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캠페인
소액대출 바로 상환했는데 예금 안받아줘...너무 고루한 '꺾기' 방지책, 소비자 선택권 침해
상태바
소액대출 바로 상환했는데 예금 안받아줘...너무 고루한 '꺾기' 방지책, 소비자 선택권 침해
과도한 규제 탓 역차별 지적도
  • 김건우 기자 kimgw@csnews.co.kr
  • 승인 2023.11.14 07: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례1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최 모(여)씨는 최근 금리가 유리한 A은행 정기예금 상품을 가입하려다가 거절당했다. 주거래은행과의 관계를 고려해 얼마 전 법인계좌로 1000만 원 상당의 대출을 실행하고 바로 상환했는데 바로 이 대출 이력 때문이었다. 대출 취급일 전후 한 달간 금융상품 가입을 못하는 꺾기 방지책 때문에 법인은 물론 대표인 최씨 개인 예금마저 한 달 뒤에나 가입할 수 있었다. 그는 "꺾기 논란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상황인데 일괄적으로 가입을 막는 것은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난감해했다.

#사례2 인천 남동구에 사는 신 모(남)씨는 최근 B은행 지점에서 주택청약저축 해지 후 재가입을 시도했다가 거절됐다. 사유를 알아보니 다음 달 대출 만기/연장이 예정돼 있는데 대출계약 전후 한 달간은 같은 은행에서 상품 가입이 제한되는 꺾기 방지 규제 때문이었다. B은행에 채무가 있었던 신 씨에게 은행 측은 상환해야 가입할 수 있다 안내했다고. 그는 "주택청약저축은 대다수 국민들이 가입하는 상품인데 대출 상환을 앞두고 있다고 원천적으로 가입을 거절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답답해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상 '꺾기' 방지를 위해 대출 실행 한 달 전후로 주요 금융상품 판매가 사실상 금지된 가운데 일부 소비자들은 선택권을 침해받는 규제라며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꺾기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주거래 은행에서 상품을 가입하고 싶지만 과도한 규제 탓에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다만 금융당국은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게 아닌 데다 꺾기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큰 상황에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라는 점에서 법 개정 논의는 시기상조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꺾기는 은행들이 대출을 실행해주는 조건으로 소비자에게 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불건전 구속성 행위다. 소비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대출 실행일 전후 1개월 내 판매한 예·적금, 보험, 펀드 등 월 단위 환산금액이 대출금액의 1%를 초과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과거에도 은행법상 불건전 구속성 행위는 금지된 바 있다. 당시에는 신용등급 7등급 이하 또는 중소기업 등 취약차주에 대해서만 제한했지만 지난 2021년 금소법이 시행되면서 금지 대상이 취약 차주에서 일반 차주로 범위가 확대됐다. 

이로 인해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농협은행, 기업은행 등 주요 은행들은 전산상으로 구속성 상품판매 행위를 걸러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상당히 보수적인 관점에서 운영하고 있다. 가입 가능 조건을 대출총액 1% 미만으로 설정해 사실상 모든 상품 가입을 막고 있는 셈이다. 

대형 시중은행 관계자는 "청약저축이나 내일채움공제, 노랑우산공제 등 정책성 상품에 대해서도 대출액의 1%를 초과하는 경우 꺾기로 간주할 정도로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사실상 대출 전후 1개월 간 해당 은행 금융상품 가입이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기존 예적금 상품 만기시 해당금액 내 재예치 또는 예금담보대출 등 아주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는 규제와 상관없이 가입할 수 있다"며 "대출 실행 후 31일 이상 60일 이내에도 직원 및 지점 평가에 판매 성과가 미포함 될 정도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금융당국과 은행권 일부에서는 꺾기 문제가 현재까지도 근절되지 않는 은행권의 대표적인 소비자 피해 문제라는 점에서 규제 완화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과 6대 지방은행의 올해 상반기 중소기업 대상 꺾기 의심 사례는 3만5523건, 금액은 3조3618억 원에 달하고 있다. 직전년도 연간 의심 사례 건수가 8만9694건, 금액은 7조5447억 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소법 도입 후에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대출 실행 한 달 전후 타 은행에서는 정상적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는 지적도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출의 경우 차주가 '을'의 입장이라는 점에서 꺾기가 여전히 성행하는 가운데 일부 케이스만을 놓고 규제 완화를 논의하는 것에는 의문이라는 것. 

금감원 관계자는 “(역차별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대출 받을 때 요구받는 사항이 있을 수 있어 법개정은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면서 “아직까지는 대출 영역에서는 취약한 계층이 많다보니 오용된 사례 발생 가능성이 있는지 협회 등과 면밀히 검토해볼 문제”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기존 은행법에 있던 구속성 예금 문제가 오히려 강화된 형태로 금소법에 들어온 만큼 소비자보호 차원에서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금융권에서도 결합상품의 종류가 많아지고 업권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률적 규제 요소에 대해서는 소비자 편익 차원에서 고민해볼 만한 문제라는 입장이다. 

학계 전문가는 “꺾기가 아니어도 연계 및 결합상품이 점점 많아지는 현실에서 소비자보호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가 이 문제의 쟁점사안이라고 본다”면서 “제한적인 상황에서 나온 이야기겠지만 대출은 기본적으로 소비자 입장에서 ‘을’이 된다는 점에서 상품 선택의 자유와 별개로 규제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건우 기자]



주요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