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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탈가전의 그림자②] ‘렌탈 권하는 사회’...자가관리형 찾기 어렵고 요금 책정기준 아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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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탈가전의 그림자②] ‘렌탈 권하는 사회’...자가관리형 찾기 어렵고 요금 책정기준 아리송
렌탈 VS 구매 가격차 천차만별...'현금지원' 마케팅도 성행
  • 송혜림 기자 shl@csnews.co.kr
  • 승인 2024.02.2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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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시장의 지형도가 구매에서 렌탈로 바뀌고 있다. 구독경제라는 새로운 개념이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면서 렌탈시장 규모는 2025년 100조 원을 넘보고 있다. 이 같은 트렌드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초기 비용부담을 줄이고 지속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기업은 안정적인 고객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반면, 폭발적인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후관리 문제와 고객 접점의 최일선에 서있는 방문관리 직원의 고용형태, 수수료체계 등의 구조적 한계에서 발생하는 불완전판매 등의 난제도 상존한다. 쓰면 편리하지만, 골칫거리도 잔뜩 안겨주는 '렌탈가전'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그 해결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박 모(남)씨는 A업체 정수기를 일시불 구매해 사용하던 중 필터 교체 시기가 다가왔다. 업체 홈페이지에서 필터를 찾아보니 3~4개월 교체 필터는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으나 박 씨가 차던 6~12개월 교체 필터는 10만 원이 넘어가는 제품도 있었다. 박 씨는 "필터를 몇 번 교체하기도 전에 구매 가격이랑 맞먹을 정도다"라면서 "렌탈 가격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아 일시불로 구매했는데 이렇게 소모품이 비싸면 차라리 렌탈이 나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 광주 광산구에 거주하는 이 모(여)씨는 B업체 공기청정기를 일시불 구매 후 이용하던 중 작동이 빈번하게 멈추는 하자가 발생했다. AS신청을 위해 고객센터에 연락한 이 씨는 비용을 듣고 깜짝 놀랐다. 기본 제품 수리비는 물론 출장비, 부품비까지 더하면 예상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이다. 이 씨는 "출장비는 기본 2만 원이 넘어간다. 부품 값도 비싸 수리비를 제외하고라도 10만 원을 훌쩍 넘긴다"라고 불만을 제기했다.

#.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하 모(남)씨는 C업체 정수기를 구매하기 위해 업체 판매 페이지를 살펴보던 중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동일한 얼음정수기 라인임에도 일시불 금액과 렌탈 비용의 가격 차가 모두 상이했기 때문이다. 일부 제품은 일시불 판매를 하면서도 홈페이지 상에선 가격을 공개하지 않은 제품도 여럿이었다. 하 씨는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렌탈 비용 책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일시불 가격과 렌탈 비용을 나란히 비교, 기재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가전 업체에게 렌탈은 든든한 ‘캐시카우’다. 매년 정기적인 관리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한편 경기 침체에도 누적 계정 수를 통해 매출 방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황에 강한 렌탈’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실제 판매 현장에서는 업체들이 소비자들에게 렌탈을 권하는 분위기가 직간접적으로 형성돼 있다. 자가 관리가 가능한 제품이 많지 않고, 필터 교체 비용이나 제품 고장 시 유상 수리비도 만만치 않다. 일시불 구매 후 관리를 받기 위한 멤버십 가격을 생각하면 렌탈을 선택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구매 제품 이용 환경에서 비용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의 구매 선택지는 렌탈로 옮겨지고 있다.

■ 직접 관리 가능한 모델 절반 이하...필터 재고 소진 등 불편 많아 일시불 구매 꺼리게 돼

렌탈은 일반적으로 서비스 직원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제품을 관리해주는 ‘방문관리형’ 제품과 스스로 부품을 교체 및 관리하는 ‘자가관리형(셀프관리형)’ 제품으로 나뉜다. 자가관리형 제품은 소비자가 필터 교체나 청소 등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제품이다. 자가관리형 제품은 소비자가 일시불로 구매해서 업체에 의존하지 않아 직접 관리하면서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렌탈 약정에 묶이고 싶지 않은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가관리형 제품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코웨이의 경우 렌탈 품목 중 자가관리 제품 비중은 공기청정기와 정수기 모두 30% 가량이다.  청호나이스는 자기관리 공기청정기는 40%, 정수기는 20%가량 차지한다. 물론 자가관리 제품 비중을 높인 곳도 있다. 쿠쿠는 자가관리 공기청정기 비중은 약 30%에 그치나, 정수기는 자가 관리를 선호하는 계정이 늘어남에 따라 지난 2018년 40%에서 지난해 56%까지 비중이 늘었다. SK매직은 품목 상관없이 전체 렌탈 품목 중 50%가 자가관리 제품이다.

최근 1년간 출시된 신제품들을 살펴보면 지난해 출시된 정수기 품목 기준 자가관리형 제품은 코웨이 2건 중 0건, SK매직 4건 중 2건, 청호나이스 5건 중 1건, 쿠쿠 3건 중 2건이다.

설령 제한적인 선택 범위 내에서 자가관리형 제품을 구매하더라도 사용 중에 겪어야 할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필터가 재고 소진으로 품절되거나 입고일이 지연돼 제품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렌탈 고객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 및 물품대여업'에 따라 사업자의 귀책사유로 인한 손해발생시에는 무상수리와 부품교환 및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지만 일시불 구매 고객은 배제된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박 모(남)씨는 모 업체 정수기를 시용하다가 필터에 문제가 생겼지만, 본사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결과 품절돼 바로 교체할 수 없었다. 다른 온라인몰에서는 해당 필터와 호환되는 필터가 아예 판매되지 않았다.

인천광역시 중구에 거주하는 한 모(여)씨는 기관지 질병을 지닌 어머니가 주로 사용하는 공기청정기 필터를 교체하려고 했으나 해당 필터의 입고일이 지연되고 있어 당장 구입이 불가능했다. 고객센터에 아무리 입고 예정일을 물어도 '알지 못한다'는 대답 뿐이었다.

청호나이스는 홈페이지에 정수기 제품군 필터 1개만 올려져 있는데 "필터의 경우 고객센터 또는 플래너를 통해 판매하고 있으며 일부 상품은 별도의 브랜드 스토어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필터 등 소모품 비용도 적지 않다. 정수기 필터는 종류에 따라 1만 원 이하 제품도 있지만 10만 원이 넘어가는 고가 필터도 있다. 필터의 권장 교체 주기는 제품별로 2∼12개월로 정기적으로 관리가 필요하며, 교체 주기가 길더라도 사용자 사용 환경에 따라 교체시기는 짧아질 수 있다.
 


각 업체별로 교체 권장 기간이 12개월인 필터 비용을 렌탈 의무약정 기간 3년(의무사용기간 5년)을 토대로 계산해보면 필터값이 총 렌탈 비용의 7~44% 수준에 이른다. 제품에 탑재되는 필터 종류가 고객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란 점을 비춰보면 실제부담은 이보다 훨씬 높아질 수 있다. 
 
각 업체들은 일시불 구매 고객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관리 서비스를 받는 멤버십을 운용하고 있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멤버십 월 회비는 사용 중인 제품, 모델에 따라 상이하나 일반적으로 월 1~4만 원 대로 책정된다. 일시불 구매보다 처음부터 렌탈요금제를 이용하는 게 유리한 구조다.

일레로 코웨이 얼음정수기의 평균 멤버십 비용은 월 2만5100원으로 1년이면 30만1200원이다. 만일 코웨이 베스트셀러인 ‘아이콘 얼음정수기’ 의 일시불 구매 후 멤버십을 3년간 이용했을 경우, 판매가(217만 원)에 멤버십 요금(90만3600원)을 더해 총 307만3600원 가량 든다. 이는 3년 약정 렌탈료(168만8400원)과 비교했을 때 138만5200원 차이가 난다.

 
SK매직의 인기 제품 ‘디 아트’ 공기청정기(일반, 22평형)의 멤버십 비용은 1만6900원으로 연간 20만2800원을 지출한다. 3년을 가입하면 총 60만8400원이 드는 셈이다. 3년간 멤버십 비용이 제품가(132만7400원)의 절반에 육박한다.

렌탈가입 대신 자가관리형 제품을 구매해서 사용하는 경우 AS비용도 만만치 않다. AS비용은 제품 수리 난이도(시간)에 따른 순수 기술료인 수리비와 유상수리 시 드는 출장비, 그리고 부품비 등이 포함된다. 수리비는 제품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이나 출장비와 부품비는 고정 가격이다.
 


특히 출장비의 경우 인건비 인상, 주 52시간 근무 시행 등으로 최근 8년간 큰 폭으로 올랐다. 평일 출장비는 업체별로 최소 30%에서 최대 100%까지 가격이 올랐다. 만일 필터를 교체할 경우 수리비를 제외하고서라도 출장비와 소모품 비용을 더하면 적게는 3, 4만 원에서 많게는 10만 원이 넘어갈 수 있다.

이런 저런 비용과 불편함을 고려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렌탈 외의 선택지를 고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기업들이 렌탈로 유도하는 것은 영업전략이기 때문에 문제로만 보는 건 어려운 부분이 있다"라면서 "다만 렌탈로 유도하는 가격 정책 등은 일반 구매 소비자들 입장에선 공평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일시불 구매를 없애고 모두 렌탈로 영업 전략을 바꾸는 등 일시불 구매를 하는 고객들이 스스로를 기업으로부터 외면당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점진적인 개선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렌탈비 총액과 일시불 구매가 차이 들쑥날쑥...합리적 요금 산정체계 존재하나?

렌탈서비스를 가입할 때 소비자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부분은 복잡한 요금체계다. 제품 자체가 워낙 다양해 선택이 쉽지 않은 상황인데, 각 모델마다 책정되는 렌탈요금이 제품가격에 비해 저렴한 건지, 아닌지를 판단키 어려울 정도로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기능이 비교적 단순하고, 관리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제품인데도 렌탈요금 차이가 크게 벌어져 요금산정 기준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코웨이와, LG전자, SK매직, 쿠쿠, 청호나이스 등 렌탈업체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요금제를 살펴보면 3년 약정 렌탈요금 총계가 모델에 따라 100만 원까지 차이가 난다. 렌탈업체들은 AS와 위생 관리 등 서비스 비용과 계약 종료까지 소유권이 회사에 있기 때문에 이자 등 금융비용을 감안해 요금을 매기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제품가격에 비해 요금 차이가 너무 심해 일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업체에 따라서는 3년 약정 렌탈요금 총계가 제품가격을 초과하는 경우도 있다. 각사에서 요금차이 비교적 크게 나는 제품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SK매직의 경우 나노정수기S케어의 3년 렌탈요금이 201만 원으로 제품가격이 1만 원 차이도 올인원플러스직수얼음정수기보다 60만원이나 비싸다. 통상 소유권이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3년 렌탈요금은 제품가를 밑도는데 나노정수기S케어는 제품값보다 14만6100원이나 비싸다. 

코웨이도 아이콘얼음정수기2의 3년 렌탈요금이 제품값보다 비싸다. 제품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모델이기는 하지만, 그밖의 다른 모델도 렌탈요금이 제품가격의 70%~98%를 오갈 정도로 편차를 보인다.

LG전자는 208만 원짜리 제품과 206만 원짜리 제품의 렌탈요금이 40만 원가량 차이를 보였고,  쿠쿠는 100도씨 끓인물 정수기의 3년 렌탈요금이 제품가 205만원의 절반 수준(104만원)에 불과한 반면, 인앤아웃 안심살균얼음정수기는 제품가(235만원)의 70%가 넘는 168만원에 달했다.

이에 대해 코웨이 관계자는 “제품별 자체 프로모션이나 카드사 할인 등으로 인해 가격차는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고성능 제품일수록 필터 등 소모품도 고사양으로 적용이 되기 때문에 그만큼 소모품비나 공임료 등이 증가하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렌탈요금 산정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알 수 없는데다 가격이 역전하는 경우까지 발생함에 따라 적잖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 ‘현금지원’ 내세운 편법 마케팅 성행...먹튀 피해 주의

렌탈 시장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현금 지원'을 미끼로 한 불법계약 행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렌탈 모집인을 통한 렌탈 계약 시 상당액의 현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실제 인터넷에 현금지원 렌탈만 검색해도 각종 제품별 현금지원 유인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불법영업이다. 애초 본사에선 현금지원을 토대로 계약을 진행하지 않는다. 방문판매원 교육 시에도 이런 식의 영업행위는 하지 말라고 교육한다. 다만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계약 수당을 챙기려는 일부 방문판매원들의 일탈로 이런 영업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현금지원을 받고 계약해도 모든 제품은 본사에서 유통되기 때문에 렌탈가는 공식 홈페이지와 가격이 똑같다. 그렇다 보니 정식 루트로 구입한 소비자만 정보 불평등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다. 

현금 지원을 받고 계약한 소비자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현금을 받고자 렌탈료가 높은 제품을 설치했지만 이른바 '먹튀'로 사은품을 받기는커녕 높은 렌탈료만 매달 부담해야 하는 위험이 생기는 것이다.

▲강 씨가 렌탈 담당자로부터 받은 문자
▲강 씨가 렌탈 담당자로부터 받은 문자

전주에 사는 강 모(여) 씨는 지난해 11월 정수기를 바꾸면 사은품으로 두 달 렌탈료면제+현금 지원을 해준다는 인터넷 문구를 보고 계약을 진행했다. 약속한 입금날짜가 되어 이체를 부탁하니 계좌번호와 주민번호가 필수라 해서 알려줬다. 그런데 입금이 되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강 씨는 “문자로만 입금이 될 거라고 연락은 오는데 전화기는 계속 꺼져 있다. 주민번호 알려준 것도 영 찝찝한데 아직 사은품은 받지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서울에 사는 송 모(여) 씨는 지난해 4월 포탈사이트에서 정수기 렌탈을 검색하다 가입 사은품으로 현금 20만 원을 준다는 광고 문구를 발견했다. 담당자와 연락해 정수기 렌탈 계약을 맺었고 한 달 후 현금이 입금된다는 얘기에 기다렸지만 이후 담당자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입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송 씨는 “가입을 유도한 팀장이란 사람은 아예 전화 자체가 꺼져 있고 본사 고객센터에 연락하니 담당자가 하청 직원이라 직접 돕기 어렵다고 하더라”며 답답해했다.

업체들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고 교육도 진행하지만 근절하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청호나이스 관계자는 “모니터링도 하고 방문판매원들 교육 시에도 현금지원 등 불법영업을 하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근절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적발 시 경고 조치에 나서며 심각한 경우 계약 해지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SK매직 관계자도 “실시간 대응이 어려운 것이 맞지만 적발 때마다 경고 조치를 하고 있다. 소비자에게 해피콜 등을 통해 현금을 지원받았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진행하고 있고 이런 행위가 불법임을 알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연맹 정지연 사무총장은 "업체들이 마진을 줄이면서 일부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걸 모두 지적할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소비자 기만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송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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