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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과 소비자보호④] 가상화폐 '깜깜이 공시'로 투자자 피해 키워...중요 정보 빠져도 규제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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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과 소비자보호④] 가상화폐 '깜깜이 공시'로 투자자 피해 키워...중요 정보 빠져도 규제 못해
  • 김건우 기자 kimgw@csnews.co.kr
  • 승인 2022.06.24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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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열풍으로 관련 기업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반면, 일확천금의 단꿈에 젖어 코인에 손을 댔다가 큰 손해를 보는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그럼에도 가상자산과 관련해 제도와 규정이 정비되지 않아 피해 예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피해가 발생해도 구제 받을 방법도 막막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가상자산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어떻게 피해를 당하고 있으며, 그 원인과 해법은 무엇인지를 심층 분석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가상화폐 발행자 A씨와 일행은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자신들이 개발한 가상화폐에 투자하면 원금을 보장하고 최대 5배 이익을 낼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모집해 투자금 명목으로 2억6000만 원 상당의 이더리움을 받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국내 유명 대학교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IT기업에서 근무했다는 허위 이력을 가상화폐 공시 플랫폼에 올려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A씨 일행이 개발했다는 토큰은 가상화폐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실제로 국내 거래소 상장 계획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들은 최근 불법 유사수신 혐의로 최근 경찰에 체포되었다.

A씨 일당에 대해 투자자들이 유사수신 등 범죄 행위를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이들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가상화폐 공시 플랫폼에 올라온 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상화폐 투자자들 중에 '부실 공시'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실한 공시 체계로 인해 투자자들이 사실상 '깜깜이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올라오는 공시조차 부정확한 경우가 많은데도 이를 미리 걸러내고, 처벌할 제도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거래소마다 최대 수 백여종의 가상화폐가 상장돼 있지만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바람에 일부 가상화폐는 공시 하나로 시가총액이 급등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를 악용해 편법으로 이익을 취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라도 관련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평가다. 

◆ '백서'는 대부분 영문판... 거래소마다 다른 '투자유의종목'

특정 가상화폐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은 '백서'를 확인하는 것이다. 백서는 해당 가상화폐의 발행 목적, 규모, 운용 계획 등이 적혀 있는 기본 정보다. 

백서가 있어야만 가상화폐 발행 및 상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가상화폐는 일단 투자자들에게 백서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백서에 대한 기준도, 허위정보 공시에 대한 처벌 규정도 마련되지 않아 내용이 부실한 백서가 판을 치고 있다. 더구나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거나, 국내 거래소인데도 백서를 영문으로 발행해 투자자들이 이해를 할 수 없게 만든 경우가 부지기수다. 
 

▲ 시가총액이 가장 많은 비트코인 백서 첫 페이지 중 일부. 백서가 모두 영문으로 작성되어있다.
▲ 시가총액이 가장 많은 비트코인 백서 첫 페이지 중 일부. 백서가 모두 영문으로 작성되어있다.

우선 가상화폐 백서의 상당수는 영문으로 작성되어있어 국내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 가상화폐 중 시가 총액이 가장 높은 비트코인 역시 백서가 영문으로만 작성돼 주요 거래소에 공시되고 있다. 

가상화폐마다 생산 및 수익실현 구조가 달라 자신이 투자하는 가상화폐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백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지만 사실상 깜깜이 공시나 다름없는 셈이다.  

가독성 뿐만 아니라 백서가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가상자산업권법 기본방향 및 쟁점' 에 따르면 가상화폐 발행 및 상장시 백서 발행이 법제화하고 ▲주요 참가자 소개 ▲프로젝트 상세기술 ▲가상화폐 유형 ▲기반기술 등 투자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의무 사항이 백서에 적시되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상장된 가상화폐 백서 중 상당수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백서에 꼭 필요한 정보가 의무 규정으로 되어있지 않다보니 투자자들에게 백서를 통해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백서 뿐만 아니라 투자 위험도를 알리는 안전장치도 촘촘하지 못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각 거래소들은 투자위험이 높은 종목에 발령하는 '투자유의종목'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주식시장으로 치면 한국거래소가 단기간 주가가 급등락하거나 재무적으로 심각한 문제 발생시 종목에 주로 발령하는 '시장경보제도'와 유사하다.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자체 기준에 따라 투자유의종목을 지정하고 있다. 가령 ▲프로젝트에 중대한 변경사항이 발생하거나 ▲유동성이 낮아 시세조종 우려가 있거나 ▲기술지원이 늦는 경우 등 각 거래소마다 선정한 기준에 의해 발령된다.

그러나 거래소마다 발령기준이 다르다보니 복수 거래소에 상장된 가상화폐의 경우 투자유의종목 지정 여부도 거래소마다 다를 가능성이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더욱이 거래소들은 투자유의종목 지정 조건도 세부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거래소 또는 발행자가 제공하는 정보가 부실하다보니 투자자들이 획득할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인 셈이고 이는 나중에 금전적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소비자보호연구센터장은 "현재 가상자산 백서들은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측면이 있지만 발행인 지분, 향후 가상자산 배분계획, 해당 가상화폐의 취약성 등 투자정보로서의 기능을 하기 위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일부 거래소 한글 지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만족... 공시제도 개선 움직임은?

가상화폐와 가장 유사한 거래 구조를 보이는 주식시장의 경우 거래소 역할을 하는 증권사들이 자체 리서치센터에서 주요 상장종목 및 업권별 리포트가 주기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특히 금융당국 차원에서도 분기 보고서나 투자자별 유의사항 등 회사 경영 및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가 의무 공시 형태로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투자자들에게 공평하게 제공된다.

업권에서는 가상화폐 공시제도의 부실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정 거래소 중심의 거래 구조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 등 시장을 통할하는 컨트롤타워가 존재하지 않아 공시의 책임을 모두 거래소가 떠 앉고 있는 점도 부실 공시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상화폐 투자자 정보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일부 거래소에서는 백서를 한글로 번역하고 요약해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 원화마켓 거래서 코인원은 지난 3월 가상자산 명세서 서비스를 업데이트해 백서를 한글로 요약 제공하는 서비스 등을 추가했다.
▲ 원화마켓 거래서 코인원은 지난 3월 가상자산 명세서 서비스를 업데이트해 백서를 한글로 요약 제공하는 서비스 등을 추가했다.

5대 원화마켓 중 하나인 코인원은 백서 원문을 한글로 번역 후 요약해 홈페이지에 공시하거나 투자자 판단에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정리한 '가상자산 명세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처럼 상장된 가상화폐를 분석해 리서치 보고서를 발간하는 곳도 최근 등장하기 시작했다. 5대 원화마켓 중에서는 빗썸과 코빗이 정기적으로 가상자산 리포트를 발간 중이다.

공시에 대한 문제는 금융당국과 정치권에서도 상당수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상화폐의 위험도를 비롯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공신력이 있는 특정 기관이 평가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김갑래 센터장은 "현재 공시제도가 법제화가 안된 상황에서 거래소들이 협의체를 중심으로 다트와 같은 통합 공시사이트를 만들어 최소한의 중요 투자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라며 "반드시 금융당국이 아니더라도 투자자 편익을 위해 통합 공시시스템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재 준비 중인 '가상자산기본법'에도 부실한 공시제도 개선에 대한 내용이 상당수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안은 거래소가 공시주체가 되어 ▲거래방법 ▲수수료 등 거래비용 ▲손실 위험성 등을 투자자들에게 의무 공시해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당국 역시 가상자산기본법 시행 전 건전한 가상자산 투자환경 조성을 위해 가상자산에 대한 백서 및 평가보고서 등을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제공하고 거래서 내 백서 정보 접근성 강화 등 개선안을 올해 10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 해외에서는 '공시 규제' 강화 잰걸음...EU 백서 공개 전 금융당국 제출 의무화 추진

우리나라보다 가상화폐 관련 규제체계가 앞선 해외 주요국들은 투자자들에게 가상화폐 정보가 명확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공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가상자산규제법안(MiCA)에 따르면 가상화폐 백서에 ▲발행인에 대한 설명 ▲가상화폐에 부여된 권리 및 의무 뿐만 아니라 ▲기술방식 ▲의무삽입 문구 명확화 등을 명시해 투자자들의 가상화폐 가치평가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가상화폐 발행인에게는 공개 20일 전에 백서를 금융당국에 제출해야하고 공모 전 웹사이트를 통해 공시해야한다. 

공시 위반에 대한 처벌도 무거운 편이다. 가상화폐 발행인 또는 경영진이 백서에 부정확한 정보를 적시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 해당 가상화폐 보유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한다. 다만 입증책임이 가상화폐 보유자에게 있다는 점은 변수다. 

국내 시장에서도 가상자산법안 제정시 거래소나 발행인의 귀책 사유 발생시 처벌 조항을 통해 공시 제도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미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지난 13일 열린 당정간담회에서 "가상자산거래업자의 플랫폼에서 국문 백서 및 상장 심사결과를 공개해 합리적 투자판단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면서 "가상자산 발행인이 수시공시를 불이행하거나 불성실 이행하는 경우 가상자산에 대한 주기적 평가 및 거래종료 심사시 반영하는 방법 등을 통해 수시공시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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