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대법원은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른 보험금 지급은 보험사 약관에 따라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며 2009년 10월 개정된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을 근거로 들었다. 소비자들은 이후 계약건인 2세대 표준화실손보험부터 적용될거라 생각했지만 구 실손보험에 대해서도 보험사들이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보험사는 실손보험 취지는 가입자가 지불한 의료비를 보장해주는 것이지 본인부담상한제를 통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돌려받은 금액까지 보장해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여 모(여)씨도 2006년 12월 A보험사의 실손보험 상품을 가입한 뒤 척수염이 생겨 장기간 치료를 받았지만 기대했던 보험금을 모두 받지 못했다.
여 씨는 2021년 12월 보험 계약이 종료되기 전인 9월경 마지막으로 청구한 500만 원의 병원비를 받지 못했다. 이미 먼저 지급된 보험금이 본인부담금 10분위를 초과했다는 게 이유였다. 여 씨의 항의에도 보험사는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른 보험금 지급은 보험사가 규정한 약관에 따라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거부했다.
여 씨는 "표준약관 도입 이전 계약은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라 보험금을 공제하지 않는 것 아니냐"며 억울해 했다.
A보험사는 “얼마 전 대법원 판결은 표준약관 도입 이후 계약건에서 약관에 따라 본인부담상한제 적용으로 보험금을 공제 지급한다는 판례였다. 약관 도입 이전 계약건의 지급 여부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 표준약관 도입 이전 계약은 모든 보험사가 우리와 같이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해상, KB손해보험, 삼성화재,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주요 보험사 모두 실손보험 표준약관 도입 이전인 1세대(구 실손보험) 계약도 본인부담상한제를 적용해 보험금을 공제 지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본인부담상한제는 가입자의 과도한 의료비 지출을 막기 위해 2008년 도입됐다. 건강보험 가입자가 1년 동안 낸 의료비 중 본인부담 총액이 개인별 상한금액을 넘으면 그 초과액을 건강보험 재정에서 되돌려준다. 소득수준에 따라 본인부담상한액은 2022년 기준 81만 원부터 580만 원까지 상이하다.
삼성화재 측은 "2009년 10월 이전 계약 상품도 일정 금액 공제 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리츠화재도 "본인부담상한제는 업계가 공통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DB손해보험 관계자 역시 "표준약관 도입 전 후 상관 없이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라 공제 후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보험사들은 가입자가 실제 지불한 의료비를 초과한 금액까지 보험금으로 보장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의료비를 지원 받는데 보험금을 추가 수령한다면 보험사기 가능성이 농후하고 향후 보험금 누수 우려도 크다는 설명이다.
법원 판결도 보험사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달 대법원 부당이득금 판례(2022다215814)에서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른 보험금 지급은 보험사가 규정한 약관에 따라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때 2009년 10월 이후 계약은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상 ‘보상하지 않는 손해' 항목에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 중 본인부담금 내용을 명시했다는 것이 근거다.
앞서 지난 5월 서울지방법원도 표준약관 도입 이전 계약 역시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라 보험금을 공제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 내렸다.
서울지방법원은 "본인부담상한제로 공단에서부터 본인에게 환급한 금액은 결국 본인부담금이 아닌 공단부담금이 명백하기에 보험계약자에게 추가적 경제적 이득을 주는 것이 되므로 보험 본질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표준약관 도입 전인 2009년 10월 이전 계약건에 대해서도 보험업계가 공통적으로 본인부담상한제를 적용해 가입자가 실제 지불한 의료비 한도 내에서 보장해주고 있다"며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의료비를 지원 받는데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추가 수령한다면 보험사기 가능성이 농후하고 향후 보험금 누수 우려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예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