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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칼럼]양동이의 물이 왜 넘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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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칼럼]양동이의 물이 왜 넘치지 않을까?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11.12.14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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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클다운(trickl-down)이란 경제학 이론이 있다. 우리말로는 적하정책(滴下政策)으로 번역되는데 영어나 한국어나 말 그대로는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쉽게 풀이하면 '넘쳐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신다'는 의미다. 물이 양동이를 꽉 차 넘쳐 흐르면 바닥을 고루 적시는 것처럼 정부가 투자를 늘려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를 먼저 늘려주면 다음은 중소기업과 서민층에도 혜택이 고루 돌아간다는 뜻이다.

 

말이 거창한 뿐이지 우리 경제에서 많이 회자됐던 아랫목-윗목 론이다.

 

군불을 세게 때면 우선 아랫목이 설설 끓고 다음은 온기가 윗목까지 뻗쳐 방전체가 따뜻해진다는 이론이다.

 

트리클다우은 미국의 제41대 대통령인 부시가 재임 중이던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채택한 경제정책이다. 그러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폐지됐다.미국 정부가 대기업과 부유층에 혜택을 많이 제공했지만 당초 기대한 만큼 중소기업과 서민층에 혜택이 되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여년이 지난 뒤에서 케케묵은 경제 이론을, 그것도 실패한 정책을 새삼 들여다 보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 이론이 아직도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펼친 경제정책이 바로 이 트리클다운이었고 이 이론은 슬프게도 우리나라의 사례를 통해 다시한번 현실성이 없다는 실증을 거치게 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의 캐치프레이즈는 ‘비지니스 프렌들리’였다.

 

기업을 꽁꽁 묶고 있던 각종 규제를 풀어내 기업들이 양껏 비즈니스를 펼치면 파이가 늘어나 결과적으로 나라전체의 경제 온기가 따뜻해질거라며 ‘경제의 가나안’을 약속했다.

 

모두 그 가나안을 바라보고 열심히 뛰었다.윗목은 여전히 찼지만 아랫목이 따뜻해지니 윗목에도 곧 온기가 미칠거라 참고 기다렸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그러나 윗목의 냉기는 여전하다.아랫목은 설설 끓어 발을 댈수도없는 지경이나 윗목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지난 4년동안 정부는 환율이며 규제완화등 온갖 자원을 다 군불 때는데 바쳤다.출자총액한도가 폐지되고 수도권 규제가 완화되고 대기업 수출이 쉽도록 환율은 고공행진했다.

 

출자총액한도 폐지는 대기업들의 문어발 확장을 자유롭게 했다. 15대 재벌의 계열사는 4년새 200여개 늘었고 현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수도권 규제완화는 중소기업들을 멀리 외지로 쫒아냈다. 당초 외지에 있던 중소기업 공장들은 부동산 경기 침체와 맞물려 공장이 ‘애물단지’가 됐다.수도권에서 좋은 땅을 마음대로 살 수있는데 지방 공장이 거래될리 만무했다.

 

이런 군불이 활활 열기를 더하면서 우리나라 전체 제조업 매출에서 삼성 현대차 SK LG 현대중공업 롯데 두산 금호 GS 한진등 국내 10대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넘어섰고 이들 그룹에 속한 90개 상장사들의 시가총액이 전체 주식시장의 50%를 넘어섰다.

 

그러나 윗목은 어떤가?

 

환율이 올라 서민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수입에 의존하는 기름값은 물론 모든 원자재 가격이 올라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었다.한겨울에도 전기 장판 한 장으로 견디는 윗목들이 수두룩하다.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은 탓이다.

 

이명박 정부는 당초 재임기간중 300만개 일자리를 공약했다. 매년 60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목표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지난 3년 동안 만들어진 일자리는 40만개 뿐이다, 연평균 13만3000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내년은 아예 목표자체를 28만명으로 바닥에 깔았다.

 

물은 넘치는데 왜 바닥에 흐르지 않을까? 트리클다운은 완전 허구일까?

 

문제는 시대가 변했다는데 있다. 트리클다운은 그야말로 경제 고도성장기의 이론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시작하면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얻었다.TV나 냉장고를 조립하고  옷을 만들려 해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투입됐다.

 

그러나 이젠 어느 공장도 예전처럼 사람을 쓰지 않는다. 대기업은 돈을 벌면 첨단 자동화 설비를 먼저 들인다. 공장이 더 필요하면 해외에 짓는다. 그게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산물이다.소위 고용없는 성장이다.

 

대기업과 부유층의 양동이도 커졌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서 아무리 쓸어 담아도 넘치지 않을 만큼의 슈퍼 양동이를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트리클다운의 이론을 정말 제대로 폐기해야 할 시점이다.

 

이 잘못된 이론의 마지막 희생자가 이번 한국의 실험으로 끝났으면 싶다.

[마이경제/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최현숙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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