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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현대건설 인수 금호보다 상황이 안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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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현대건설 인수 금호보다 상황이 안좋다
[데스크칼럼] 임경오(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편집국장)
  • 임경오 iko@csnews.co.kr
  • 승인 2010.11.16 2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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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바늘을 IMF가 터졌던 1997년 전후로 돌려보자.


외환위기 당시 건설업계는 어떤 업체든 예외없이 전전긍긍했다. 자금사정이 안좋더라는 소문에 걸려들면 여지없이 넘어졌기 때문이다. 우방 한신공영 극동건설 건영 동아건설 한보…. 물론 이들기업이 넘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외환위기, 미분양 누적, 방만한 경영등 다른데에 있었지만 '~카더라'로 대변되는 소문이 이들 기업의 몰락을 부채질한 요인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돈의 속성상 자금줄을 쥔 소위 '쩐주'들은 소문에 민감할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설사 소문이 사실과 다르다 하더라도 일단 돈줄을 죌수 밖에 없었다. 이 시점에서 IMF 얘기를 하는 이유는 소문과 우려에 민감한 돈의 속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2006년 6월,금호그룹은 자산관리공사로부터 대우건설 주식 72%를 주당 2만6000원에 사들이면서 그해말까지 원하는 재무적 투자자에게는 주당 3만2000원에 사들인다는 풋백옵션까지 걸어두었다. 시장은 무리한 인수라고 봤고 금호그룹 계열주들의 주가는 급락했다.


결과는 시장의 우려대로 금호그룹 몰락으로 이어졌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촉발된 불황으로 1만원을 밑돌기도 했던 주가로 인해 금호그룹은 1억주가 넘는 주식에 대해 3만2,000원씩 주고 사들일 여유가 없었다. 당시 금호그룹이 동원할수 있는 자금력은 1조5,000억원밖에 안돼 대우건설을 도로 시장에 내놓을수 밖에 없었다.


16일인 어제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에 과감하게(?) 베팅,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데 성공했다.


현대그룹의 내부유보금은 1조5,00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희한하게도 금호그룹이 대우건설 풋백옵션을 막지못했을때 자금동원력이 1조5,000억원, 현대그룹이 역시 일부를 풋백옵션으로 걸고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을때 내부유보금 역시 1조5,000억원. 당시 금호그룹 주가는 급락, 현대그룹 주가도 급락…


2006년 뉴스를 금호에서 현대, 대우건설에서 현대건설로, 주어 목적어만 바꾸고 다시 보는 느낌이다.


현대건설 주가는 10월하순께만해도 8만원 언저리에 있었지만 17일엔 5만7,000원대까지 폭락했으며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엘리베이터등 현대그룹주들도 이틀째 급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시장은 냉엄하게, 아니 준엄하게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인수자 주가가 많이 떨어지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피인수자인 현대건설의 주가마저 이례적으로 폭락한 것은 증시 참여자들이 현대그룹은 물론 현대건설의 미래마저 불투명하게 보고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찌 보면 금호그룹보다 현대그룹 상황이 안좋을수 있다. 금호그룹은 당시 '우려'밖에 없었지만 현대그룹은 '우려'에다 '금호그룹 학습효과'까지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IMF때 풍문에 올랐던 기업들은 예외없이 넘어진데서 볼수 있듯이 소문의 파괴력에다 금호그룹의 몰락을 지켜본 '쩐주'들의 학습효과가 충분한 상황에서 현대그룹은 마냥 승자의 미소를 지을수 있을지는 의문인 셈이다. 현대그룹은 무리하지 않고 원활하게 조달할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증시 참여자들이나 여타 투자자 및 일분 '쩐주'들은 현대그룹의 무리한 인수를 곱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시장에선 ‘제2의 금호’ 또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소문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돈이다. 시작도 하기전에 우려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현대그룹은 최종인수에 앞서 행여나 앞서 터져나올지도 모르는 '소문'에 신경써야할 상황이다.

사실 현대그룹 스스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듯이, 재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을 상대로 한 인수 대결은 내내 힘겨웠다. 우선 현금성 유동성만 10조원이 넘는 현대차의 자금력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막판엔 전략적 투자자로 유치하려던 독일 회사와의 컨소시엄이 무산되면서 벼랑 끝에 몰리기도 했다.

현대그룹은 동양종금증권과 프랑스 2위 은행인 나티시스은행을 재무적 투자자(FI)로 끌어들이면서 ‘반전’을 꾀했다. 두 회사로부터는 1조원가량의 자금을 지원받게 된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시장의 우려가 결코 우려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를 상황이다.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1조원가량의 현금성 자산 가운데 일부를 비롯해 회사채(CB) 7500억원, 기업어음(CP) 5000억원어치 등 많게는 2조원가량을 책임져야 한다.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엠, 현대증권 등도 회사채, 기업어음 등을 통해 현대건설 인수에 동원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대상선의 경우 부채비율이 상승하고 이자비용이 늘어나는 반면, 선박 투자는 위축돼 기업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무적 투자자로 끌어들인 동양종금증권이나 프랑스 나티시스은행한테 제공한 담보물이나 풋백옵션 계약조건이 나중에 현대그룹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재무적 투자자와 맺었던 풋백옵션 때문에 대우건설을 다시 시장에 매물로 내놓아야 했던 전례도 있다.

또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본계약 체결까지 자금조달 등 여러 변수가 많기 때문에, 현대그룹의 인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자금조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인수를 포기한 경우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무리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금 조달 계획을 제출했다”며 “승자의 저주는 시장의 막연한 두려움에 지나지 않고,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들 역시 현대그룹은 현 회장 ‘경영권 방어’와 옛 현대그룹의 적통성 승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게 됐다. 하지만 축배를 들기엔 아직 이르다. 현대건설 주가(16일 종가 기준 주당 6만2200원)의 갑절이 넘는 인수 가격 5조5000억원(주당 14만1000원)에 ‘풀 베팅’하기 위해 외부에서 끌어들인 자금 부담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벌써부터 시장에선 ‘제2의 금호’ 또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최종인수하게 되면 일단 현대상선을 둘러싼 범 현대가와의 지분 경쟁에서 한시름 놓을수 있다. 기존 현정은 회장 등 우호 지분(43.4%)에 현대건설이 갖고 있는 지분(8.3%)이 더해지면, 현대중공업(25.5%), 케이씨씨(5.1%) 등 범 현대가를 충분히 압도할 수 있다.

현 회장은 이날 “고 정주영, 정몽헌 두 선대 회장이 만들고 발전시킨 현대건설을 되찾았다”며, 옛 현대그룹의 적통성을 이어받은 데 가장 큰 의미를 뒀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로 자산 22조3000억원, 매출 21조4000억원(지난해 기준)이 되면서 재계 순위 21위에서 14위로 올라서게 된다. 현대그룹은 대북사업, 해양 엔지니어링사업 등에서 기존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를 내 현대건설을 ‘글로벌 톱 5’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 모든게 현 회장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앞서얘기했듯이 이미 IMF와 금호그룹으로부터 철저히 학습한 투자자와 쩐주들이 순순히 현회장 바람대로 발을 맞춰줄지는 지켜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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