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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뚫린 소비자규정⑳] 한국형 레몬법? '징벌적 보상' 쏙 빠진 무늬만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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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뚫린 소비자규정⑳] 한국형 레몬법? '징벌적 보상' 쏙 빠진 무늬만 정책
  • 박관훈 기자 open@csnews.co.kr
  • 승인 2018.08.02 0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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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분쟁들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 등 업종별로 마련된 소비자법을 근거로 중재가 진행된다. 하지만 정작 그 규정들은 강제성이 없을 뿐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빠른 시장 상황을 담지 못해 소비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은 올 하반기 동안 2018년 기획 캠페인 '구멍 뚫린 소비자보호규정을 파헤친다' 기획 시리즈를 통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의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개선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2억짜리 고급 세단 시동 꺼지고 기능 먹통 대전시 봉명동에 사는 김 모(남)씨는 지난 2016년 10월 메르세데스 벤츠 S400 모델을 구매했다. 차량 가격만 2억 원에 달하는 고급 모델이다. 김 씨는 지난해 8월부터 자신의 차량에서 주행 중 시동꺼짐 현상과 더불어 시동이 꺼진 후 모든 기능들이 정지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증상으로 서비스센터에 입고돼 정비를 받은 기간만 50일이 넘는다고  밝혔다. 김 씨는 “지금까지 시동이 꺼진 후 다시 걸리지 않고 차량의 모든 기능이 먹통이 돼 버리는 증상이 5번 이상 반복됐다”면서 “업체 측은 고장이 나면 고쳐주면 된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 고급 수입차 사자마자 미션 통째로 교체 판정 화성시에 사는 한 모(남)씨는 작년 12월 7000만 원 상당의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 모델을 구매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차량 앞부분에서 쇠가 갈리는 듯한 소음이 심하게 발생했다. 서비스센터에서 정밀 진단을 진행한 결과 변속기를 통째로 교체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 씨는 중대 결함이 발생한 차를 타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업체 측은 교환이나 환불을 거부했다. 한 씨는 “변속기 교체는 비용만 1800만 원이 들어가는 큰 수리”라며 “신차를 사자마자 차량 가격의 30%에 해당하는 결함이 발생했는데 업체 측은 환불이나 교환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라며 억울해 했다.

# 새 차 사자마자 시동 안 걸려 서비스센터 5번 입고 인천시 만수동에 사는 박 모(남)씨는 올해 1월 현대차 그랜져IG LPi 3.0 모델을 구매했다. 구입 직후부터 시동이 잘 걸리지 않고 지연되는 증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박 씨는 “시동 시 RPM이 불안정해 협력점과 직영사업소 등 서비스센터에 5번이나 차량을 입고했지만 증상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부품만 교환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 씨는 스로틀바디, 연료펌프 드라이버, 인젝터 6개를 교환했지만 차량 출고 후 10분도 못 돼 같은 증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4000만 원가량 주고 산 새차를 다 뜯어 고쳐서 타야 하느냐”며 “정신적 스트레스와 시간적 낭비 등 손해가 심해 차량 교체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 출고 일주일 만에 엔진경고등, 오일 누유까지 올해 2월 쌍용차 투리스모 샤또 리무진 모델을 구매한 공주시 정안면에 사는 박 모(여)씨. 신차 운행 일주일째부터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들어오는 현상이 반복돼 서비스센터에 3번이나 차량을 입고시켰다. 하지만 매번 원인이 달랐다. 박 씨는 “에어컨을 틀면 미지근한 바람이 나오고 엔진오일 누유 증상도 있다”면서 “신차에 계속되는 결함이 있음에도 대리점에선 교환이나 환불은 불가능하다는 답변 뿐”이라며 답답해 했다.

새로 구입한 차량에서 심각한 결함이 발생해도 차량을 교환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최근 소비자고발센터(www.goso.co.kr)에는 엔진이나 미션 등 중대 결함이 발생해도 해당 부품만을 교체해주고, 차량 교체는 해주지 않는다는 민원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6년 10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자동차 중대 결함이 3회 이상(기존 4회) 발생하면 교환‧환급이 가능하도록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강화했다. 여기에 내년부터는 소비자가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에 교환·환불 중재를 신청해 교환‧환불 중재판정이 나면 반드시 교환‧환불을 하도록 자동차관리법도 개정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개정된 자동차관리법상 교환환불제도는 개인사업자(개인택시, 개인용달 등)를 포함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이 제외하고 있는 생계형 사업자까지 보호범위를 넓히고 있다”며 “기존 조정제도는 조정결과가 소비자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와도 자동차제작사가 그 결과에 합의하지 않는 이상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중재제도가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교환, 환불 사례를 찾아보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강제력이 없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 등 관련 규정의 허술함을 지적하며, 있으나마나 한 정책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자동차전문가들은 국내 규정의 근본적 맹점인 징벌적 보상이 뒤따르지 않으면 이같은 개선안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천문학적 벌금을 물리는 미국 등 해외와 달리 국내법은 징벌적 보상이 아니라 실효성이 부족하고, 결함 여부에 대한 입증도 제조사가 아닌 소비자가 밝혀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자동차 제조사에서 결함이 있는 차량을 교환, 환불해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강제성 없이 자발적인 교환, 환불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순진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중재제도가 도입돼도 징벌적 보상이 없는 상태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미국의 레몬법처럼 관련 규정을 강화해 결함 발생 시 기업의 제품 교환‧환불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 또한 국내 자동차 관련 규정이 강력한 미국의 레몬법처럼 개편되지 않는 한 더 이상 기업에게 솔선수범 사례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한 예로 과거 미국에서는 토요타 차량에 급발진 의심현상이 일어났을 때 자체 조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늑장 대응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1200억 원의 벌금을 물린 사례도 있다”면서 “이처럼 국내 관련 규정도 미국처럼 강력하게 개편되지 않는 이상 기업에게 자발적인 책임을 묻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박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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