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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단체소송 고사위기㊤] 승소사례 전무한데 시민단체에 소송비용 폭탄...'집단소송' 도입 목소리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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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단체소송 고사위기㊤] 승소사례 전무한데 시민단체에 소송비용 폭탄...'집단소송' 도입 목소리 커져
"공익목적 소송은 비용청구 예외로 둬야" 제도개선 필요
  • 이은서 기자 eun_seo1996@csnews.co.kr
  • 승인 2023.02.02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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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소송에 비해 여러 가지 제약을 안고 있는 소비자단체소송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기업측의 반격으로 고사 위기에까지 몰리고 있다.

소비자단체소송이 도입되고 15년 간 소비자측이 승소한 사례가 전무한 가운데 최근에는 기업 측에서 소비자를 대신해 소송에 나선 소비자단체에 수천만 원의 소송 비용을 청구하는 사례까지 등장하면서 소송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로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해 한국스마트카드를 상대로 한 ‘분실 교통카드 잔액 환급 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뒤 무려 6000만 원에 달하는 소송 비용을 청구 받고 이로 인해 다시 소송에 휘말려 있다.

한국소비자연맹을 비롯한 소비자단체들은 무료 변론에 나선 변호사들의 지원을 받아 소송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승소해도 상대방에 소송비용을 청구할 수 없고, 승소에 따른 손해보상 등의 금전적 이득도 전혀 취할 수 없는데 패소하면 수천만 원을 물어내야 하는 불합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이 소송비용 청구를 통해 소비자단체들의 소송제기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정부가 제도개선을 통해 소비자단체소송의 실효성을 확보하거나 미국과 같은 수준의 집단소송을 전면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시민단체 승소해도 금전적 이득 전혀 없는데 지면 소송비용 수천만 원 물어야

한국스마트카드는 지난해 ‘분실 교통카드 잔액 환급 청구’ 소송에서 이긴 뒤 한국소비자연맹을 상대로 변호사 비용 등 총 6000만 원의 소송 비용 지급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한국소비자연맹이 한국스마트카드에 15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현재 2심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 분쟁은 지난 2015년 12월15일 한국소비자연맹이 한국스마트카드의 교통카드인 티머니 분실 시 남은 카드 잔액을 환급하지 않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소비자가 티머니 카드를 분실할 경우 전산시스템을 통해 잔액과 사용처 확인이 가능한데도 업체는 교통카드가 무기명채권이라는 이유로 환불을 거부해왔다. 한국소비자연맹은 이 같은 행태가 불공정하다 보고 소비자권익침해행위 금지 및 중지 소송에 나선 것이다. 

실제 2017년을 기준으로 교통카드 5년 이상 장기 미사용 선수금은 2945억6000만 원으로 이는 한국스마트카드의 낙전 수입이 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한국스마트카드가 환급 시스템을 갖추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며 한국소비자연맹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한국스마트카드는 이 같은 판결에 따라 수천억 원대의 낙전수입을 지키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소비자연맹에 변호사 보수와 재판 비용 등의 명목으로 6000만 원을 청구했다. 민사소송법 제98조에 따르면 소송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는 게 원칙이며 공익목적의 소송에도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스마트카드가 청구한 금액이 비영리단체인 한국소비자연맹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1심 재판부도 청구액에 대해 4분의 1만 인정한 상황이다. 소비자단체 측에서는 한국스마트카드가 보복성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이에 대해 한국스마트카드 측은 "해당 소송을 진행하며 발생한 실제 변호사 보수 및 관련 제반비용을 청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지난 2018년 4월에는 한국소비자연맹이 한국전력과의 '전기 요금 누진세' 관련 단체소송에서 패소 후 소송비용 1000만 원을 지급한 선례가 있다.

소비자단체소송은 법원에서 승소하지 못하더라도 위법행위를 한 사업자에게 시장의 감시자인 소비자단체를 통해 언제라도 소 제기를 당할 위험성이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반복되면 더 이상 소비자단체가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결국 소비자 권익 보호에도 제동이 걸리게 되는 셈이다.

 ◆ 대안은 집단소송? 전문가들 공정위에 제도 개선 촉구 

이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소비자단체소송 시에는 예외적으로 '패소자 소송 비용 부담'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소비자단체소송은 한계가 존재하므로 집단소송을 도입해 소비자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소비자단체소송은 시민단체가 승소로 전혀 이익을 취할 수 없고, 소비자들도 판결에 따라 바로 보상을 받는 게 아니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단체소송은 승소할 경우 위법 행위에 대한 사업의 정지만 가능할 뿐, 실질적인 피해 보상은 받을 수 없는 구조다. 공익 추구가 목적이라 변호사 비용이 무료로 진행돼 승소한다 해도 피고에게 소송비용을 청구할 수도 없다.

이렇게 되면 소송 기간은 수 년이 걸리는데 돌아오는 금전적 보상은 없고, 패소 시에는 도리어 피고 측에 막대한 변호사 비용을 지급하게 될 부담만 남다 보니 사실상 소비자단체들이 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이는 2008년 1월 소비자단체소송 시행 이래 소제기 건수가 단 8건에 그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8건에 불과한 소송 사례 중 소제기가 끝까지 진행된 경우는 모두 패소했다. 

현재까지 3건(한국스마트카드, LGU+, 한국전력)은 원고패소, 2건(하나로텔레콤, 하이마트)은 자진시정으로 소취하, 3건(SKT, KT, 호텔스닷컴)은 소송이 진행 중이다. 
 


2008년 7월 24일 소송이 시작된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의 개인정보무단수집·제공 소송과 2018년 12월 31일 하이마트의 철회권 불인정(통신판매) 소송은 업체 측 자진 시정으로 소취하로 결론 났다.

하나로텔레콤은 지난 2006년 1월부터 2008년 12월 말까지 약 600만 명의 개인정보 8500여만 건을 전국 1000여 곳의 텔레마케팅업체에 제공해 이를 상품판매에 이용하도록 한 건으로 소송이 제기됐다. 당시 하이마트는 온라인몰에서 구매한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 상품을 포장한 박스만 훼손돼도 반품이 불가능하다는 자체 규정을 둬 전자상거래법을 어긴 게 문제가 됐다.

이를 소관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단기간에 민사소송법을 개선하기 어려우므로 소비자단체소송에 한해서 패소자 비용 원칙을 예외시키기 위해 소비자 기본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현재 관련 법안을 검토 중에 있지 않은 상황이다.

공정위 측은 "논의 중인 사안이 아니라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서도 "패소자 부담 원칙이 소비자단체소송에도 적용됨에 따라 공익 소송이 저해되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 단계적으로 검토해야 할 내용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서희석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패소자 비용 부담 원칙에서 국내 공익 소송을 예외로 하는 게 올해 관건이다. 단기적으로 소비자 단체 소송 제도에 한해서 소비자 기본법을 개정하고 장기적으로 민간소송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계의 반발로 도입되지 못하고 있는 집단소송제를 대안으로 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참여연대 신동화 간사는 "현재는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다. 집단소송제가 도입된다면 비교적 쉽게 손해배상 청구를 요구해 소비자들의 피해를 구제할 수 있고, 모든 피해자들에게 일괄적으로 배상이 적용될 수 있어서 집단소송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이정수 사무총장은 "대개 소비자 피해의 특성이 소액 다수기 때문에 실질적인 소송 진행이 어렵다. 또 패소한 경우 상대 측 소송 비용 부담까지 떠안게 된다"며 "이에 집단소송법 도입이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집단소송법 통과가 진행되지 않고 있어 소비자단체소송이라도 실효적으로 진행이 가능하게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2005년 증권 분야에 한해 집단 소송제가 도입됐으나 이마저도 활성하되지 않고 있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집단소송제는 소비자단체소송과 달리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사건에서 일부 대표자가 소송을 진행해도 승소할 경우 모든 피해자가 동일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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