 공공성을 띠고 있는 업종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나선 경우가 많다. 청년층 실업률 상승이 이어지자 신입사원을 매년 수 천 명가량 채용했고 코로나19 정국에서도 뉴딜펀드, 증권·채권시장안정펀드 등에 앞장 섰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에 있어서도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금융권을 둘러싼 정치인들이 발언은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뛰어넘어 '정치가 금융을 좌지우지 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고통분담의 명분이 옳다고 해도, 정치권의 무분별한 숟가락 얹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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