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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기둥 뿌리 뽑고 자녀 망치는 '구체관절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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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기둥 뿌리 뽑고 자녀 망치는 '구체관절 인형'
  • 유태현 기자 yuthth@consumernews.co.kr
  • 승인 2007.03.06 0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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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기둥뿌리가 뽑히고 부모가 미쳐야 끝나는 인형놀음이에요.”

주부 이서영(여ㆍ40ㆍ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씨는 요즘 구체관절인형(球體關節人形) 때문에 속앓이가 심하다.

중학교 2학년인 딸이 구체관절인형에 ‘미쳐 ’ 시간과 돈을 모두 ‘탕진’하고 있기 때문. 이씨의 딸 성연이는 구체관절인형 2개를 갖고 있다.

성연이는 “아기 둘을 입양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성연이는 재작년 크리스마스때 삼촌이 무심결에 사준 구체관절인형에 홀딱 빠져들었다. 인터넷에서 가발 옷 신발 핸드백 등을 사 나르던 아이는 작년 여름 엄마를 졸라 60만원짜리 인형 하나를 더 입양했다. 요즘은 두 인형의 치닥거리로 집 기둥이 빠지는 기분이다.

인형값도 장난 아니게 비싸지만 그래도 그건 나중에 구비해야 하는 몸치장에 비하면 ‘새발의 피 ’다. 사람을 그대로 빼 닮은 인형은 속옷부터 겉옷 등 각종 액세서리는 물론 안구 손톱까지 모두 사서 바꿀 수 있다.

인형 몸치장비가 사람 것 뺨친다. 손바닥만한 티셔츠 하나가 2만~3만원, 코트나 재킷은 7만~10만원에 달한다. 고급 소재 파티복 등은 몇십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저렴한 디스카운트 매장에서 옷을 사입는 서영씨 자신의 옷값을 뺨치는 수준이다. 팬티 하나도 5000원~1만원. 구두나 운동화는 3만~4만원. 안구와 가발도 3만~4만원 등으로 끝이 없다.

옷도 캐주얼부터 정장까지 다양한 수준을 갖춰야 하고 옷 종류에 따라 액세서리도 모두 달라져야 한다. 성연이는 최근에도 지난 설, 친척들로부터 ‘수금’한 세뱃돈과 한달 용돈등을 모두 인형 몸치장에 발랐다. 더 큰 문제는 성연이가 인형 몸치장하는 데 빠져 들어 만사를 제치고 있다는 것.

관련 동호회 사이트에서 인형에 관한 채팅과 물건 구입으로 모든 시간을 보내고 때로는 인형 소품을 바겐세일하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 하루를 허비하기도 한다. 최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 매장에서 바겐세일한다는 소문을 듣고 새벽 5시에 일어나 3시간 지하철을 타고 가서 2시간 줄서서 대기하고 있다가 팬티와 구두 2점을 사왔다.

세일물건의 경우 1인당 2점으로 구매가 제한됐기 때문이다. 때로는 동호회 회원과 물물교환을 하기도 하는 데 성연이가 지하철 타고 의정부까지 갔다 왔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기둥뿌리 파고 부모 미치는 꼴 봐야 끝장을 보는 인형놀음이라는 생각만 들뿐이다.

구체관절인형이 요즘 초·중여학생 부모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구체관절 인형 입양이 여학생들의 새로운 또래 문화로 들불처럼 번지며 돈과 시간을 모두 블랙홀처럼 빨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관절인형은 주요 관절 부위에 공(球) 모양 관절을 넣어 사람과 가장 비슷한 포즈를 취할 수 있게 만든 인형. 소유자가 취향에 따라 화장, 몸치장은 물론 머리ㆍ다리ㆍ몸통ㆍ안구 등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독일의 초현실주의 조형미술가 한스 벨머가 처음 내놓은 이 인형은 1980년대 일본 인형작가들의 손을 거치면서 상품화됐다. 일본 보크스 사의 ‘돌피 시리즈’는 ‘바비 컬렉션’과 함께 키덜트(Ki-dult)문화의 대명사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성인층을 중심으로 5~6년 전부터 매니아 층이 형성됐는 데 최근 들어 10대 여자아이 사이에서 옷과 구두, 액세서리로 인형을 치장하며 ‘아이를 기르는’ 놀이문화로 변질된 것.

이 인형은 물건으로 취급받지 않고 ‘아이’라는 이름으로 인격화된다. 인형을 사는 것도 ‘입양한다’고 한다. 소유자의 허락 없이 인형을 만지는 것도 에티켓에 어긋난다.

구체관절인형과 몸치장이 이처럼 비싼 것에 대해 인형업체들은 거의 모두 수공으로 제작되고, 한 모델당 제작되는 개수도 극소수여서 비쌀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형판매점에서는 전용 메이크업아티스트, 의상전문가, 헤어디자이너 등을 따로 두고 있기도 하다. 옷과 액세서리 등이 비싼 것도 인형의 모양이 모두 달라 역시 대량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첨부 설명이다.

문제는 이 나이또래 여학생들이 과시욕이나 경쟁의식이 최고조인데다 무분별한 모방심리를 갖고 있어 한번 빠지면 제어하기 힘들다는 것.

역시 구체관절인형에 빠진 딸아이 때문에 고민하는 회사원 김문석(43ㆍ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씨는 “한 때의 유행이라고 치부하기엔 부모들의 출혈이 너무 심하고 공부나 삶의 여러 다양성을 경험해야 하는 아이들도 맹목적 인형놀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절망하고 있다”며 “우리사회의 또 하나의 심각한 마약이 아닌가 싶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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