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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경영권 승계 않겠다는 이재용 부회장, 선택 가능한 지배구조 대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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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경영권 승계 않겠다는 이재용 부회장, 선택 가능한 지배구조 대안은?
  • 유성용 기자 sy@csnews.co.kr
  • 승인 2020.05.08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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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 향후 삼성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정립될 지에 관심이 쏠린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전제로 할 경우 국내에서는 유한양행이나 네이버의 사례를 따를 가능성도 있고, 해외 사례로 스웨덴 발렌베리그룹 모델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각각의 장단점이 있어 선택이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향후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구축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고, 상속세 마련과 금융사를 포함한 지주사 체제 전환 등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 따라 일단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는 원칙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일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 지탄을 받을 일을 하지 않고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포기한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창업 3세인 이 부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삼성이 처한 상황에서 4세로의 경영권 승계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삼성은 현재 삼성물산(대표 이영호·고정석·정금용)이 지주회사 역할을 하며 삼성전자(대표 김기남·김현석·고동진), 삼성생명(대표 전영묵), 삼성SDS(대표 홍원표)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한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4.18%), 이재용 부회장(0.7%), 삼성생명(8.51%) 등이 특수관계자를 형성하고 21.21%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대표 이동훈), 삼성중공업(대표 남준우), 삼성SDI(대표 전영현), 삼성전기(대표 경계현) 등은 삼성전자의 지배를 받는다. 삼성화재(대표 최영무), 삼성카드(대표 김대환), 삼성증권(대표 장석훈) 등 금융사와 호텔신라(대표 이부진)는 삼성생명이 중간 지주사 겪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간 재계에서는 승계를 위한 삼성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를 ▲삼성전자 인적분할 후 삼성물산과 합병 ▲삼성물산 물산사업 인적분할,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지주부문 분할 후 합병 ▲삼성생명 보험사업 인적분할, 금융지주 부문과 삼성전자 일반지주 부문 합병 등으로 점쳐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주사 구축의 핵심인 삼성전자 인적분할은 특별결의사항으로 주주의결권의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20%를 갓 넘는 수준에 그친다. ‘삼성생명→삼성전자’의 고리를 끊는 것도 20조 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삼성의 지주사 전환 검토는 이미 2017년 중단됐다.

삼성물산이 지배구조 개편에 활용되는 것도 삼성바이오로직스(대표 김태한) 분식회계 의혹이 번진 상황이라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부담거리다.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43.44%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삼성전자도 31.49% 지분을 지녔다.

이 부회장은 향후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질 경우 편법과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 부담을 갖고 있다. 대국민사과에서도 이 부회장은 “그동안 저와 삼성은 삼성에버랜드, 삼성SDS 등 승계 문제와 관련해 비난을 받았다”고 말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외국인 지분이 50% 이상이고, 지분이 많지 않은 이 부회장은 현재 이미 소유보다는 오너로서 미래 먹거리 창출 등 성장 청사진을 그리는 큰 역할의 경영을 한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저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지 경영권을 넘길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 이후 부회장직을 수행하며 신사업 발굴과 대규모 투자 결정, 미래 먹거리 육성 등 총수 역할에 집중하며 위기 극복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와 만나 정부의 지원에 감사의 뜻을 전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와 만나 정부의 지원에 감사의 뜻을 전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계 관계자는 “최대 65%에 이르는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데 승계 과정에서 사실상 소유에 대한 개념은 사라지게 되는 상황”이라며 “삼성생명에서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근간을 바꾸기 위해선 20조 원 이상이 필요한데 사실상 조달 불가능한 금액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은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면서 지배구조를 이미 개선한 상황”이라며 “일본 수출규제, 미국 반덤핑 규제, 코로나19, 정치권 시민단체 등의 견제 등 기업 입장에서 컨트롤하기 힘든 불확실성이 커 승계를 고려할 여유는 현재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 하면서 모든 업권의 기업들이 경쟁상대로 떠오르는 것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 부회장이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은 승계보다 기업의 생존을 우선순위에 둔 셈이다.

지난 6일 이 부회장은 “위기는 항상 옆에 있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며 “삼성전자는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고, 이것이 제가 갖고 있는 절박한 위기의식”이라고 밝혔다.

◆삼성 지배구조 새로운 시나리오는?

이 부회장의 승계 포기 발언으로 재계에서는 향후 삼성 오너일가의 지배에 대한 새로운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 등이 롤모델로 삼은 것으로 알려진 스웨덴 발렌베리그룹의 승계방식, 제약업계 1위 기업인 유한양행(대표 이정희)의 공익법인을 통한 소유, 네이버(대표 한성숙)가 구축하고 있는 전문경영인 중심의 경영 체제 등이 거론된다.

1856년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창업한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으로 시작한 발렌베리 그룹은 현재 스웨덴 국내 총생산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기업으로 5대째 오너 일가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구조로 그룹 지배력을 이어가고 있다.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ABB, 스카니아, 아스트라제네카 등 약 100개 자회사의 경영은 전문경영인(CEO)에 일임하고 오너 일가는 지주회사 인베스터를 통해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이재용 부회장도 삼성전자 등 계열사 경영은 CEO에 맡기고 인재영입 관리, 투자 등에 집중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유한양행은 창업주인 고 유일한 박사가 사후 전 재산을 장학재단인 유한재단에 기증하며 자녀 세대에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았다. 현재 유한양행의 최대주주는 15.56% 지분을 보유한 유한재단이다. 오너 일가는 유한양행과 재단 경영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고 있다.

네이버는 창업주인 이해진 GIO가 글로벌 전략을 추구하고 이사회 의장에 전문경영인을 선임해 독립·투명성을 강화한 경영 구조를 갖고 있다. 한성숙 대표는 이사회 의장과 함께 국내 사업의 내실을 다진다.

하지만 삼성이 처한 상황에서 발렌베리는 현실적인 모범사례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재계 관계자는 “발렌베리는 스웨덴 정부의 정책지원 등 도움을 받고 성장했고, 지주사 체제를 갖추고 있다”며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 다수인 한국 경영환경과 맞지 않고 무엇보다 삼성은 지주사 구축 자체가 여의치 않다”고 설명했다.

오너 일가의 지분을 공익재단으로 출자하는 것도 지배력 유지를 위한 지분 활용이란 논란의 소지는 여전히 남는다.

삼성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했던 사업을 물려받은 입장에서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 어깨의 짐을 무겁게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1968년생인 이 부회장(53)은 슬하에 1남(20) 1녀(16)를 두고 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유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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