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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옥의 '계영배'vs박문덕의 '진로 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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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옥의 '계영배'vs박문덕의 '진로 제이'
  • 조창용 기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09.06.23 0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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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은 경기도 광주시 실촌읍에서 도강요를 운영하는 조태환(52)씨가 3년여의 연구끝에 재현에 성공한 '계영배(戒盈杯)'를 들어보이고 있는 장면다.연합뉴스가 찍은 사진이다.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계영배는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지닌다.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30년간 조선 왕실도자기의 본고장인 광주에서 청자를 연구해 온 조 씨는 2006년 경남 함안박물관의 한 학예사가 보여준 도자책자에서 계영배를 처음 만났다.

 8시간씩 힘들게 도자기를 빚어 계영배 만들기를 수백 차례. 모양은 계영배와 비슷하게 나왔지만 물을 가득 채워도 흘러내리지 않는 등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진전을 보지 못하자 조씨는 2007년부터 2년간은 아예 계영배 연구를 접고 일반 청자만 만들었다.

하지만 계영배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조씨는 올해 4월 다시 연구에 들어간 끝에 최근 계영배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조씨는 "이전에는 도자기 표면에 금이 가는 기법을 썼는데 금이 없게 만들었더니 계영배가 성공적으로 만들어졌다"며 "예전에는 성공률이 10%도 안 됐다면 지금은 70-80% 가까이 성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 도자기 제조공정보다 갑절이상 시간이 걸리는데다 손도 많이 가고 아직 대량생산을 하지 않아 조씨에게는 현재 계영배 완제품이 30여 개 밖에 없다.


문헌에 따르면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이 잔은 절주배()로도 통했다.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공자()가 제()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스스로의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했던 '의기'를 보았다고 한다. 이 의기에는 밑에 구멍이 분명히 뚫려 있는데도 물이나 술을 어느 정도 부어도 전혀 새지 않다가 7할 이상 채우게 되면 밑구멍으로 새어나가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환공은 이를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이라 하여 '유좌지기'()라 불렀고, 공자도 이를 본받아 항상 곁에 두고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고 한다. 

현대의 '탄탈로스의 접시'라는 화학실험기구와 그 원리가 비슷하다. 한국에서는 실학자 하백원(1781∼1844)과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하백원은 전라남도 화순 지방에서 태어나 20세까지 학문을 배우고 23세부터 53세까지 30여 년간 실학 연구에 몸을 바친 과학자·성리학자·실학자였다. 그는 계영배를 비롯하여 양수기 역할을 하는 자승차, 펌프같이 물의 수압을 이용한 강흡기와 자명종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도공 우명옥은 조선시대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경기도 광주분원에서 스승에게 열심히 배우고 익혀 마침내 스승도 이루지 못한 설백자기()를 만들어 명성을 얻은 인물로 전해진다.


그 후 유명해진 우명옥은 방탕한 생활로 재물을 모두 탕진한 뒤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와 계영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 후 이 술잔을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 1779∼1855)이 소유하게 되었는 데, 그는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현재 소주 시장에서도 이 계영배의 원리와 거리가 먼 현상이 전개되고 있다. 오랫동안 25도를 유지했던 소주 알코올 도수가 현재 최저16.9도(대선주조 ‘봄봄’)까지 떨어졌다. 독주로 통했던 소주가 ‘맹탕 소주'가 돼 버렸다. 소줏잔의 70%만 채워 마시면 그야말로 감질나서 못 마실 지경이 됐다. 그래서  아예 물컵에 따라 마시는 주당들도 많다. 

 '맹탕 소주'의 대표 주자는 소주시장 1위 업체 (주)진로의 18.5도짜리 ‘진로 제이’다. 이 회사의 '참이슬'(20.1도),'참이슬 후레시'(19.5도)도 맹탕인 것은 거의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들 두 제품은 '진로 제이'에 견주면 나은 편이다.


문제는 알코올 섭취량이다. 만약 이 술을 계영배로 마시려면 그 크기를 맥줏잔만하게 만들어야 주당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란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소주에서 톡 쏘는 맛이 사라져 버리고 웬만큼 마셔도 취기가 돌지 않자 반병 마시던 사람이 한병, 한병 마시던 사람이 두병 마시는 현상이 거의 굳어졌다.당연히 술자리에서 털고 일어 날 때 알코올 섭취량은 종전 보다 훨씬 더 많아지게 된다.


진로는 주정을 더 적게 사용해 원가를 줄이고 판매도 확대해 재미를 볼지 모르지만 결국 소비자들은 바가지도 쓰고 건강도 해칠 가능성이 그만큼 높은 셈이다.   


진로의 오너인 박문덕회장과 윤종웅 대표이사는 조태환씨가 제조한 계영배를 하나씩 구입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스스로 경계를 삼으면 어떨까? 차라리 소주 도수를 25도로 올리고 가격도 인상한 뒤 소주병에 계영배를 인쇄해 넣으면 소비자들의 존경을 받지 않을까? 그리고 다리 70%노출한 미니스커틀 입은 '진로 제이' 모델 신민아가 계영배를 들고 제품 홍보를 하면 얼마나 돋보일까?  

소비자들은 이미 맹탕 소주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18.5도 ‘진로 제이’ 출시 이후 진로의 4월 판매량은 3월에 비해 3%가량 감소했다. 올해 1~4월 누적 판매량 또한 3천514만2천 상자로 3천728만7천 상자를 판매한 작년 동기 대비 10.2%나 감소했다. 반면 라이벌인 롯데주류는 437만1천 상자를 팔아 5.8% 증가했다. 롯데는 아직 '처음처럼'소주 도수를 1%도 낮추지 않고 있다. 


국내 소주 시장 역사상 전례가 드문 '마케팅의 실패'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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