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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번호 과연 안심해도 될까?...유효기간 짧아 딴 사람 연결 일쑤, 실제 번호 노출도 빈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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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번호 과연 안심해도 될까?...유효기간 짧아 딴 사람 연결 일쑤, 실제 번호 노출도 빈번
플랫폼 사업자의 적극적 역할 기대
  • 황혜빈 기자 hye5210@csnews.co.kr
  • 승인 2021.11.26 0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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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관악구에 사는 이 모(남)씨는 자신이 보내거나 받을 택배가 아닌데 택배기사로부터 수차례 연락을 받고 있다며 짜증스러워했다. 지난 18일부터 한 택배사 앱을 통해 배송 관련 알림이 도착해 확인해보니 타인의 택배였다. 택배기사로부터도 택배 배송 문의 전화가 지속적으로 왔다고. 택배기사에게 연락처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물었으나 택배사 자체적으로 설정된 ‘발신인 안심번호’로 전화한 것이라는 답변뿐이었다. 택배사 고객센터에도 여러 차례 전화해 봤지만 도통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 씨는 “안심번호 시스템이 어떻게 구축돼 있고, 전화번호와 어떻게 연동을 시킨 건지 모르겠는데 타인의 배송 건에 대해 자꾸 나에게 연락이 오니 불쾌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택배사나 배달앱들이 이용 고객의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제공하는 ‘안심번호’와 관련해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유효기간이 짧아 이 기간이 지나면 연락이 불가능하고 실제 번호가 노출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심번호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일정 기간 사용하는 1회성 전화번호다. 실제 전화번호가 노출되지 않아 범죄 등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취지에서 택배, 배달앱 등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렵다는 고충을 호소하는 이용자들이 많다. 

배달기사들은 자신들에게는 안심번호가 제공되지 않아 연락처가 노출되는 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고객 연락처는 안심번호로 가려지지만 택배기사 연락처는 그대로 노출돼 고객으로부터 지정 장소에 배송 안 했다는 이유 등으로 일방적인 비방을 받거나 새벽에도 택배 관련 연락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하소연이다. 

또 택배기사들은 고객들의 연락처가 자동으로 안심번호로 표기돼 배송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연락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특히 택배 파업 이슈로 배송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은데 안심번호 유효기간이 지나 폐기된 상황이면 배송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반품 시 시간이 지나 안심번호가 폐기됐다면 회수 장소 지정 등 직접 소통이 어려워 택배사에 연락해 고객 연락처를 재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폐기된 안심번호로 연락하면 없는 번호로 나오거나 다른 고객에게 연결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택배기사들의 고충은 공통적으로 안심번호에 따른 소통 오류, 택배기사 연락처 노출 피해 등으로 모아졌다.
▲택배기사들의 고충은 공통적으로 안심번호에 따른 소통 오류, 택배기사 연락처 노출 피해 등으로 모아졌다.
 
 
▲안심번호가 폐기돼 다른 고객에게 연락이 가는 경우도 많았다.
▲안심번호가 폐기돼 다른 고객에게 연락이 가는 경우도 많았다.

배달앱 또한 상황은 다르지 않다.

배달앱 이용자가 음식점에 처음 연락했을 때는 안심번호로 표기돼 음식점에 연락처가 노출되지 않지만, 음식점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을 때 그 번호로 직접 전화를 하면 주문자의 실제 전화번호가 고스란히 노출된다.

점주 입장에서는 별점 테러를 당하면 타격이 크기 때문에 고객에게 연락해 오해를 풀려 해도 안심번호가 이미 폐기된 상태라 어려움을 겪는다는 고충이 많다.

게다가 배달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리뷰 약속을 하면 서비스 음식을 제공하는 음식점들이 대다수인데, 안심번호로 설정되면 이른바 ‘먹튀’를 하는 고객을 가려낼 수 없기 때문에 “안심번호 체크 해제한 후 리뷰 이벤트 참여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배달앱 내에는 '리뷰 먹튀'를 막기 위해 안심번호 서비스를 해제해달라고 요청하는 음식점들이 많았다.
▲배달앱 내에는 '리뷰 먹튀'를 막기 위해 안심번호 서비스를 해제해달라고 요청하는 음식점들이 많았다.
 
▲'먹튀' 고객에게 다시 연락하려고 해도 안심번호 유효기간이 지나 연결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먹튀' 고객에게 다시 연락하려고 해도 안심번호 유효기간이 지나 연결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안심번호 유효기간이 만료됐을 때 송장은 이미 출력된 거라 조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택배기사가 직접 내부 전산 시스템을 통해 고객 전화번호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요기요 관계자는 "고객의 개인정보 보호를 최우선으로 두고 안심번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며 "앱 내 리뷰 채널과 24시간 운영하는 고객센터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점주와 고객의 소통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안심번호 유효기간 회사마다 제각각

택배사나 배달앱 자체 안심번호 유효기간은 ▲배달앱 최대 24시간 ▲택배사 최대 10일까지다. 안심번호는 통신사를 이용하거나 개별 회사들이 자체 서비스로 제공하는 2가지 방식으로 운용된다.
 


회사별로는 자체 서비스를 운용하고 있는 우체국택배의 안심번호 유효기간이 가장 길었다.

우체국택배 측은 자체적으로 안심번호를 제공하고 있고, 배송 완료 후 폐기된다고 밝혔다. 미배송 시에는 주문 후 최대 7~10일까지 유효하고 그 후 다른 사람에게 해당 안심번호가 신규 이전된다.

우체국택배 관계자는 “유효기간 경과 후 고객 반품 요청 시에는 시스템상 자동으로 안심번호가 신규 발급되기 때문에 택배기사가 별도로 안심번호를 요청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CJ대한통운은 직접 안심번호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고, 발송업체에서 직접 등록한다고 밝혔다. 그에 따라 안심번호 유효기간도 발송업체마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통신사를 통해 안심번호를 제공하고 있다. 안심번호 유효기간은 배달 완료 후 24시간까지만 가능하다. 택배기사들은 별도 안심번호 설정이 되지 않는다. 

한진택배는 자체 서비스 혹은 발송업체의 서비스 2가지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 고객일 경우 안심번호가 기본 제공되고 원하지 않을 경우 설정하지 않을 수 있다. 안심번호 유효기간은 주문 후 3~4일이다.

배달앱들은 공통적으로 통신사를 통해 안심번호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이 음식점으로 전화를 직접 걸 때는 안심번호가 제공되지만, 1회성 번호이기 때문에 음식점에서 직접 연락이 온 후 다시 연결을 할 때는 실제 연락처가 노출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쿠팡이츠는 주문자가 음식 주문을 하면 배달을 연락하는 배달파트너에게만 실제 연락처가 안심번호로 보이고, 음식점에게는 고객 연락처가 아예 제공되지 않는다. 안심번호 유효기간은 24시간이다.

배달의민족의 안심번호 유효기간은 고객 주문 후 3시간까지다.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안심번호 유효기간을 두는 이유는 배달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업주에게 연락해야 하는데 기존 연락처가 그대로 노출되면 개인정보 노출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며 “앱 주문 후 음식점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을 때 ‘해당 가상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 경우 연락처가 노출될 수 있다’는 등의 안내 멘트가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기요도 안심번호 유효기간은 주문 후 3시간까지다. 

전문가들은 짧은 유효기간 등으로 실효성 없는 안심번호에 대해 보다 확실한 대안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신동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안심번호 유효기간을 늘리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라이더든 택배기사든 민법상 '판매자의 이행보조자'라고 해서 판매자의 상품을 위탁해 배송해주는 역할을 한다"며 "결국에는 그런 의사소통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건 플랫폼 운영사업자의 역할이기 때문에 배달기사와 고객 사이의 커뮤케이션 장애가 있다면 원활히 이뤄지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플랫폼 이용자들의 의사소통이 잘 될 수 있도록 플랫폼 사업운영자들에게 책임지게 하는 법안은 현재 국내에 없지만 외국에는 관련 입법례가 있다"며 "지난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온라인 플랫폼 기본법안'을 발의했는데 온라인 플랫폼에 게재된 정보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한 조치 의무를 부여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황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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