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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전에 관대하고 효성에 엄격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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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전에 관대하고 효성에 엄격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두 얼굴
  • 김국헌 기자 khk@csnews.co.kr
  • 승인 2020.03.24 0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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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경영투명성 제고를 명분으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지침) 도입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국민연금의 최근 행보가 눈길을 끈다. '투명성'을 외치는 국민연금의 행보 자체가 과연 투명한 지 고개가 갸웃거려지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의결하고 지난 달에는 56개 상장사에 대해 주식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해당 기업에 대해서는 주총안건에 대한 의결권행사 외에도 배당·지배구조 개선 등을 적극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이후 국민연금은 적극적으로 주주권 행사에 나서 여러 기업의 사내외 이사 선임안과 이사보수 한도액 승인 등에 반대표를 던졌다.

특히 재벌그룹 오너인 효성 조현준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건에 반대했다. ▲기업가치 훼손 이력 ▲기업가치 훼손 감시 의무 소홀 ▲과도한 겸임 등이 반대 사유다. 국민연금은 효성 주식을 10% 보유하고 있다.

효성 주총 결과 조현준 회장은 70% 이상의 찬성률로 사내이사에 재선임됐다. 조 회장의 우호지분이 50%가 넘지만 나머지 일반 주주들도 대부분 조 회장에 찬성표를 던졌다.

효성그룹은 조 회장 취임 3년 만인 지난해 영업이익 1조 원을 다시 돌파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미중 무역전쟁, 일본 수출규제, 글로벌 경기 침체 등 대외 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만들어낸 성과이기에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다. 또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통해 주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일반 주주들과 달리 국민연금은 조현준 회장이 횡령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기업가치를 훼손했다고 판단했지만, 대부분의 주주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은 것이다.

조현준 회장은 현재 200억 원대의 업무상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지난해 9월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판결 확정 전까지 집행을 면한 상태다. 법원의 최종 판단이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황임에도 국민연금은 '재판이 2심이냐, 3심이냐는 관심사항도 아니고 고려할 사항도 아니며 어떤 단계든 불법 우려가 있을 때 주주로서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효성에는 '도덕성'을 이유로 깐깐한 잣대를 들이댄 국민연금이지만, 최근 천문학적인 적자를 내며 위기에 빠져 있는 한국전력에 대해서는 사뭇 다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전은 정부의 탈(脫)원전정책에 직격탄을 맞으며 지난해 영업손실 규모가 1조3566억 원에 달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은 한국전력(19위)에 대해서는 투자목적을 단순투자로 유지하며 별 다른 문제를 삼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의 목적이 안정적인 투자를 통해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익을 최대화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한전에 대한 방임은 납득키 어려운 사안이다.

국민연금은 한전 지분 7.2%를 보유한 3대 주주다. 국민연금도 한전 주가급락으로 7000억 원 이상의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은 한전 경영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한전은 손해를 입으면서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고분고분 따르고 있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한전 공대 설립도 추진 중이다. 이밖에 정부의 선심성 가전제품 할인 행사와 각종 체육행사에 동원되고 있다.

이쯤되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가 '수익 극대화'가 아니라, '정부 정책에 얼마나 부응하는 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결과만 놓고 보면, 경영을 잘해서 주주들이 지지를 보내는 효성 경영진에는 반대표를 불사하고, 조 단위 적자를 내며 국민연금을 갉아 먹는 부실 덩어리 한전에게는 감시 기능을 포기한 게 현재 국민연금의 민낯이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해 재벌개혁을 통한 공정경제 실현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효성과 한전에 대한 국민연금의 행동을 보면 정말로 공정한 결정이 이뤄지고 있는 지 의문스럽다. 일반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할 국민연금이 정부의 재벌개혁의 도구로 악용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국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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