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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과 소비자보호⑤] 거래소 '서버 오류'도 책임 안 져...불공정 약관 내세워 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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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과 소비자보호⑤] 거래소 '서버 오류'도 책임 안 져...불공정 약관 내세워 면피
  • 문지혜 기자 jhmoon@csnews.co.kr
  • 승인 2022.07.07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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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열풍으로 관련 기업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반면, 일확천금의 단꿈에 젖어 코인에 손을 댔다가 큰 손해를 보는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그럼에도 가상자산과 관련해 제도와 규정이 정비되지 않아 피해 예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피해가 발생해도 구제 받을 방법도 막막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가상자산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어떻게 피해를 당하고 있으며, 그 원인과 해법은 무엇인지를 심층 분석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지난 6월13일 A씨는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판매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시세가 소폭 올랐을 때 그냥 처분해버리고 싶어 매도 버튼을 눌렀지만 1시간 가량 ‘실패 메시지’가 뜬 것이었다.

지속적으로 시도한 결과 매도가 됐지만 예상했던 가격보다 250만 원 가량 더 떨어진 시점에 판매됐다. A씨는 본인의 인터넷 환경은 문제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거래소의 시스템 문제라고 확신했다.

A씨는 “상담원에게 항의하니 매도를 시도한 기록 자체가 없다며 보상도 없다고 못을 박더라”라며 “실제로 찾아보니 약관에 서버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거래소가 고의로 하거나 과실이 없으면 책임이 없다고 하는데, 시스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과실이 있는게 아닌지 되묻고 싶다”고 털어놨다.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해 암호화폐를 거래하다가 서버 오류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구제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 증권사들이 서버 오류에 책임을 지고 피해보상에 나서고 있는 것과 달리,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약관을 앞세워 ‘서버 불량’이나 ‘코인 검증’ 등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의 몫이다.

이미 2차례에 걸쳐 공정거래위원회의 약관 심사를 받았지만 현재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소비자보호를 위한 관련 법이 전무한 상태라 ‘온라인몰’과 유사한 수준으로 느슨하게 관리되고 있을 따름이다.

◆ 약관에 ‘서버 장애’ 책임 없음 조항...증권사는?

현재 원화마켓을 운영하는 5대 가상자산 거래소의 약관을 살펴보면 ‘소비자에게 불합리한 조항’이 버젓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가상자산 거래소는 이용자가 갑자기 몰려 서버 문제가 생기더라도 책임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서버 지연으로 인한 보상 규정’에 대해 명시하고 있는 곳 역시 단 한 곳도 없다.

먼저 업비트는 제20조 ‘책임 제한’을 통해 ‘순간적인 홈페이지 접속 증가, 일부 종목의 주문 폭주 등으로 발생한 서버 장애’로 투자자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회사가 관리자의 주의를 다했음을 입증하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업비트 이용약관.
▲업비트 이용약관.
▲빗썸 이용약관.
▲빗썸 이용약관.
빗썸 역시 약관 제19조 ‘회사의 면책사항 및 손해배상’에서 천재지변, 디도스 공격, IDC장애, 기간통신사업자의 회선 장애와 더불어 ‘접속 폭등으로 인한 서버 다운’을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코인원은 면책사유를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주문량 폭주로 전산장애가 발생할 경우 긴급점검을 진행해 회원의 손해를 예방하고 있다’고 공지하고 있다.

코빗 역시 22조 ‘책임제한’에 ‘전산장애 또는 순간적인 홈페이지 접속 증가, 일부 종목의 주문 폭주 등으로 인한 서버의 장애가 발생한 경우 책임을지지 않는다’고 표시했다.

고팍스는 제16조 ‘서비스의 유지 및 중지’를 통해 ‘국가비상사태, 정전, 서비스 설비의 장애 또는 서비스 이용의 폭주 등으로 정상적인 서비스 이용에 지장이 있는 때 서비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한하거나 정지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이로 인해 가상자산 거래소 서버 오류로 소비자가 피해를 보더라도 보상은 전무한 상태다. 보상 규정 역시 따로 없어 강력하게 항의하는 경우 수수료 쿠폰을 지급하는 식의 땜빵 처리가 이뤄지고 있다.

증권사들이 전산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문제가 생기면 금융당국에 보고하고, 피해보상책을 내놓는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다.

전자금융감독규정 제73조 ‘정보기술부문 및 전자금융 사고보고’에 따라 증권사들은 10분 이상 전산업무가 중단되거나 지연되면 금융감독원에 바로 보고해야 한다.

장애 발생 시 일시, 내용, 조치사항 등을 상세히 작성해 보관해야 하고 서버 장애뿐 아니라 재해·파업·테러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업무가 중단되지 않도록 비상대책도 세워야 한다. 전산장애가 3시간 이상 발생하거나, 투자자 피해액이 50억 원이 넘어가면 중징계를 받게 된다.

◆ 자율에 맡겼더니 책임 회피만...투자자 보호책 필요해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이미 2차례에 걸쳐 불공정 약관에 대한 시정조치를 받았다. 지난해 7월 공정위는 5대 원화마켓 거래소를 포함해 8개 가상자산 거래소의 이용약관을 심사해 15개 유형의 불공정 약관에 대해 시정권고를 했다.

공정위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 따라 ISMS(정보보호관리체계)를 획득한 16개 사업자를 대상으로 약관을 살펴봤다. 그 중 거래소 규모에 따라 현장조사를 진행한 8개 거래소의 결과를 발표했다.
 

현장조사를 받은 8개 거래소는 최소 2개에서 최대 9개 유형의 불공정 약관이 적발됐다.

먼저 8개 거래소 모두 ‘약관이 개정될 경우 소비자가 명시적 의사 표시가 없으면 동의한 것으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내용이면 7일, 소비자에게 불리한 내용이면 30일 전에 공지한다고 했지만 공정위가 전자금융거래기본약관에 비춰봤을 때 부당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약관이라도 7일 전 공지는 짧고, 소비자에게 불리한 내용이라면 30일 전 공지가 아니라 고객이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개별적으로 통지해야 한다.

또한 8개 거래소 모두 ‘회원이 변경사항을 회사에 알리지 않아 발생한 불이익에 대하여 회사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공지한 부분이 불공정 약관으로 적발됐다. 거래소는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소비자가 자신의 변경사항을 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모든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업비트, 코빗, 코인원, 후오비 4곳은 ‘약관 외에 별도의 운영정책을 둘 수 있고, 약관에서 정하지 않은 사항은 운영정책에 따른다’고 규정했다. 공정위는 ‘별도의 운영정책’을 소비자가 예측하기 어렵고 거래소에서 자의적으로 운영정책을 운용할 위험이 존재한다고 봤다.

빗썸을 제외한 7개 거래소는 ▲이용계약 중지 및 해지 조항을 부정확하게 안내해 적발됐으며, 6개사가 ▲서비스 이용 제한 조항을 소비자가 예측 가능하도록 안내하지 않았다.

이외에 ▲서비스 변경·교체·종료 및 포인트 취소·제한 조항(3개사), ▲부당한 환불 및 반환 조항(2개사), ▲스테이킹 및 노드 서비스 조항(2개사), ▲영구적인 라이선스 제공 조항(2개사), ▲손해배상 지급방식 임의 결정 조항(1개사) 등이 적발됐다.

또한 ▲입출금 제한 조항(1개사), ▲부당한 관할법원 조항(1개사), ▲회원의 가상자산 임의 보관 조항(1개사), ▲입출금수량 임의 변경 및 매매취소 불가 조항(1개사), ▲회원정보 이용 조항(1개사) 등 총 15개 항목이 포함됐다.

공정위는 “불공정약관 시정권고는 사업자들로 하여금 고도의 주의의무를 다하도록 권고함과 동시에, 가상자산거래소 이용자들의 피해 예방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의의를 밝혔다.

이후 테라·루나 사태가 터지자 공정위는 올해 5월 당정 간담회에서 거래소 ‘불공정 약관 시정 여부’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테라·루나 사태로 인해 소비자 원성이 들끓자 ‘이용자 보호’를 위해 재정비를 요청한 것이었다.

이미 공정위는 2018년에도 거래소들의 이용약관에 대해 시정권고를 내렸다. 당시 거래소들이 ‘면책 조항’을 광범위하게 설정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거래 위험을 투자자에게 전가해 문제가 됐다.

당시 조사 대상인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코인네스트 등 12곳은 발행 관리 시스템 불량, 디도스 공격, 컴퓨터 해킹 등이 발생해도 거래소에 책임이 없다고 명시하는 등 12개 유형에 대해 지적을 받았다.
 

◆ 공정위 ‘불공정약관’ 시정권고에도 구멍 숭숭

하지만 공정위의 불공정 약관 조사도 완전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특금법을 통해 가상자산 정의가 됐지만 자금세탁 방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아직까지 거래소의 역할이나 약관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가상자산 거래소 불공정약관 심사의 한계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현재 가상자산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아 공정위의 시정권고에 일부 한계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공정위가 가상자산 거래소의 약관을 ‘전자금융거래기본약관’에 따라 심사를 했지만 가상자산 성격에 따라 적용 약관 가이드라인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법 적용이 가능하다면 ‘금융투자업분야 약관심사 가이드라인’이 기준이 될 수 있다. 또한 현재 가상자산 거래소는 국세청에 ‘전자상거래업’ 또는 ‘통신판매업’으로 등록돼 있어 ‘전자상거래 표준약관’으로 봐야 할 수도 있는 것.

이수환 입법조사관은 “가상자산 성격이 명확해 진다면 이에 부합하는 약관 심사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나아가 가상자산 특성을 반영한 별도의 표준약관을 마련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는 가상자산에 대한 성격이 불명확하고 제도가 미흡해 약관 심사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위는 가상자산 시장질서의 확립과 투자자의 권리보호를 위해 가상자산의 성격을 명확하게 정립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문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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